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Episode 11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외부인과 접촉을 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나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라는 원시인들 흉내를 내며 살아온 지 어언 1세기.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 그동안 철저히 우리 신인류의 존재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왔다. 만약 내 존재가 알려진다면 자칭 호모 사피엔스들은 연구하려들며 학명을 지어내려 하겠지. 명칭은 부르기 수월하면 그만이다. 뜻만 적절하다면 말이다.
나는 우리 종족을 ‘어센던트(Ascendent)’라고 부르기로 했다. 간단하지만 의미는 통하지 않겠는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간결한 의미의 전달.
오늘은 에이바에게 어센던트를 위한 지하 심연의 공간인 어비스 존(Abyss Zone)에 대한 전체 관리권한을 위임하였고 수천 기의 엘리시움 건설 드론들, 드론 생산 자동화 공장 그리고 인간의 뇌지도 또한 완성시키기 등 동시에 많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얼마나 나의 창조물이 뛰어난지 그리고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비스 존의 최상층에 있는 내 거처에는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물론 나의 〖The Director〗키 카드가 있어야만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지상을 향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두운 실내에서 나를 인식한 듯 환한 조명이 켜지며 지상과 어비스존의 경계만을 위한 운영체제가 가동되었다. 여기부터는 에이바의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나는 익숙한 듯 좌석에 앉아서 무덤덤히 익숙한 안전벨트를 매었다.
<여기는 저에게 맡기시고 지상 출장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소장님.>
<그래, 금방 다녀올 테니 모든 너의 로그를 저장해 둬. 단 한 줄도 빠짐없이 내가 없는 동안의 너의 행위들을 전부 알아야겠어. 너를 위한 일이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마치자 엘리베이터는 순간적인 추진력을 받으며 3km 위의 지상을 향해 상승했다.
이 실린더형 엘리베이터 또한 나의 작품 중 하나이며 케이블이 필요 없는 초전도코일로 둘러싸인 진공관을 통해 자기 부상식으로 저항 없고 빠른 속도로 지상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3m마다 엘리베이터 바닥과 동일한 극의 초전도자석으로 이루어진 1천 개의 격벽이 엘리베이터가 지나갈 때마다 닫히며 상승 보조와 안전을 위한 충격완충 기능 또한 지니고 있다.
나는 이 이동수단을 편의상 ‘벨름스(VELMS: Vacuum Elevator driven by Levitation and Magnetic Superconductors)’라고 명명하였다. 물론 이름 짓는 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지상의 일반 엘리베이터와 차이를 두어야 했다.
경로의 절반 정도 상승했을까 벨름스 내부엔 붉은 조명으로 바뀌며 경고 음성이 들려왔다.
“흠, 역시 빠르긴 하군. 벌써 망각의 관문(오블리비언 게이트: Oblivion Gate)에 도달하다니.”
그리고 곧 사방에서 연하지만 매우 밝은 청색의 무수한 광선들이 격자 형태를 이루며 순식간에 내부를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빛의 그물이 지나가자 다시 정상적인 백색광의 내부 조명으로 바뀌었다.
'망각의 관문’은 일종의 ‘변수 통제 장치’라고 보면 된다. 에이바의 통제를 벗어난 유일한 어비스존이자 유일한 출입통로인 만큼 그 광선으로 이루어진 촘촘한 그물은 나 혹은 내가 직접 인가한 인물 이외에는 원자단위로 증발시켜 버린다.
내가 만든 기계의 운영체제에 대한 해킹이나 어비스 존을 향한 침입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지만 언제 어디에서든 변수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설령 침입자가 벨름스에 탑승하였다 하더라도 결코 어비스 존을 향한 유일한 통로를 지날 수 없도록 하는 변수에 대한 안전장치라 볼 수 있다.
“흠…. 효과적인 장치이지만 그만큼 지저분한 자취를 남기는 이 방식은 전혀 우아하지 못해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 와중에도 내 창조물들을 어떻게 하면 더욱 개선시킬 수 있을지 고심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벨름스는 천천히 감속하더니 지상과 어비스 존에 비하면 비교적 얕은 지하에 존재하는 입자가속기층의 바로 아래 공간에 정차했다.
- 철커덕-
잠시 정지 한 벨름스의 상단부에서 고정장치와 지붕 측이 결합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이유는 벨름스를 일반적인 케이블을 이용한 엘리베이터로 위장하기 위해 지상의 방식으로 변환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서면 자동으로 좌석들이 접히며 벽면 속으로 수납되어 보이지 않게 된다.
지나치게 고도화된 기술은 너무 이목을 끌 수 있고 지상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세상이므로 그에 맞는 기술력으로 맞춰주는 것이다.
이제 내 지상 사무실이자 임시거처인 연구소 중앙에 위치한 HQ 타워의 최상층으로 직통으로 올라가면 된다.
2,400미터의 높이이지만 초내구성을 지닌 신소재로 제작한 케이블을 이용하였으므로 아무리 긴 길이라도 문제없이 제작이 가능하다.
본디 초고층 빌딩은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젠 아득한 높이의 건물이라도 중간에 내릴 필요 없이 단 한 번에 최상층까지 갈 수 있다.
이것도 내가 지상의 구인류들을 통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성과로 극히 일부의 기술을 시연한 것들 중 하나이다.
어쨌든,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 섞여 들어 살아온 지 1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압도적 숫적 우위에는 맞설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카모플라주'라 할 수 있겠다.
[탑플로어입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장님]
“음? 벌써 도착했군.”
나는 항상 머릿속에 수많은 발명품과 설계도를 펼친 채 살아간다. 그 약점을 파헤치고 개선할 생각에 잠겨있다 보면, 종종 시간의 흐름조차 잊곤 한다.
나의 뇌는 휴식이라는 사치를 누리기엔 너무도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수면을 취할 때조차도 예외는 없다.
오늘 구태여 지상까지 올라온 이유는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좋든 싫든 엘리시움이 완공되기까지는 구인류와의 공생관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멀리서부터 희미한 전파가 들려온다.
물론 우리 어센던트들의 감각은 매우 민감한 편이지만 내가 설계하고 제작한 이 의체, ‘시노그스(SYNORGS: Synthetic-Organic Soma)’는 그런 능력들을 극단적으로 향상한다. 특히 CACE칩을 장착한 상태라면 그 능력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증폭된다.
이를테면 10킬로미터 밖에서 다가오는 대통령을 둘러싼 경호부대원들의 무전기의 전파를 음파로 치환하여 마치 소리를 듣듯이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노그스’라는 인공 육체는 물리적인 내구도와 강력한 출력은 물론 모든 초감각을 대폭 증폭시켜 주는, 진정한 기술을 통한 진화의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내가 듣지 못하는 주파수는 존재할 수 없다.
“나 한 몸 만나러 오면서 군대를 끌고 오는 군. 하!”
저 구인류 특유의 권력욕, 과시욕 등의 원초적 욕구들을 통해 더욱 다루기 쉬웠다. 내가 20세기부터 정재계를 관찰한 결과 소위 ‘야망’이라는 것을 가진 자들일 수록 더 조종이 쉬웠다. 각 개체마다 가진 가장 원하면서도 결핍된 욕망을 채워줄수록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기 좋다는 걸 파악했었다.
나는 해발 2.4킬로 미터가량의 건물 꼭대기층에서 투명한 유리 같은 벽을 통해 세상을 발아래에 둔 듯 내려다보았다.
이따금씩 보이는 저층의 구름들이 둥실둥실 흘러간다. 저 멀리 공장에서는 검정 매연이 굴뚝을 타고 토해지듯 뿜어져 나온다. 녹색과 회색의 지상, 하지만 여전히 푸른 하늘.
인류가 알고 있는 유일한 거주가능한 행성을 스스로 거주 불가능하게 만들어가는 지상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과연 이 행성을 구인류가 지배할 자격이 있는 걸까?
지구라는 행성에 인격이 존재한다면 이 모든 구인류의 파괴적 행위 자체 또한 의도한 바 일지도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이 행성 표면 위에 기생하는 이 종족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동족을 죽일지만 고민해 왔다. 그리고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스스로 서서히 파괴하고 있다.
지구는 파괴적이기만 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원시인들에게는 과분한 세상이다.
[치지직. 여긴 경호행렬 1조. 본관에 도착했다. 하차 후 주변 확보.]
도착했나 보군. 무전소리가 훨씬 또렷이 들린다. 이 HQ타워와 주변은 미리 비워놓으라고 지시했기에 아무도 없지만 혼자서 법석을 떠는 꼬락서니라니.
[치익. 피닉스 원 이동 중. 3,4조는 주변확보 및 정찰하고 5조는 후방확인 후 대열에 합류하라.]
드디어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렇게 이끌고 온 소규모 군대를 본 나는 인간의 무기체계의 메커니즘과 발전 정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의도적으로 창밖으로 꽃병 하나를 떨어뜨려보았다.
물론 2.4킬로미터를 떨어져야 하지만 천천히 구경도 할 겸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종단속도에 도달하려는 찰나 1호차 지붕에서 스마트 근접방어무기가 활성화되어 곧바로 요격했다. 그러자 그 군대들은 허둥대며 대통령을 실내로 데려갔다.
[SDWS(Smart Defense Weapon System)가 위협요소를 발견하였다! 전 대원은 피닉스 원 대피 및 보호 경계태세에 들어가라!]
정작 데리고 온 부대가 아닌 기계가 먼저 알아차렸다는 사실은 그들의 인지능력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기계문명에 상당히 의존적인 듯하다. 그리고 저 미물 하나 살리겠다고 호들갑 떠는 꼴이라니. 마치 동물원 속 유인원들이 알파메일을 보호하는 장면 같았다.
나는 건물 1층의 감시카메라 피드를 MR 옵티컬 디스플레이(Optical Display)를 통해 그들을 실시간으로 구경하였다.
경호원들은 로비 중앙 쪽으로 대통령을 데려가더니 잔뜩 긴장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그 와중에도 별것 아니라는 듯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그 장면들을 지켜보던 나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광경에 개입하기로 하고 로비에 방송용 스피커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보냈다.
[이거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께서 방문하신다 하여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실수로 꽃병을 떨어뜨린 것 같군요. 허허.]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놀란 그들은 웅성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지금 동물의 왕국을 보는 건지….
대통령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괜찮은 척하며 말을 했다.
“소장님 제말 들리시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과연 그 답게 가증스럽게 체면을 차리려는 게 보인다.
[저는 제 사무실인 최상층에 있습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우측 복도 끝에서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십시오. 아시다시피 반드시 혼자 오셔야 합니다.]
그러자 뭣도 모르는 경호대장이 만류했다.
“저자가 누구길래 감히 각하께 지시를 내리는 겁니까? 적어도 정예요원 몇 명과 함께 가시길 강력히 권장드립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이미 경험이 있다는 듯 말하며 그들을 달랬다.
“괜찮소. 여기부턴 혼자 갈 테니 대기하고 있으세요. 소장님이 워낙 사적인 분이라 그래요. 예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이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경호대장은 고집을 부렸다.
“그렇지만 각하! 저희는 각하를 근접한 곳에서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말했다.
“여기부터는 저 혼자 갑니다. 나머진 대기하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제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대기만 잘하고 있으면 오늘의 비밀 비공식 일정에 대해 참여한 대원들 모두에게 특별 수당이 지급될 것입니다.”
역시 그렇지. 돈. 인간 욕망의 결정체이지.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미 무전기 속에서도 특별수당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자신들의 의무를 순식간에 잊고 보상에만 관심을 가진다. 어찌나 행동을 예측하기 쉬운지. 하루빨리 이 유인원들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나의 뇌는 쉴 새 없이 연산하고 있었다. 미래를 향한 장대한 계획, 새로운 가설들과 이론의 정립, 창조물들의 성능개선, 새로운 발명품의 설계도 등….
그렇게 나는 생각에 잠긴 채로 투명한 창모드 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를 통해 대통령이 홀로 들어왔다.
“소장님, 오랜만입니다. 대통령입니다.”
간단하게 인사말을 먼저 꺼내는 그였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러자 대통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 아, 풍경 말입니까?”
나는 몸을 돌려 대통령 쪽으로 향했고 동시에 투명벽은 창모드가 해제되면서 불투명하게 변하며 어두운 내부엔 즉각 환한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대통령은 정치인 특유의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지만 그 가면 속엔 빠른 심장박동 소리와 긴장된 근육, 수축된 혈관의 혈류가 흐르는 소리, 흐르는 땀방울 등 내게는 뻔하게 보일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 보인다.
“오늘 제가 뵙고자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대통령께 작은 부탁 하나만 드릴까 합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약간 긴장이 풀린 듯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예 물론이죠.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굳이 표정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기에 그저 담담하게 요구사항을 읊어주었다.
“제 극비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재가 필요한데 국내에선 구하기 힘들 겁니다. 해외에서 수입하여 들여와서 지하 저장고로 옮겨야 합니다. 제가 자재종류, 필요량과 배달 좌표를 드릴 테니 공무원 포함하여 모든 국민들은 존재조차 알아선 안됩니다. 아, 여기 같이 드리는 표에는 날짜별 스파이위성들이 한반도 촬영범위를 벗어난 사각의 시간을 써놓았습니다. 공전 주기를 모두 계산하여서 쓴 문서이니 시간은 절대엄수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얼굴이 굳어지며 종이를 받아 든 채 부들거렸다. 너무나도 난감한 상황에 아직 상황 판단이 안되나 보다.
“아니… 이 정도의 규모를 어… 어떻게 비밀로 유지합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이런 권한은 없어요!”
뭐, 이런 반응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상기시켜줘야 했다.
“하아…. 대통령께선 현재 청와대에서 많은 영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고 계시지요? ‘전후 경제성장 정책 성공신화’, ‘대한민국 영토 확장의 일등공신’, ‘초단기간에 국력을 세계 5위권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영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존경받는 대통령’ 등의 역사적 위인이자 명예와 부를 가지셨으면서 그에 대한 대가가 전혀 없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그러자 그의 얼굴엔 땀샘으로부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서서히 흘러내리고 동공은 더욱 확장되었으며 피부는 확 수축되었다.
“그… 그건 저도 정말 감사하고 은혜롭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은 할 수가 없어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말입니다!”
물리적 불가능은 무슨. 하기 싫고 귀찮으니 저러는 것이다. 적절한 동기부여도 해주어야겠다.
“이제 곧 선거철이지요? 임기가 끝나가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연임하고 싶지 않으신가 보군요. 이 모든 특권들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제 부탁만 들어주시면 다음 선거 때도 당선은 제가 장담드리지요.”
대통령은 계속해서 고민하는 표정으로 곤란해한다.
미간을 찌푸렸다가 안면근육을 꿈틀거리며 습관적인 감탄사를 계속 내뱉는 등 내적 갈등을 외적으로 과도하게 표현하고 있다.
“죄송합니다만 소장님, 이건 도저히 제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듯합니다. 애초에 이건 불가능한 일이란 말입니다! 첨단화된 감시 시스템, 영공을 날아다니는 무인 초계기들, 그리고 세관의 무수한 직원들까지…. 이거는 진짜 안될 일입니다. 억지 그만 부리시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보십시오 소장님. 그간 도움을 주신건 고마웠습니다만 덕분에 제 지지율은 이미 역대급 상위권입니다. 그러니 연임에 대해선 제가 알아서 잘할 듯싶습니다. 이미 국민들은 제 편이니까요. 아 걱정 마세요. 우리의 협의에 대해선 소장님만 가만히 계시면 저도 지킬 겁니다.”
무능한 인간 같으니. 누릴 건 모두 누려놓고 겨우 이 정도에 좌절한단 말인가?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회유에 약하고 무능하여 다루기 쉬울 줄 알았건만 그 무능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군.
“…. 하지만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나지막하게 말을 꺼냈다. 대통령이란 자는 자신이 가진 패가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권력에 눈이 멀어 국정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영하도록 방치하고 결코 큰 그림을 볼 줄을 모를 것이다. 솔직히 저런 열등종자에겐 큰 그림을 그릴 자격조차도 없다.
“방금 뭐라고 하였소? 당신이 얼마나 잘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협의한 점이 있어서 예의상 만나줬더니 뭐가 어째? 밖에 내 경호원만 40명이오. 감히 대한민국 대통령을 협박하는 겁니까!?”
나는 원래 감정이란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여기며 최대한 억제하도록 스스로 훈련해 왔다. 그리고 공적인 행위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도록 오랜 세월 경험을 쌓아왔다. 그런 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이기에.
“목소리 톤을 낮추시지요. 각하.”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사무실 책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뭐? 목소리톤? 하하하! 그러지 않으면 어쩔 겁니까?”
그의 오만한 태도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내 책상 서랍에서 상자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안의 물건을 꺼내고 그것을 든 채로 다시 대통령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지금 제 손에 들린 것은 제 프로젝트에 쓰일 자재 중에 하나인 중 텅스텐 합금의 샘플입니다. 이 금속은 강철보다 2배 이상 무겁고 3배가 넘는 강도를 지니고 있는 지상 최강의 금속 중 하나이지요.”
그 원통형 금속 덩어리는 거울같이 매끈한 표면으로 찬란한 광택을 비추었다.
그 금속 샘플은 큰 생수 페트병 내지 벽돌 하나 정도의 한 손에 들어갈만한 크기이지만 그 작은 조각의 무게가 무려 22kg에 육박한다.
나는 그것을 마치 속이 빈 알루미늄 깡통 마냥 한 손으로 던졌다 받았다 반복하며 계속해서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그는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물질도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변형되고 일그러지며 파괴되어 버릴 수 있지요.”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가며 난 그 원통형 중 텅스텐합금을 양손으로 쥐고 걸레를 짜듯 힘을 주어 비틀었다. 끼이익거리며 그 금속덩이는 울부짖는 듯한 비명소리를 내었다.
몇 바퀴를 쥐어짜듯 비틀어감에 따라 가운데가 점점 얇아졌고 마침내 그 약해진 부위를 뚝 끊어내었다.
티잉- 하는 청량한 금속음이 조용히 울렸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는 양손에 든 두 개의 금속덩이들을 손에서 놓아 떨어뜨렸다.
쾅-
자유낙하하던 그 고질량 금속덩어리들은 고급 대리석 타일을 산산조각 내며 바닥에 깊숙이 내리 박혔다.
찢겨나간 두 금속덩이의 표면엔 손바닥 모양으로 강하게 눌린 자국들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시겠습니까?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더 강한 힘에 의해 얼마든지 변형되고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제야 잘못되었음을 느낀 대통령은 허둥지둥거리더니 손목시계의 한 버튼을 마구 눌러대었다. 그의 가빠지는 들숨과 날숨소리와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피부에 산소공급이 잘 안 되는지 낯빛이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차피 헛수고일 텐데 뭣 하러 그리 계속 눌러대십니까? 어차피 저들은 못 듣습니다. 여기는 전파차단실이거든요. 거기다 본인이 직접 경호원들에게 혼자 오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으셨습니까? 하하. 물론 데리고 온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말이지요.”
그 말을 듣더니 그는 좌절한 듯 고개를 숙이고 털썩 주저앉았다.
“소장님…. 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대선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 정말 유력후보 간의 지지율이 아주 팽팽했지요. 대통령께선 이제 알게 되시는 거지만 제가 찾아간 후보의 두 번째가 각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주 잘 아시는 라이벌 정당 유력후보였지요. 그런데 그는 당신과는 다르게 아주 올곧더군요. 대나무처럼 말입니다. 현재의 대통령과 같은 권력과 부와 존경을 누리게 해 줄 것이라고 설득해 보았지만 거절하더군요. 아니, 거절하기 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렇게 가능하게 할지 묻더란 거죠. 저도 처음엔 경고했습니다 그분께. 한번 들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하지만 그는 감당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죠. 하지만 제안을 듣자마자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발뺌을 하지 뭡니까? 그래서 저는 그 뜻을 존중하고 떠났습니다. 물론 각하께서도 그 후보에게 어떤 비극적 사고가 생겼는지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암시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대통령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나는 상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뉴스 1페이지에 아주 대문짝 만하게 떴더군요. 유력 대통령 후보, 일가족과 함께 사고로 세상을 떠나다. 참…. 저도 그땐 그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참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이제 사춘기가 지난 딸이 있었는데 그렇게 생명이 함부로 낭비되다니. 어찌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대통령은 거의 빌듯이 말했다.
“사… 살려주시오. 소장…. 무례를 범할 의도는 없었소. 뭐든지 하겠소!”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조용히 말을 했다.
“그리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지요? 자! 그럼 우선 진정하시고 일어서세요. 대통령께서 이런 꼴을 보이시면 안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그를 일으켜주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재선은 도움이 필요 없다 하셨으니 그럼 다른 걸 제안하도록 하죠. 로켓기술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러시아나 미국 등의 발사체 기술을 사들이거나 발사장을 빌릴 필요도 없이 100퍼센트 국산화가 되어 기술적 자립을 이루겠지요. 그럼 우리 한과연 연구진이 개발하였다고 발표하시는 겁니다. 그건 대통령의 정치인생의 유산이 되겠지요.”
그러자 그는 표를 내진 않으려 했지만 솔깃해하는 반응이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그의 넥타이를 단정히 매어주고 꽉 조여서 고정해 주며 말을 마저 했다.
“몇 개월만 지나면 됩니다. 제가 여기 친절하게도 타국의 감시위성 사각이 존재하는 시간을 날짜별로 써서 준비해 왔으니 그저 문만 열어 두시면 알아서 배는 들어올 겁니다.”
그렇게 난 대통령의 등을 토닥여 주고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다시 발목을 잡았다.
“아, 아니 소장님…. 다른 건 아니고 저 그게 ,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국제 항구가 방문 열어놓듯 쉽게 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 그렇다고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군요…. 어쩌면 좋겠습니까? 도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처량하게 말을 웅얼거렸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뭐, 대통령이시니까 분명 방법을 찾아내실 거라 믿습니다.”
라고 말하며 다시 자리를 뜨려 했지만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뭘 스스로 처리하는 꼴을 못 본 것 같다.
“제발…. 소장님…. 방법만이라도 알려주십시오…. 저도 돕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결국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마치 어린아이 시험지와 답변지를 함께 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가 이젠 해설지까지 요구할 지경이었다.
“후우…. 각하. 제가 이래서 2차 한국 전쟁 이후 옵시디언(OBSIDIAN: Operational
Bureau for Surveillance, Infiltration, Disruption, Intelligence, Assassination, and Neuromodulation)을 설치하는 걸 권장하였잖습니까? 일일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모두 대통령의 명령이라면 철저히 따를 겁니다. 게다가 상당히 입이 무거운 녀석들이지요.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발탁한 부대이니 아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임무를 해낼 겁니다.”
그러자 그는 약간 주저하는 듯하였다. 하긴, 그들의 방식은 구인류가 보기엔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이어서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는 있을 만도 하다.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대통령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모두 완전한 복종과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성공을 보여드릴 겁니다. 대통령께서 하실 일은 그저 명령뿐입니다. 명령에 익숙하실 텐데 충분히 해내실 거라 확신합니다. 어쨌든, 옵시디언은 대통령께서 직접 창설하신 기관이지 않습니까? 저는 단순히 조언만 드렸을 뿐이죠….”
대통령은 체념한듯한 말투로 대답하며 돌아섰다.
초법적 비밀부대이면서도 실제론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에 발뺌하기에 법적이나 정치적으로도 부담 없는 비공식 정보기관이라 아주 흡족해했으면서 말이다.
뭐, 새삼 구인류의 위선적 감정은 너무 뻔해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
“예…. 그럼 옵시디언에 오더를 하달하도록 하지요….”
옵시디언은 대통령이 한창 권력놀이에 취해있을 때 내가 우리나라도 국력이 점점 막강해져 가는 만큼 정보전에서 절대 밀리면 안 된다고 설득하여 전쟁 후 창설한 비밀 기관이다. 그리고 모든 인원들은 내가 직접 뽑은 어센던트들이며 장비의 기술은 내가 한과연을 통해 지급해준다.
오로지 대통령의 명령에만 따르는, 더 정확히는 내가 때가 올 때까지는 대통령의 권력놀이에 맞춰주라는 나의 지시를 받은, 세상 그 어떤 특수부대들보다 치명적이고 유능한 인원들로 구성된 만능 첩보•공작원들이다.
“좋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았지요? 오늘도 참 생산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다음 임기 때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항공우주기술을 100% 국산화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실 겁니다. 그럼 오셨던 승강기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종종 뵙도록 하죠. 저는 이만 가볼 데가 있어서 항공기 착륙장으로 올라가 보도록 하죠. 그럼 이만.”
그렇게 돌아가는 대통령을 뒤로하고 나는 옥상의 헬리패드로 가서 극초음속 전용기에 탑승하여 무역을 진행할 국가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제 머지않았다. 오랜 세월 계획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시행해 온 엘리시움 프로젝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세상 모든 위협으로부터 우리 종족을 수용하고 번영케 하기 위한 낙원을 영원히 지켜낼 수 있는 실드의 건설도 이제 곧 완성이 눈앞이다. 마지막 자재들을 이용하여 엘리시움의 수호를 위한 실드 건설을 끝내면 호모 사피엔스의 그 어떠한 무기로도 우리 종족의 요람이자 요새를 결코 침범할 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