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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Sep 10. 2024

제3화.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들은 나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렀다. 직역하자면 미친 과학자라는 뜻이다. 과학에 미친 사람이라서인지, 과학자인데 미쳐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건지는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어떤 뜻이건 간에 둘 다 나에겐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

“소장님, 다음 주에 대통령께서 방문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내 비서 실장이다. 

“그런데? ”

나는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 저 그게 며칠 무슨 요일에 오실진 아직 모른다고 합니다!”

하…. 저런 모지리를 비서랍시고 붙여주다니. 이 나라에는 인재가 정녕 없는 건가?

“그래서?”

나는 한층 더 귀찮다는 듯 약간 짜증 섞인 어투로 대꾸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연구 성과물들하고 논문들이나 자료들을 미리 정리해 두고 연구소 건물 내부랑 연구 단지 도로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준비를 해놓아야지 않겠습니까?”

“왜?”

점점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려 한다.

“예? 그게 높으신 분께서 시찰 나오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라 무려 대통령께서 방문하십니다. 우리 연구소는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받아 운영되는 만큼….”

“연구에 매진하면 되는 거 아닌가?” 

도저히 다 들어줄 가치가 없어서 너무도 당연한 말을 일깨워 주었다.

“그건 그렇지만…!”

다시금 말을 자른다.

“박 실장.”

“예!”

“일단 그 ‘높으신 분’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뭔가?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청소나 하라고 잡역부로 고용되어와 있나? 자네는 대통령의 비서실장인가? 아니면 나의 비서실장인가? 현재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있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소장님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지 않습니까? 그에겐 권력이 있습니다. 자칫 밉보이면 우리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소장님께도 더 이상 연구를 하시기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가 필요합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매한 인간들을 인도하는 것 또한 우월하게 태어난 자로서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잘 듣게 박 실장. 난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니까. 내 장담컨대 그자는 절대로 내 연구를 막을 수 없을 걸세. 내가 그들이 필요한 것보다 그들이 나를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하지. 내 말을 믿게.”

그제야 한풀 기가 꺾인 듯 납득하고 돌아선다.

“아 하필 내 상사가 저런 나르시시스트 꼰대라니….”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나는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박 실장. 난 귀가 밝아서 다 들린다네.”

박 실장은 매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앗! 그게 저… 죄송합니다 소장님! 앞으로 주의토록 하겠습니다!”

나는 찬찬히 그에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

“박 실장. 괜찮으니 고개를 들게. 그런 건 나에겐 의미가 없으니. 그것보다 박 실장은 우리 연구소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약간 안심한 표정을 한 박 실장이 대답한다.

“저 이제 6개월 조금 넘었습니다!”

“흠.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적응은 되었을 테지. 우리 연구소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는 알고 있는가?”

이번엔 약간 여유가 있다는 듯 자신 있게 대답한다.

“예! 우리 국립 한국 과학 연구소는 대한민국의 최대 강점인 지적 자산의 가치를 생산하고 발전시켜 국내외 가리지 않고 많은 인재들을 영입하여 공공의 이익과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크게 과학부, 기술부, 의학부 이렇게 3곳으로 나뉘며 저희가 속한 과학부가 총책임 부서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최대 규모인 길이 10km의 입자가속기 또한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 누가 보면 여기 홍보담당인 줄 알겠네.”

또 살짝 풀이 죽는 표정이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나는 타이르듯 말을 한다.

“방금 한 말들은 대통령 앞에서 하면 딱이겠어. 그리고 분명 우리 과학부가 선도하고 있고 나는 그중 총책임자인 셈이지. 자네도 이 정도 위치에 임명된 걸 보니 학력이 꽤 괜찮을 듯 하네만? 어떤가?”

이번에도 약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뀌며 스스로를 어필하기 시작한다.

“예! 저는 8세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일반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을 기반으로 학업을 성취하여 만 15세에 스탠퍼드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였고 만 18세에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만 20세에는 의학박사 또한 취득하였고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에서 5년,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4년 재직한 바 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 카이스트 대학교 입자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 이 연구소에 스카우트되어 과학부 물리학과 입자가속기 운영팀에서 일하다 승진하여 이렇게 비서실장까지…….”

“그만하면 됐네. 와우. 상당히 치열하게 살았겠구먼? 그래서 그렇게 살아오면서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었나? 아니면 야망을 품고 있다든지? 아니면 그저 스펙 쌓아서 과시하고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건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박 실장은 주섬주섬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도 가르치며 보람도 많았고 이젠 국가 발전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큰 사명감을 느낍니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답변이었다.

“긴장 풀게 박 실장. 난 그런 틀에 박힌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자네가 진짜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가?”

박 실장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저는! 그게 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또….”

말을 자르고 다시 물어본다.

“그게 아니야! 그럼 이렇게 묻도록 하지. 자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기피하고 싶은 그런 것 말일세. 이번엔 솔직하게 대답하도록 하게. 여긴 어차피 우리 둘 뿐이야. 아무도 듣지 못해. 그러니 어서 말해보게.”

다소 짜증 섞인 어조로 닦달했다. 그러니 의외로 박 실장은 차분한 표정을 보이며 대답했다.

“제가 가장 기피하고 싶은 것, 뭐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 제가 살면서 쌓아온 모든 영예를 잃는 것,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 봐. 자네도 결국 한 개인에 지나지 않아. 나도 그렇고 대통령도 그렇고 그 어떤 인간도 말이야.”

박 실장은 한숨 고르는 듯하면서 담담히 대답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바로 그걸세.”

난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역사상 제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인물일지라도 죽음만큼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생명의 한계이지. 아무리 젊은 날을 불태우고 노화가 진행되고 인생 막바지에 노벨상을 탄다 할지라도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넨 방금 ‘첫 번째 단계’를 통과했네. 축하하지.”

박 실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되묻는다.

“예? 첫 번째 단계라뇨?”

난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잠시 걷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장실을 나와 비서실을 지나 바깥 통로를 향했다. 창문 밖으론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연구 단지가 보인다. 

“참 대단하지 않나? 착공에서 준공까지 5년. 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갖출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이 연구 단지. 처음 지어질 때만 해도 현실성이 없다던 국회의원들, 산지가 70퍼센트에 가까운 이 땅에서 산을 깎아가며 부딪힌 수많은 환경단체들 등 엄청난 반대에 시달렸지. 하지만 준공 후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해외로 유출되던 인재들을 수용하고 응용과학, 첨단산업 제조기술 등을 해외 수출하여 외국자본을 쓸어 담 듯하고 있고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훨씬 더 높은 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지.”

박 실장은 그저 끄덕이며 듣고 있다. 

“그게 다 내가 소장으로서 진두지휘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지. 아무런 골 빈 무지렁이가 책임자였다면… 상상도 하기 싫군. 이미 헛돈만 쓰고 산산조각 나서 나라는 오히려 슈퍼 인플레이션에 빠졌을 걸세. 박 실장 자네도 어쨌든 '장'으로서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하는 덕목이네. 책임이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가 지는 것이지. 단순히 학력이 뛰어나다고, 심금을 울리는 연설을 잘한다고 리더가 되는 게 아니야. 적어도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 혹은 그룹에서 요구하는 모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발휘하는 것이 리더십이란 말이지. 알아듣겠나? 리더란 팔방미인이어야 하는 걸세.”

박 실장은 심기가 좀 불편해 보인다.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인다.

“죄송하지만 소장님 저도 소장님께 뭘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맘껏 물어보게. 아! 그리고 내겐 그렇게 체면 차릴 필요도 없고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다네. 그런 사소한 것들은 신경 쓰지 않으니.”

여태껏 그를 지켜봐 왔지만 그에겐 여러 버릇 중 한 가지가 있다. 무언가 결심했을 때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지금처럼.

“외람되지만 소장님도 저에 대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분야에서 인정받을만한 노력을 했고 능력을 갈고닦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요. 이 정도면 저도 충분히 리더로서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소장님 눈에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가 보죠?”

그는 미간에 힘을 주고 눈에 불이 타오르듯 날 똑바로 쳐다본다. 마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처럼 따지듯 묻는다.

“하하. 자네 정도 되는 인재에게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있겠나? 박 실장 열등감이라도 있나 보군? 그런 게 아닐세. 난 오히려 자네의 능력을 더 키워주려고 한다네. 세상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지. 너무 일차원적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 말게나.”

그렇게 꽤 먼 거리를 뚜벅뚜벅 걷다가 박 실장이 우뚝 멈춰 서며 아랫입술에 피가 맺힐 듯 씹으며 또 질문한다. 참 예상하기 쉬운 친구 군.

“정말 외람되오지만 소장님? 소장님은 박사학위 겨우 하나 가지고 계시고 내신 논문도 별로 없는 걸로 압니다. 물론 연구소 경영은 잘해오셨을지 몰라도 제가 더 잘하면 잘했지 그런 괴상한 철학이나 들을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당히 격앙된 어조이다. 마치 바늘로 콕 찌르면 터질듯한 텐션이다. 나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응했다.

“흠 거의 다 왔군. 여기 엘리베이터를 타면 되겠어. 따라오게 박 실장.”

황당하면서도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따져 묻는다. 이젠 이빨까지 빠득빠득 거리며 말한다. 

“아니 소장님? 어디 가십니까? 대답은 해주십시오!” 

거 참 아직 어린 친구 군. 이래서 '고지능 바보’들은 뽑지 말라고 했건만. 모든 인원을 내가 일일이 다 면접 봐줄 수도 없고.

“일단 진정하고 따라타게 박 실장. 백문이 불여일견. 내가 말보다 더 훌륭한 대답을 보여주지.”

그리고 신분증 겸 키카드인 목걸이를 센서에 갖다 대고 입자가속기 층을 누른다.

박 실장은 이젠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아니 거긴 입자가속기 층일 뿐이잖습니까? 거긴 수십 번도 가본 곳입니다. 당분간 새로울 게 없는 곳인데 왜입니까?”

나도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데려와놓고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자네 키카드로는 많이 가봤겠지. 내 카드로 가 아니라.”

이젠 뭘 물어야 할지 몰라서 물음표만 한가득 띄운 얼굴로 아무 말도 못 하는 박 실장을 보다 못해 한마디 더 해준다.

“박 실장. 내가 세상을 너무 일차원적으로 보지 말라고 했잖나. 세상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예? 그럼 소장님 키카드를 대면 무슨 비밀의 방으로라도 간단 겁니까? 어차피 같은 건물 구조에 우리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이지 않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허풍이나 눈속임 따위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이 엘리베이터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는 겁니까?”

참을성마저 없군. ‘고 지능 바보’들은 이래서야…. 쯧쯔. 뭐 여기까지 데려온 건 내 선택이니. 그래도 난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으니 괜찮겠지.

“이보게 박 실장. 아까 내가 자네보고 ‘첫 번째 단계’를 통과했다고 했지. 대부분은 거기 통과하기도 어려운데 자넨 해냈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몇 번째까지 있는지는 묻지 말게. 그건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고 무엇보다 내가 결정하지. 자넨 최종 단계까지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 물론 전적으로 그건 자네 마음에 달렸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 나의 일은 강제로 시켜서 따라오게 만들기엔 너무….”

“예 예? 너무 어떻단 겁니까?”

이젠 아까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한다. 흠. 벌써부터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면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띵동! 지하 연구동입니다.>

“아! 도착했군. 자 따라오게.”

이젠 그도 체념했다는 듯 말없이 따라온다. 내리자마자 경비초소가 보인다. 그리고 자동 음성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여기부터는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곳으로 함부로 물품이나 서류 등을 반입, 반출할 수 없고 이 안에서의 일을 밖에서 언급해서도 안됩니다. 이를 어길 시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합니다. 모든 소지품과 통신기기는 좌측 상자에 넣고 경비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검색대로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긴 줄에 무장한 경비들, X선 검사 등 매우 삼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박 실장은 할 말을 잃은 듯하다.

“무슨 국제선 타러 온 것 같지? 이쪽으로 오게. 우린 저렇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VIP 전용 통로로 이동하려는데 한 경비가 이쪽을 보며 말한다.

“정지! 그쪽은 VIP 전용 통로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앗! 충성! 소장님이신 줄 몰라 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 내가 경비근무 군인들 교육할 때 내 얼굴을 반드시 숙지시키라고 말했거늘…. 평소 같았으면 심 대령 불러다가 한소리 했겠지만 지금은 내 조수 후보 교육 중이니 운 좋은 줄 알 거라.

“하! 아닙니다. 제가 군인도 아니고 충성은 무슨…. 그럼 평소대로 내 연구 성과를 좀 보러 들어가겠습니다. 아 뒤에 이 분은 박 비서실장이라고 제 동행입니다. 좀 지나가도록 하지요.”

“예! 수고하십시오!”

박 실장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게 보인다.

“음, 길은 이쪽이네 박 실장.”

“예! 소장님 여긴 근데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부… 분명 입자가속기 운전실이 나와야 하는데 왜… 아니 저 군인들은 또 뭡니까? 그리고 왜 소장님한테 저리 쩔쩔매는 겁니까? 우리는 휴대폰이라든지 제출하고 검사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나 쓰는 이런 VIP 통로로 가는 게 맞습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구불하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불안한 표정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는다. 흠. 새로운 특성을 알아냈군. 당황하거나 불안하면 말이 많아지는군.

“왜 내가 여길 지나가냐니? 난 연구소장으로서 총책임자인데 갈 수 없는 곳이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애초부터 여긴 내가 만든 곳이야. 여기 있는 모든 시설은 내 지휘 하에 지어졌지. 이 거대한 연구 단지의 진짜 목적 말일세.”

이제 통로가 거의 끝이 나고 내부시설로 진입하는 문이 서서히 열린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3중 잠금 문이라 열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양해 바라네. 뭐 한 가지는 자네 말이 틀리진 않았던 거 같군.”

철컹철컹…. 둔탁한 쇳소리와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마지막 문이 열린다. 박 실장은 벙찐 표정으로 문만 쳐다보며 말을 한다.

“어떤…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비밀의 방’ 말일세. ‘비밀의 방’. 하하하! 긴장 좀 풀라고. 조크도 못 알아먹는 겐가? 뭐 아무튼 이 안에 내가 진짜로 연구하는 것들이 있지. 물론 일급비밀이기도 하고. 그러니 밖에 나가서 괜히 여길 언급 했다가 사형대에 오를 멍청한 짓은 하지 말란 말일세.”

박 실장은 그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며 식은땀을 흘린다. 뭐 평범한 사람이 처음 보기엔 너무 압도적이겠지. 이 정도는 봐줄 만한 문제다. 앞으로 익숙해지면 될 테니.

이제 문이 활짝 열리고 내부가 훤히 보인다.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기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짓고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길 아래로 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심연이 펼쳐져 있지만 이따금 용접하는 푸른 섬광과 옅은 소리가 전해져 들려온다. 위를 봐도 마찬가지고 옆을 봐도 마찬가지이다.

“흠…. 아직은 멀었지만 일부 시설은 작동되겠군. 이리 오게 박 실장. 내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알려주겠네.”

이런! 박 실장은 털썩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눈에 초점이 풀려 보인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건가?

“흠흠! 너무 놀라지 말게 박 실장.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내가 하나하나 설명해 주지. 그러니 일어나 보게.”

박 실장은 손을 덜덜 떨며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소… 소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시설을 제가 여태 몰랐던 거죠? 제 위치가 이래 봬도 소장님 다음 서열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건 생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저 로봇? 어떻게 벽에 붙어있죠?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겁니까? 저런 기술도 난생처음 봅니다! 그리고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건물인데 인부라든지, 적어도 감독관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이잖습니까?”

“이보게 진정 좀 하게. 놀라야 하는 건 지금 저따위 벽에 기는 로봇이 아니야. 아직 하나도 안 보여줬다고. 그냥 껍질일 뿐일세. 그리고 이 규모의 건설을 효율적으로 함과 동시에 바깥으로 한마디라도 새어나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인부는 쓰지 않고 100% 기계가 건설하고 인공지능이 감독하지. 내가 좀처럼 인간을 믿지 못하거든. 그러니 자네는 여기 온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으로 알란 말이야. 그러니 당장 일어서게!”

박 실장은 꽤나 충격이 컸나 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천천히, 몸을 덜덜 떨며 일어선다. 

“…. 저 벽을 자유롭게 다니는 로봇만 해도 이미 세상에 없는 오버 테크놀로지인데…, 저따위 것이라니…. 그리고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시설을 100퍼센트 자동화해서 건설하는데 인공지능이 이 모든 걸 감독한다고요…. 하하…. 조크가 좀 지나치시네요 소장님. 그리고 이건 그냥 껍데기일 뿐이라고요? 더는 못 봐주겠군요. 마치… 내 평생이 부정당한 기분입니다…. 솔직히 안에 더 들어가기 두렵군요 소장님. 무엇을 볼지 모르니까. 그러니 저는 그냥 돌아서겠습니다. 여기까지에 대해선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요. 뭐 말해도 아무도 못 믿긴 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박 실장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뒤돌아 나가려고 몸을 움직인다. 하…. 이런 좀생이 일 줄은 몰랐지. 이번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또 ‘고 지능 바보’ 였던 건가? 

“안되지 안돼. 여기까지 와서 돌이킬 순 없다네. 여기에 자네 같은 일반인이 들어오기에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는가?”

그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며 말했다.

“돌아갈 거면 안쪽까지 들어가서 우리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바로 그게 ‘두 번째 단계’일세.”

박 실장은 완강히 내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쓴다.

“이거! 놓으시라고요! 저는 가겠습니다! 아니 무슨 힘이 이렇게….”

나는 그를 놓지 않기 위해 반대쪽 손은 복도의 금속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발버둥 치던 박 실장은 내가 잡고 있던 금속제 손잡이가 강하게 휘어 찌그러진 것을 보고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군.

“이렇게 하지. 내 말대로 안까지 들어가서 나의 연구와 이야기에 대해 듣고 그래도 ‘두 번째 단계’를 거부한다면 여기에 관한 기억만 삭제한 후 원래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네. 아니면 여기서 손목이 으스러진 후 아무도 믿지 않을 음모론만 외치다가 평생 정신병원에 갇히는 거지. 그렇게 허비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지 않나? 여태 쌓아온 커리어가 아깝지 않나?”

온몸에 힘을 빼고 간신히 서있던 그는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소장님…. 여태 저 앞에 몇 명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 보내버렸나요 소장님?!”

나는 그의 팔을 놔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넨 아직 인간적 감정이 너무 많아. 하지만 감성에 호소해 봤자 그 누구도 도와주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오직 이성만이 살 길이지. 앞으로 차차 이성을 강화해 나갈 걸세. 아 물론 자네가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한다면 말이지. 자 그러니 어떻게 하겠나?”

박 실장의 아랫입술은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찬찬히 들자 그 피가 턱 끝을 따라 목까지 적셔진 후 바닥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졌다. 그러고 나선 내 눈을 다시금 정확히 바라보고 말했다.

“소장님…. 아니… 당신은… 미쳤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는 그렇게 얼굴을 숙인 채 말없이, 그리고 천천히 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주변엔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기계들 외엔 아무도 없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표정을 숨기려는 듯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 섞인 타액을 랩코트 자락으로 닦아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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