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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다 이루었다.

제8장 : 예수의 유언

by 하인즈 베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 NIV)



“다 이루었다.” 한 문장이었다. 짧았고, 담백했고, 무엇보다 조용했다. 그 말엔 과장이 없었다. 누구를 설득하려는 태도도,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의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듯, 그는 말했다. 마치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혼잣말처럼.


이 한 문장은 오랫동안 해석되어 왔다. 구속의 완성, 구원의 절정, 신의 계획의 마무리. 신학은 그 문장 안에 의미를 채워 넣었고, 종교는 그 말 위에 구조를 세웠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그런 방식으로 읽지 않는다. 그건 말의 무게를 키우는 일이지만, 정작 예수의 말은 고단함을 덜어낸 자의 휴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It is finished.” 그는 어떤 임무를 완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끝이라고 했다. 이제 여기까지라고. 다 했다고. 그만하겠다고. 더는 할 수 없다고. 누구의 구원자도, 누구의 왕도 되지 않은 채, 한 사람으로서 그는 자기 생의 마지막 경계에 도달했다. 그 안엔 만족도 없고, 황홀도 없다. 오히려 들리는 건 피로다. 그가 맞서 싸웠던 세상에 대한 피로, 오해와 모욕에 대한 피로, 따르던 이들에게조차 외면당한 데서 오는 피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한 끝에서 나온 말. 그리고 더는 감당하지 않겠다는 인정.


종종 사람들은 이 말을 '완성'으로 곡해한다. 완성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성취의 기색을 담고 있고, 예수의 삶을 위대한 결말처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의 마지막은 무력했고, 외로웠고, 조용했다. 그러니 이 말은 어떤 특별한 드라마의 절정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리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장이 특별한 것은, 아무런 특별함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자신의 끝을 스스로 말하는 일. 그것은 준비된 사람만이, 또는 더는 준비조차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는 그것을 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말에 대한 해석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의 자신을 인정했다. “It is finished.”


나는 이 말이 좋다. 강요하지 않는 책임이 있고, 감당이 있고, 단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있다. 예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끝'이라고 말했다. 이후의 일은 모두, 그가 남긴 말에 대한 타인들의 해석이었다. 사람들은 예수의 끝을 종교의 시작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끝' 앞에서 멈춘다. 그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해석하려 하기보다, 그가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그 상태를 묵상한다. 그는 무엇이 되기 위해 완강히 버티지 않았다. 타인들의 기대와 달리 그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존재가 되길 원했지만, 그는 그저 살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아는 것을 말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누구 하고나 밥을 먹은 것뿐이다. 그렇게 자기 앞에 벌어졌던 시시하지만 고단한 하루 하루를 감당했고, 더 할 일이 없자 마지막에 조용히 끝을 말했다.


그리고 예수는 죽었다.






이 연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서문'을 읽어 주시길 권합니다.


https://brunch.co.kr/@heinzbecker/100

<무신론자가 사랑한 예수>는 Medium에서 영어로도 연재 중입니다.

https://medium.com/@42heinz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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