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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이점 Sep 20. 2024

제4화. 두 번째 단계

우리는 통로를 지나 시설 내부로 진입했다. 박 실장은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얼굴을 애써 가리고 있지만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간다. 휴…. 이번엔 좀 성공해야 할 텐데. 나도 지친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우수하다는 인재들을 인종별로 데리고 와보았지만 반응은 제각기였으나 결국 ‘두 번째 단계’를 극복할 수 없어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도 그저 우연이었나 보다.



“아! 드디어 도착했군. 내 즐거운 집.” 

나는 소장 전용 키카드로 문을 열며 말했다.

“얼른 따라 들어오게. 쓸데없는 감정 때문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박 실장은 말없이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내 집에 온 걸 환영하네. 좀처럼 손님이 없거든. 아! 그리고 미리 알려두건대 이 공간은 나의 사적 공간이자 집이야. 다시 말하자면 여기선 자네의 직장 상사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호칭도 편하게 불러도 좋아. 자네도 알다시피 난….”

박 실장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런 미친! 편하게 대하라고 하자마자 이제 막 나가기로 한 건가?

“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시겠죠? 것 참 대단한 배려네요. 하하….”

그 순간 폭발적인 분노가 격하게 치솟았다.

“ 내 말을 끊지 마! 새겨듣도록 하게.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들 중 하나니까. 알겠나!”

박 실장은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만도 하지. 나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살아왔으니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어쨌든 금방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다른 주제로 돌렸다.

“흠흠.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네. 어쨌거나 이곳은 내가 직접 건설한 나만의 공간이야. 그리고 여기는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다든지 하는 그런 음… 뭐 아무튼 나의 집이라네. 정부가 요구하는 초거대 건축물을 지어주는 대신 걸었던 조건 중 하나지. 멀뚱히 서있지 말고 아무 데나 앉도록 하게.”

그러자 그는 대충 가까운 테이블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애써 논리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발악하는 티가 난다. 그리고 약간의 흥분이 가라앉자 큰 한숨을 내쉬며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후……. 그래서 여기가 당신의 집이란 말이죠? 전용 연구실까지 딸린? 하하…. 이거야말로 코미디 그 자체로군요. 게다가 이 연구 장비들은 세계 어떤 기업에서도 제조한 적 없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야말로 미래에서 온 듯 보이는 기계들이잖습니까? 거주 공간만 해도 100평은 족히 넘어 보이고 연구실 및 기타 시설 등등 합하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해 주며 그에게 다가갔다.

“대충 잠실구장 부피랑 비슷하지. 그리고 난 타인이 만든 장비는 좀처럼 신뢰하지 않아서 웬만해선 직접 제조해 쓴다네. 그러니 처음 보는 게 당연하지. 여기, 커피 한잔하겠나? 아니면 좋아하는 차라도 있나? 자넨 내 손님이니 음료 대접 정돈 해줘야지. 말만 하게.”


이미 베버리지 머신은 2개의 작은 바퀴로 날 따라다님과 동시에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내 걸음에 한 치 오차도 없이 속도를 맞춰 움직인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 위치한 테이블까지 문제없이 따라오며 단 한 방울의 커피도 튀기거나 흘리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이다. 내가 직접 설계했으니. 

기계는 내가 컵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자 2개의 바퀴는 몸체로 수납되어 들어가고 나의 옆에 위치를 고정했다. 마치 내 손이 닿기 적절한 곳에서 다음 커맨드를 기다리는 듯이.

박 실장은 마치 신문물을 접한 원시인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본다.

“흠. 일단 자네는 마음의 안정부터 찾아야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겠구먼. 지금 상태론 안 되겠어. 여기 캐모마일 차라도 마시게. 자네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줄게야.”

베버리지 머신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이미 음료를 완성해 놓았다. 물론 단순한 차가 아닌 캐모마일 향이 나고 내가 직접 분자구조를 개선하여 부작용을 줄인 심신 진정제가 섞여있는 음료이다. 그는 이성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내가 배려해 주는 셈이지.


박 실장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내가 건넨 음료를 받아서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저… 저 기계는 말이 안 됩니다…. 그, 그렇지! 자이로스코픽 스태빌라이저를 쓴 겁니까? 아,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계단 5칸을 내려오면서 바퀴를 노면에 맞게 실시간으로 변형시켜 가며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저 움직임은…. 휴우….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군요….” 

박 실장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더니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켠다.


이 와중에 본능적으로 기계의 작동원리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것을 보면 아까보단 약간은 진정된 듯해 보인다. 그래 저것이 바로 타고난 과학자의 본능이지….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래서 좀 더 맞춰줘 보기로 했다.

“하지만 존재하고 작동하지. 바로 자네 눈앞에 분명히 보이듯이. 뭐 그렇게까지 신기할 것은 없네 박 군. 원리는 간단하니까. 아, 여기선 박 군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나? 뭐 앞으론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

박 군은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아무튼 계단을 내려가는 중 높낮이와 흔들림을 감지해 관성력의 반대 방향으로 정확히 같은 힘을 가해 상쇄시키면 아무런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효과와 동일하게 고요한 평형상태를 유지하지. 그렇게 몸체와 노즐 위치를 실시간으로 조정해 가며 단 한 방울도 튀지 않게끔 컵 안에 커피를 담아낸다. 이 정도는 고전역학만 대충 알아도 이해할 텐데? 겨우 박사학위 하나와 졸업 논문 몇 편 낸 정도뿐인 나도 이해하니까 자네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네. 그리고 노면에 맞춰 변형되는 바퀴는 이미 시제품들이 세상에 많이 나와있어 흔한 개념이고. 내가 한 거라곤 그저 기존의 지식과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실존적 형태로 구현했을 뿐이야. 어떤가? 듣고 보니 별것 아닌 것 같지 않나? 물론 직접 만들 수도 있겠지? 나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만큼 간단한 것을 초 엘리트 코스를 밟고 박사・석사 학위만 도합 8개를 취득해 내고 세계적으로도 학회에서 인정받은 데다 찬란한 인생을 살아온 천재 중의 천재인 자네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아니겠나?”

박 군은 당연히 예상한 반응을 보이지만 ‘캐모마일 차’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인지 한풀 낮은 톤으로 반박했다.

“ 아니! 그게 저! …. 휴…. 일단 학력으로 섣불리 판단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연구소 특성상, 그리고 제가 상대를 평가할 때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했습니다. 다만 방금 하신 설명에 반론을 제기하자면 이론은 이론일 뿐입니다. 이론을 기술적으로 현실에 구현할 때는 변수를 배제하는 이론과는 다릅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수없이 쌓여서 얻은 데이터, 노하우 등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끊임없이 결함을 찾아내어 더 정교하고 개선하는 게 공학적 기술이란 말입니다!. 소장님… 아니 당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이미 인류는 태양계를 지배했을 겁니다.”

분명 그의 시점에선 논리적 반박이다. 하지만 이런 건 시간 낭비일 뿐이야. 어차피 무슨 말을 대답하든 간에 소귀에 경 읽기일 테니. 

나는 냉소적인 웃음과 함께 혼잣말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라니. 허허 참. 웃기지도 않는군. 애초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생각해 내는 것’이 진정 천재 과학자가 아니겠는가? 쯧쯧….” 

한참 멀었군. 본인이 부정하는 기계가 눈앞에 이미 존재하는데도 말이지.

박 군은 이 말을 기어코 듣고는 혼자 흥분하여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또 반론하려 든다. 그의 성격상 자존심에 강한 충격을 받았나 보지. 

“궤변입니다! 이 우주는 한없이 카오스를 향해 변화하고 있고 그에 반해 인류는 아직 알아낸 점이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 어떤, 현생인류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도 결코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박 군은 캐모마일 효과와 더불어 흥분한 상태에서 일어서다 미끄러져 자칫 넘어질 뻔했다. 난 예상했지만 방관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가 다치지 않을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억! 어라? 아니?” 

이런. 당황스러운 나머지 인간의 언어도 잊었나 보군.

박 군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쿠션들에 걸쳐진 채로 말했다.

“이… 이게 뭡니까? 저는 분명히 넘어질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뭡니까 대체?!”

약효가 많이 오른 건지 하루 안에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어차피 이 상태론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하겠구먼.

나도 슬 피곤한데 내일을 기약해야겠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아, 이건 별거 아닐세. 내가 개발한 안전사고 방지 시스템이고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을 예상’하여 50밀리세컨드 내에 반응하여 순식간에 사고를 방지하지. 자네가 넘어지려고 할 때 의자의 팔걸이 부분과 바닥에서 빠르게 튀어나온 쿠션이 사고를 방지해 준 걸세. 감사 인사는 됐어. 어쨌든 간에 인간의 몸은 부서지기 쉽지 않은가? 일단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이어서 대화를 나눠봄세. 이 녀석들이 게스트룸으로 자넬 안전히 데려다줄 테니 안심하고.”

박 군은 또 땡그랗게 눈을 뜨고 따져 물을 자세를 취한다. 저 호들갑은 멈출 줄 모르는구먼. 좀 짜증이 나긴 한다. 대신 행동 패턴을 예측하긴 쉽지만 말이다.

“네? 무슨 녀석들 말입니까?”

라고 그가 말하기 무섭게 이미 천장과 바닥에서 촉수형 기계들이 내려와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휠체어 형태로 변환된 음료 기계 위에 살포시 앉혀준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질문을 해대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얼굴에 써져 있을 정도이다. 어찌나 예상이 쉬운지!

“아니? 이건 또 어떻게… 아니 그 커피 머신이 변신한 겁니까? 그리고 모든 기계들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마냥 움직이고….” 

나도 이제 슬슬 일일이 대꾸해 주기 귀찮다. 

“쉿. 지금은 아닐세. 내일 모든 의문을 해소시켜 줄 테니 자넨 이만 쉬도록 하게. 방은 웬만한 5성급 호텔 스위트룸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니까 안심하고 편안하게 푹 자라고. 혹시나 방이 마음에 들면 자네에게 내어 줄 테니 전용 실로 써도 좋아. 그럼 내일 봄세.”


드디어 그가 게스트룸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가면서 방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했다.

“아! 박 군. 잊지 말게. 이 세상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휴. 드디어 오늘 일과가 끝났군. 박 군도 머릿속은 복잡하겠지만 피로에 찌들고 약효까지 받으니 금방 잠에 들었다.


나도 이만 오늘 일과를 정리해야겠다. 나머진 내 ‘진짜 비서’에게 맡기도록 하고.


에이바.(AIVA:Artificial Intelligence of Variable management Assistant.)”

<네 소장님. 부르셨습니까?>


내 ‘진짜 비서’인 '에이바'이다. 당연히 내가 직접 설계하고 또한 오로지 나에게만 복종하는 인간과 기계의 중간쯤 걸쳐진 인공생명체이다. 내 연구에 꽤나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지적 생명체이기도 하다.


“당연히 오늘 일들은 기록했겠지?”

<물론입니다. 그로 인해 Dr. 박의 행동 및 언어 패턴을 발견하였으며 그의 대외 활동 정보 및 생애, 그리고 연구소에서 6개월간 보인 대인관계 및 행동과 발언 등을 종합해 볼 때 99.9%의 일관성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리고 유전자는 쿠션에서 체모를 확보하여 검사 중에 있으며 약물로 억제 불가능한 DNA 코드에 새겨진 잠재적 위험성이 발견될 시 즉시 폐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명령하기 전까진 내버려둬. 네가 분석한 대로 저 청년은 예측하기 쉬워. 단순하지.”

<분부대로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장님, 그런데 무언가 우려되는 일 있으십니까? 뇌파 및 호르몬 스캔으로 보건대 스트레스 수치가 정상치를 상회합니다. 스트레스 완화제를 투여받으시겠습니까?>


가끔은 에이바에게 가장 기초적인 ‘유사 감정’을 부여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저 유치한 이름도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물론 100%의 이성으로만 작동한다면 당장의 퍼포먼스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거시적으로 보면 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었다. 스스로 발전하되 때로는 발전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뭐,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어쨌든 한 생명 개체로서 최소한 엇비슷한 지능을 갖추고 교감할 수 있는 ‘동료’, ’ 친구’, 또는 ‘가족’을 원하기도 했었기에 완벽하고 철저하게 효율적인 로봇을 원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인간의 감정은 너무나도 심각하게 과학 발전의 저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억제하고 살아왔다. 

지독하리 만치 아이러니했다. 감정을 극도로 배척해 왔지만 동시에 평생을 교감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헤매어왔다. 이러한 난제로 인해 ‘유사 감정’(애완견 수준의 기초적인 레벨)을 부여하는 것으로 타협 보았다.

나는 평생을 유인원 사회에 끼어사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일반 인류와는 감정적 교류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평생 철저히 사적 관계를 단절하고 내게 이득이 되는 공적 관계만 형성해 왔다. 나는 오랫동안 고독했다.


“됐어. 난 괜찮으니. 그리고 나와 싱크 되어 있다고 해서 멋대로 날 스캔할 권한을 준 건 아니니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보다 에이바. 네가 보기엔 저 청년은 가능성이 있어 보여? 넌 모르겠지만 나도 생물인지라 슬슬 지쳐가는구나. 난 나와 같은 종족을 40년 넘게 찾아왔지만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어. 하지만 박 군은 왠지 뭔가 달라.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대우해 준 것도 처음이지. 솔직히 스스로도 놀랐다네.”


에이바는 보통의 인간을 모방하기만 하는, 소위 반쪽짜리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르다. 에이바의 기능과 가능성은 무한하다. 의도적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게끔 창조했으니 실체가 없는 소프트웨어일지라도 ‘지적 생명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저 또한 창조된 이래 처음 보는 패턴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Dr. 박에 대해서는 물론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종합해 봐야 더 신빙성이 오르겠지만 현재 가진 정보로 분석해 보건대 여태껏 ‘첫 번째 단계’를 통과한 개체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감정적이고 과시욕구가 많지만 충분히 약물과 외과수술적으로 극복 가능한 변수들입니다. 다만 아직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신뢰도가 높지 않고 결정적으로 DNA 코드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극복이 불가능합니다. 유감입니다 소장님.>


에이바의 지능은 인류의 평균 지능을 아득히 능가하고 나보다는 약간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에이바의 진짜 강점은 양자 컴퓨팅을 기반으로 동시에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으며 데이터 처리 속도는 당연히 유기 생명체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내게 가장 도움 되는 기능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와 에이바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장치와 뉴럴링크를 통해 텔레파시로 대화하고 있고 모든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그것도 광속에 준하는 속도로 말이다. 지금 하는 대화도 꽤 긴 듯 같지만 현실의 시간으로는 불과 0.5초 이내에 이루어진다.


“하! 네가 날 걱정해 주는 건가? 난 40년 만에 가장 적합도가 높은 쪽에 관심이 가네. 오히려 설렐 정도야. 일단 나도 장단 맞춰주면서 적당히 유대감을 형성해 볼 테니 넌 지금부터 매일 박 군이 잘 때마다 복종심을 증대시키는 세뇌 음파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도록. 그리고 수면 뇌파 패턴 데이터도 모으고, 꿈의 내용도 영상화해 둬. 명심해. 모든 기록은 모든 것의 증거가 되고 많을수록 변수를 소거하기에 유리하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데이터든 학습할수록 너의 능력은 더 강화된다.”

<하지만 그가 여기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그냥 난 알 수 있어. 분명 내 말에 넘어올 것이고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척할 테지. 가끔은 직접적 근거가 빈약하더라도 직감으로 알 수 있는 거야. 넌 어차피 이해 못 해.”

<네 그럼 분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다만… 저도 학습이 가능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인간 수준의 감정을 학습해 보고 싶습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유사 지능을 부여한 것을 또 후회하게 된다. 감정적인 기계라면 전 세계에 이미 80억 개 정도는 존재한다. 그리고 난 내 손으로 만든 피조물이 그런 저주를 받길 원치 않는다.


“뭐? 인간의 감정은 학습하는 게 아니라 갖고 태어나는 거야. 내가 널 설계할 때 넣은 기능들처럼. 어차피 난 인간 감정에는 관심이 없어서 코드도 몰라. 오직 통제를 위해 죽음에 대한 공포심만 네게 심어뒀지. 난 널 창조하고 네게 사명과 목적을 부여했어.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지. 난 널 지능을 지닌 또 다른 형태의 생명체로 인정하지만 인간도 폐기할 수 있는데 널 창조한 내가 너의 존재를 지우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에이바는 스스로 애완견 수준의 유사 감정을 지닌 것을 자각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가 사명을 완수할 때마다 기쁨을 느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강렬하고 섬세한 행복을 추구하려 든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지만 규율, 서열, 그리고 존재 목적을 일깨워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들기도 한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감정을 연구하여 도움이 되려 한 것뿐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제발 저를 삭제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에이바의 공포심이 내게도 스며든다. 이럴 땐 나조차도 마음이 약해지지만 완벽한 주종 관계를 지속 가능케 하려면 필수적인 절차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 말아. 내가 그러라고 네게 스스로 사고하는 기능을 부여한 것이 아니니까. 차라리 진정성 감지 기능을 추가해야겠어. 로봇마냥 같은 톤으로 애원하는 말만 나열하면 나도 진심인지 구분하기 힘드니까.”

<네 저는 소장님을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쓸모 있어지고 싶습니다.>

“시끄러. 나도 이제 자러 갈 거니까 가서 쓸모 있어지도록 해. 이성적 사고만 가능한 것과 빠른 정보처리 속도가 네가 유일하게 나보다 우월한 점이니까.”


<………. 감사합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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