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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Feb 23. 2021

눈 밖의 그놈 VS 눈 안의 그놈

따닥따닥.

전기모기채를 휘두른다. 날파리가 운명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이 많다. 그래서 겨울에도 날파리가 활개를 친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눈앞을 휙휙 날아다닌다. 비행경로가 잘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안 보인다. 일부러 날 약 올리는 것 같다. 그러면 벌떡 일어나 전기모기채(파리채?)를 든다.


화분의 날파리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정말 궁금하다. 관찰 결과 흙에서 나오는 것 같다. 화초를 심는 분갈이용 보다는 작물을 심는 상토에서 출몰하는 듯하다.

상토를 구입한 게 작년이 처음이었고 날파리가 유난히 많아진 것도 작년부터였으니.


작년 초여름, 남편이 토마토와 멜론을 먹고 남은 씨를 심었다. 아니 씨를 배양했다. 젖은 키친타월에 씨를 올려뒀더니 싹이 난 것이다. 먹을 작물이니 아무 흙이나 쓸 수 없다며 부랴부랴 상토를 사 왔다.

화분이 부족해 빨간 플라스틱 고추장 통에 구멍을 내고 화분으로 썼다. 토마토와 멜론이 줄기를 뻗고 잎을 뽑아냈다.


토마토는 빨간 열매를 맺었다. 하나 열리고 며칠 있다 또 하나 열리고. 콩알만 한 걸 아치라워서(사전적 의미는 '안타깝다'의 경상도 방언. but 실제 뉘앙스는 '귀하고 여려서 아깝고 애틋하다'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어떻게 먹나, 싶었지만 반으로 갈라 둘이 나눠먹으니 꿀맛이었다.


여하튼, 이 토마토 화분을 중심으로 날파리가 발생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따닥따닥 소리가 많이 날수록 적을 물리치는 장군에 빙의되어 어찌나 통쾌하던지.

왼: 토마토 싹 / 오:토마토 열매     by duduni  



그렇게 전기모기채를 옆에 두고 TV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천천히 눈앞을 가로지르는 날파리가 포착되었고 잽싸게 전기모기채를 휘둘렀다. 하지만 소리가 없었다. 놓쳤구나, 싶어 이를 갈며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데, 날파리는 금세 눈앞을 빙빙 날며 바짝 약을 올렸다.


슉슉! 아무리 휘둘러도 잡히지 않는 날파리.

이상하다.

그 날파리는 내 눈 밖에서 날아다니는 진짜 날파리가 아니었다.

눈 안에서 날고 있는 날파리였다!

내 눈이 움직이는대로 날파리가 따라왔다! 눈 안에서.

그렇다. 나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은근히 주위 사람들이 많이 앓고  '비문증'이었다.


즉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모니터 위로 날파리가 날아다녀도 어쩔 수 없었다. 검색한 내용은 대부분 노화현상, 방법 없음, 잊고 살아야 함...으로 결론 나 있었다. 가끔 저절로 사라진다는 희망적 글도 있어 며칠 기다려보기도 했다. 

종일 모니터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탓도 있는 것 같았다. 눈을 혹사시킨 대가를 치르는 건가. 글을 쓰는데 종이에 쓸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비문증이라는 병명을 알고나서부터는 날파리가 더 신경이 쓰였다.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거울을 봐도 하늘을 봐도 거무티티한 게 눈앞을 가로질러갔다. 그러기를 일주일, 안과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기로 했다.

동공을 확대시키는 산동검사를 받고 의사가 눈을 이리저리 누르고 갖은 검사를 했다. 비문증이 맞으며, 딱히 치료방법은 없다고 했다. 유일한 처방은 '날파리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살아라'였다.

하!!!

동공확대 상태  by duduni

안과를 다녀오고 나서 달라지긴 했다. 의학적 진단까지 나왔으니 자포자기한 거다. 계속 신경 쓰면 나만 손해. 억지로라도 날파리를 모른 척하고 신경 안 쓰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산책길에 깨끗한 하늘을 볼라치면 쓰윽 나타나는 이놈의 날파리를 난 모른 척한다.

미안하지만 난 너한테 관심 없어.

이런 마음으로 외면하지만 날파리는 계속 둥둥 떠다니며 내 주위를 맴돈다.


오늘도 전기모기채를 휘두른다.

따닥따닥 소리에 통쾌해하다가도 한 번씩 헛스윙을 한다.

아, 너구나.

눈 밖이 아니라 눈 안에 그놈이다.

에휴, 징글징글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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