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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Sep 06. 2024

제 1 화. 파멸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조차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미약한 감각만이 흘러들어왔다. 손발이 저려 온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촉각이 매우 희미하다. 마치 오감이 마비된 것만 같았다. 순간 시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청각이 희미하게 돌아왔다. 강렬한 백색소음이 점차 잦아들고 두뇌활동이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켜 현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마지막의 기억을 짚어보기로 하였다. 대학원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은퇴하신 부모님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그간 하지 못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기분 좋고 행복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술기운에 잠에 들었고, 그러다가 난생 들어본 적도 없는, 단순히 ‘크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강력한 폭파음에 의식을 차리게 되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파로 인해 한때 나의 보금자리였던 고향집은 겨우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파괴되었고 그토록 잔인하리 만큼 강력한 무력 앞에 나는 그저 바람 앞의 등잔불 같은 신세였을 뿐이었다. 최대한 침착함과 이성을 유지하려 애를 써보았지만 냉철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선 무력하고도 공포스러웠다.

  그 무렵 내 시청각은 거의 회복되어 가며 동시에 절망 그 자체를 목격했다. 주변은 아비규환 그 자체, 나뒹구는 육편들, 사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나와 같이 아주 운이 좋게 살아남아 비명으로 거리를 가득 메우는 자들, 그렇게 너무나도 순탄했던,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는 인생의 역경 한 번 겪어본 적 없는 나의 앞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지옥도가 펼쳐져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덕분에 철근 파편이 박힌 허벅지에서 이물질을 어렵지 않게 뽑아냈다. 순간 뿜어대는 따뜻한 진홍빛 액체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의를 찢어 상처를 동여매 강하게 압박하여 지혈한 후 안방에서 주무시던 부모님의 침실로 달려갔다. “제발! 제발 부모님 만큼은!”이라고 되뇌며 달려간 나는 반쯤 부서진 문의 틈을 통해 안쪽에서 움직이지 않는 인간의 형체 두 구를 발견했다. 지체할 것이 없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주먹으로 나무문을 파괴한 후 들어가 살폈다. 정말로 다행히도 우리 집은 폭파로부터 빗겨맞은 듯하였다. 왜냐하면 다른 이웃들의 집에 비해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설마…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겠지? 나 만큼은 남들과 다르겠지?”라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천천히 인간의 형상에 다가가 보았다. 천장의 일부가 부서져서 구조물 파편들이 아래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두 인간의 형상을 한 물체는 사이좋게 손을 잡은 채 누워있는 것을 보아 금슬 좋기로 유명한 우리 부모님이 분명해 보였다. ‘단순 기억을 잃은 걸까?’

그렇게 나는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거대한 공포심과 맞서야 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가족, 유일한 혈족인 부모님의 생사여부. 

 “아… 아버지?? 어머… 니??”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예상대로 응답이 없었다. 도무지 직접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혼자 몇 발치 앞에서 뒤돌아 앉아 도피성 말만 중얼댔다. 그러나 곧장 이성을 되찾았다. 

“ 냉정해져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그래. 호흡과 맥을 짚어보자.” 

드디어 부모님의 신체에 다가간다. 심야의 시간이었지만 주변 곳곳마다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무너진 천장 틈으로 비쳐 들어오는 아름다운 달빛에 내 시각을 의존하여 첫 번째 육체를 살폈다. 이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무사하셨다.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으셨지만 여느 때처럼 강하게 맥동하는 심장박동, 살갗이 조금 찢어진 것 외엔 뚜렷이 보이는 외상은 없었다. 

 “다행이다…. 사지도 다 붙어 있으시구나….”

나도 모르게 엽기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아마도 이방으로 오기 전 목격했던 피해자들 신체의 일부분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는 광경 때문일 것이다. 

의식이 없으신 와중에도 아버진 어머니의 손을 꼭 붙들고 계셨다. 

“그래. 아버지는 무사하시니 이제 어머니를 확인해 보자….”

그렇게 유난히도 달빛이 많이 들어오는 뚫린 천장을 통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뇌리에 각인되고 말았다.

그 아름다운 보름달의 밝은 달빛이 유독 많이 들어오는 구멍아래로는 당연히 육중한 천장 조각이 떨어졌을 터.

그렇게 한때는 인간의 얼굴이었음을 겨우 알아볼 만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아무리 만지고 꺼내보려 해도 물컹거리는 덩어리들과 질척거리는 액체들이 손가락 사이로 계속해서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날따라 짓궂게도 높이 뜬 달빛은 유난히도 밝았다.





안녕하세요?이 소설은 과거 저의 상상력으로 만든 세계관을 바탕으로 썼던 습작 소설을 기반을 두고 세부적인 주인공과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소설입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드신다면 라이킷과 댓글로 피드백주시면 주인공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데에 큰 힘이 된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동시 연재

https://blog.naver.com/tech_civilized_man/223570064881


p.s. 원래 소설은 매거진에, 포스팅을 브런치북에 연재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반대가 맞다고 판단하여 다시 글 올립니다. 읽어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 앞으로 연재도 지켜봐주시면 대단히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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