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마지막 회
나는 무신론자다.
내 경험상 신(Ghost)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귀신'이라고 말하는 신들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나의 삶에 어떤 실질적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의 무신론자라는 것을 다시 밝힌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나는 신화를 믿지 않는 것이다. 신화에서의 신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고, 인간은 늘 그 앞에서 부족한 존재로 정의된다. 나는 어떤 대상을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구분하고 신격화하는 신화의 방식이 불편했다.
예수는 신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살았다. 웃고, 울고, 화내고, 걷고, 배고팠다. 특별하려 애쓰지 않았고, 누군가의 영웅이 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냥 하루하루를 자기 방식대로 감당했다. 나는 그 점에서 예수를 사랑한다.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려 했던 한 사람. 예수는 ‘스며드는 삶’을 살았다. 특정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의 말씀’이 아니라, 누구든 곁에 와 앉으면 이해할 수 있는 태도와 언어를 가진 사람이었다.
예수는 '끝'을 말하고 죽었다. 누군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다지만, 나는 부활하지 않은 예수를 사랑한다. 되살아나지 않았기에, 그의 마지막 말은 유효하고, 그의 침묵은 영원하다. 다시 살아났다면, 모든 고통은 ‘반전’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십자가 위에 못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아무도 구하지 않았고, 끝까지 고통당하며, 결국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 고통과 침묵을 존중한다.
하지만 기독교라는 체계를 설계한 바울은 예수를 신화로 만들었고, 교회는 그 신을 중심으로 제국을 세웠다. 종교라는 제국은 수많은 제도를 만들었다. 제도는 구분을 좋아한다. 신과 인간, 성직과 평신도, 구원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죄와 복. 예수는 이런 구분의 경계를 부수며 살았지만, 기독교는 오히려 그것을 더 정교하게 나눴다. 그의 말과 삶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는 어느새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신이 아닌 예수라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 여정을 담은 기록이다. 그것은 신앙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사유다. 이 책은 성경의 재해석이 아니라, 복음서 속 예수를 다시 만나려는 시도였다. 신이라는 관념이 걷히고 난 뒤, 여전히 남아 있던 사람. 그 사람을 따라가며, 그의 말, 그의 침묵, 절망과 비전을 천천히 살펴본 것이다. 예수가 남긴 말들은 교회가 정리한 교리보다 더 인간적이었고, 그의 선택들은 종교보다 더 고귀했다.
나는 예수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인간성을 삭제해버린 초기 교회의 전통보다, 그를 예수로 불렀던 갈릴리 사람들의 눈빛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시도였다. 이름을 부르는 시도. 그리고 그 이름 속에 사라진 사람을 다시 길어 올리는 행위. 그가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격렬했으며, 얼마나 인간이었는지를, 신의 이름 없이 이야기해보는 시도. 나는 그 시도 속에서, 내가 잃어버렸던 사람에 대한 감각을 다시 찾으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예수를 기억한다. 믿음이란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는 설명을 멈춘다. 하지만 기억은 설명을 계속하게 만든다. 나는 그를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썼고, 기억한다는 건 살아 있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을 이 책을 쓰며 알게 되었다. 믿음은 침묵을 명령하지만, 기억은 말하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구도 2,000년을 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예수를 본 것처럼 묘사한 책들이 너무 많았고, 나 또한 그런 오류를 범할것이 뻔했기 때문에 시작이 어려웠다. 또한 신앙 없는 사람이 쓸 예수에 대한 글은 언제나 의심받기 쉬웠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책을 썼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예수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내게 삶 속의 질문을 던졌고, 사람의 태도를 가르쳤고, 무엇보다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남겼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수가 ‘신’으로 가려졌던 얼굴을 다시 꺼내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그가 가진 신비가 아니라, 진리를 알고 자유를 얻고자 했던 그의 의지였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신을 설명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며, 그 삶이 나에게 남긴 온기와 냉기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이 되기를 바란다. 당신은 왜 그를 믿는가, 혹은 믿지 않는가. 당신은 예수를 부활한 자로 기억하는가, 아니면 죽은 자로 기억하는가. 당신은 그가 다시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미 다 이루었다고 느끼는가. 이 책은 그 질문들 사이에서, 한 인간이 남긴 흔적을 다시 읽어보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따라, 자신만의 답을 말하자는 요청이다. 예수는 이미 충분히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말해야 한다. 그 말이 기도일 수도 있고, 고백일 수도 있고, 침묵일 수도 있다.
신화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예수였다.
그동안 <무신론자가 사랑한 예수>를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끝.
이 연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서문'을 읽어 주시길 권합니다.
https://brunch.co.kr/@heinzbecker/100
<무신론자가 만난 예수>는 Medium에서 영어로도 연재 중입니다.
https://medium.com/@42heinzbecker
https://brunch.co.kr/brunchbook/manofjesus
https://brunch.co.kr/brunchbook/manofjesu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