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직장은 작은 환경단체였다. 환경을 살리는 일이 곧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알리는 캠페인, 캠프, 출판 등의 활동을 하며 사명감과 열정으로 충만했었다. 당시에는 세제에 포함된 계면활성제의 위해를 알리는 비누 운동이 주요 이슈였다. 비누로 머리를 감고 설거지를 하는 건 내게 너무나 당연했다.
간혹 회의가 들 때도 있었는데, 발전과 소비로 치닫는 시대에 이런 몸부림이 소용 있을까 싶어서였다.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나아질까 싶기도 했다. 가끔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는 계란 같고, 종종 드센 폭풍 속 새의 날갯짓 같아 공허해져 갔다.
몇몇 환경단체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어느 날이었다.
한 환경운동가가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비누로 머리는 못 감겠더라구요. 그래서 전 그냥 샴푸 써요.”
새의 날개가 단번에 꺾이는 순간이었다. 계란은 여지없이 부서져 바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환경에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오염의 폐해에 집중하던 환경운동은 보다 적게 쓰고 친환경적인 것을 선택하는 생활 실천으로 바뀐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외면하기 일쑤였고 간간이 힐끔거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환경에 관한 내 좌절감과 부채감이 가벼워진 건 어느 모임에서였다. 각자의 재활용 분리수거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택배 상자에 붙은 테이프 다 뜯어야 하는 거 알아? 좀 귀찮아도 그게 맞는 것 같아.”
“난 우유 팩이나 페트병은 씻은 다음 말려서 버려.”
“음식물 묻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안 된대. 이젠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겠어.”
대수로울 게 없는 대화였지만 그 순간 뎅, 하고 징이 울리는 것 같았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저마다 작은 노력을 보태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반가웠다.
사회·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못지않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 또한 꼭 필요하다는 것. 덜 쓴 비닐 한 장, 바르게 재활용한 플라스틱 하나가 지구의 쓰레기 산 하나를 줄일 수 있다는 것. 그 시절 현장에서 실망이 쌓였던 것처럼, 한발 물러난 내 일상 속 어딘가에 ‘어쩌면 가능할지도’하는 바람을 쌓고 있었나 보다. 실망도 바람도 계기가 되는 어느 순간에 터져 나온 것.
난 이제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뜯고, 플라스틱병을 헹구어 버린다. 잠깐의 불편함을 물리치는 작은 행동이 모여 지구와 생명을 살리리라는 신념이 내 안에 다시 쌓이고 있다.
바위가 얼마나 거대한지, 폭풍이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 바위를 향해 나아가고 , 거친 폭풍을 거슬러 날아오르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날갯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