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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Sep 06. 2024

제 2화. 아버지와 아들

“어서 준비하고 나오거라.아들아, 첫날부터 지각 해선 안되겠지?”

 나는 방구석 거울 앞에 서서 대답한다.

“네~ 금방 나갈게요!”

얼마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드디어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맞이할 마음에 들떠있었다. 

30학번 새내기인 나는 명문중의 명문 소위 SKY 중의 으뜸인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합격하여 입학식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데려다 주시기로 하였다. 고대하던 캠퍼스 생활. 그건 어떠할까 생각하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빵빵!”

“ 나갑니다 나가요! ”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여정을 떠난다.

“저… 아버지 땐 대학생활 어떠셨어요? 뭐 세월은 한참 지났을 지라도 처음엔 캠퍼스생활에 대한 낭만은 갖고 계셨었으려나? 하하하….”

 “나도 니 나이 땐 똑같았지. 이제 나도 어른이구나. 자유를 만끽하며 벌써부터 들떠가지곤 말이야, 물론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스마트 기기를 통해 합격여부를 받진 않았지. 그저 벽에 합격자들 번호를 벽보마냥 붙여놓고 직접가서 내 수험번호와 대조해서 거기에 붙어있으면 합격한거고 아니면 재수하는거였지 뭐, 희비가 극명히 갈리는 아날로그 그자체의 시대였어. 니처럼 명문대학교도 아니고 겨우 3년제 전문기술대학이었지만, 이 애비는 그 벽에서 내 수험번호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을 따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가장인 아버지가 있었고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 덕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따분할 정도로 평화로운 집안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외동아들인 나를 자신과는 다른 삶을 선사하기 위해 펑생을 고군분투하셨고 어머니는 현명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다. 그덕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는데에 성공했다.


  아버진 기계수리공셨다. 뭐, 이것도 멋들어진 표현일 뿐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건설현장, 자동차정비 보조, 소규모 선박수리, 용접 등 주로 육체노동을 제공하는 일들이었다.  학창시절 아버지께 문득 여쭈었던 기억이 난다. “아빤 그렇게 몸 많이 쓰는 일 하면 힘들지 않아요?” 어렸고, 철없던 내가 대답을 들어도 깊은 뜻을 알아듣지도 못할 질문을 했다. 그러면 아버진 그저 웃으시며 말해주셨다. “ 힘들기는! 이게 다 아빠가 기계만지는거를 좋아해서 하는 거야!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벌고 얼마나 좋냐? 하하!” 너털웃음에 뜻도 모르고 끄덕이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고된 일을 마치고 귀가하시는 아버지는 줄서있는 마을 사람들을 당연하다는듯 맞이하였다. 

“ 자~ 첫분부터 말씀해주세요~.” 첫번째로 서 계시던 아랫고개 영감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요놈의 선풍기가 20년을 멀쩡히 썼는데 갑자기 탈탈탈! 모가지도 안돌아가고 하도 시끄러버서 가져와봤어!” 아버진 답하셨다. “ 어데 함 보입시다. 20년을 썼는데 멀쩡하믄 그게 더 이상하지요 하하! 요놈 모가지는 제가 새것 맹키로 맨들어서 갖다드릴 터이니 오늘 하루만 좀 견뎌 주세요!” 영감님은 화답하셨다. “아이고 고마우이. 역시 우리마을 맥가이버여. 못고치는게 없다니까! 그나저나 일도 힘들낀데 이래 마을사람들 가전제품 다 고쳐주고 미안허이 젊은이…. 요거 얼마 안되지만 수리비라도 좀 받게.”

그러자 씨익 웃으시며 아버진 답하셨다. “제가 좋아서 마을 사람들 도와주는데 제가 어찌 그걸 받습니까? 받으면 장사판 펴야지요 하하. 그냥 그 돈으로 주전부리 하나라도 사 드셔요. 더운데 건강 챙기시고요~.” 

 윗고개 영감은 화답하였다. “에그 자네야말로 건강 해치지 않을 만큼만 혀! 그럼 난 들어가봄세! 어흠!”

“조심히 들어가세요 영감님! 이제 그다음 분 한번 보시죠!” 이번엔 아랫집 할멈이었다. “ 울집 세탁기가 달달달달 지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소리도 희안한게 빨래를 못혀. 내가 나이도 많고 힘이 없어가 그걸 업고 여까지 몬와서 일단 줄만 서있었어….” 여전히 아버진 미소를 띄며 답하셨다. “괜찮아요. 여기 장부에 성함, 고장난 제품, 주소, 기타사항 엔 뭐 어떻게 작동불량이라든지 이런거 쓰고 가시면 제가 시간날때 가서 함 봐드릴게. 말로 들어보니 모터가 말썽이구만요.” 할멈은 대답한다. “아이구 너무 고마우이. 우리 아들내미도 이리 착실했으면 을매나 좋았것어? 요거 내가 감자를 쪄왔는디 기다린다꼬 쪼매 식었지마는 안사람하고 얼라하고 노나 드셔. 내가 미안키도 하고 고마워서 그래.” 아버지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아이고 내가 우리 마을 돕자고 하는건데 이런거 안주셔도 되는데 하하하하…. 주시는데 우리 애랑 집사람이랑 잘 묵겠습니다! 뇌물 받았으니 최대한 퍼뜩 고쳐드려야겠구먼! 하하!”

아랫집 할멈이 돌아가시자마자 줄서있는 대기자들이 제각각 고장난 기계들을 하나씩 손에 들고 차례 차례 들어온다.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 나는 그때도 난 이해는 안갔지만 왠지 아버지가 멋있어보였다, 뭐든지 아버지 손만 거치면 뚝딱 새것처럼 작동하니 말이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었다, 높은 지능을 가진 사람은 환경에 따라 어떠한 방식으로도 표가 난다고. 가난한 시골마을 막내로 태어나 4년제 대학교는 꿈도 못꾸고 겨우겨우 기술만 배워서 돈부터 벌어야 했던 아버지는 아마도 저런식으로 표출이 된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도 머리가 크고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즈음 여전히 아버진 고된 몸을 이끌고도 마을에 강도 높은 봉사를 여전히 하고 계셨고 어렸던 나와 상반된 시선으로 보였다. 그리고 난 그게 불만이었다. 처음엔 아버지의 순수한 이타심을 동경했지만 차츰 커가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와서 언제까지 고쳐놓으라하고 가고 여전히 웃으시며 장부에 기록하고 저녁 식사 후 고치는데에 매진하셨다. 난 그게 바보같아보이기까지 했다. 왜 애써서 고생을 사서 하는거지? 저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건가?

 뭣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여러 기계들을 고치는 아버지 옆에서 신기하게 보며 “와 아빠 이건 뭐야? 어떻게 써?” , “아빠 근데 일하고 와서 또 일하면 너무 힘들지 않아? 아빠 괜찮아?”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뭘! 힘들어도 보람있고 재밌단다!” 그땐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되어야지 하며 우러러보았다. 하지만 차츰 성숙해져가면서 의문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루는 크게 말다툼을 한적이 있다.


 “아버지! 대체 이런거 언제까지 하실건데요? 아니 하실거면 수리비라도 받으시라니까요? 안그래도 힘든 일 하시면서 공짜로 그렇게 다 마을사람 물건 다 고쳐주면 뭐가 남아요? 건강만 안좋아진다구요! 그사람들은 남인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맡기고 언제까지 수리해놔라. 무슨 하인입니까? 그사람들 노예예요? 아니 진짜 아버지가 못하시겠으면 제가 사람들한테 말할게요. 도저히 아버지 괴롭히면서 공짜로 이득만 취하는 꼴 더는 못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왜 아무 말도 안하세요? 남편이 불쌍하지도 않나요? 전혀 말릴 생각도 없는거 같던데요?”

 어머니도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얘야 이거는…. 너는 아직 이해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좀만 더 크면 우릴 이해할 날이 올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주렴. 네 아버지 건강에 대해선 내가 책임지고 관리할테니 넌 너무 염려치말고 학업에 집중하려무나.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니 마음만큼은 참으로 기특하게 생각한단다.”


“아니요. 전 이해할 만큼 다 컸고요. 지금 당장 이장님 찾아가서 당장 못된 인간들 아버지 더는 괴롭히지 못하게 하렵니다. 저 막지 마세요.”


그대로 돌아서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 아버지의 눈과 마주쳤다. 아버진 말없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셨다.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느낀 난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는듯 했고 이윽고 조용해 졌다. 

어둑어둑 한 밤. 창밖에는 그날따라 유난히 큰 달이 말없이 밝게 방안을 비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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