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꽃은 ─ 책방 아저詩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어찔거리는 한나절
꽃은
왜 피나 토하듯 꽃은
왜 줄을 짓지 않고 피나
여러 겹으로 앉지도
서지도 않고 엉거주춤 피나
한가운데서 피지 않고 저희들끼리
엉기듯 피고 있나 왜 변방에서만
피고 있나 꽃은
시든 풀로 꺾여진 봄날의 기침과 가래로
꽃 아닌 것처럼 피고 있나
일찍 지는 불같은 꽃
늦게 살아나 지천으로 불타는 꽃
나비야 날지 말고 걸어서 오렴

_허수경,詩 「꽃은」 전문


모름지기 꽃이라면, 좀 이래야 하잖나 싶습니다. 관리되어 조성된 작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데 솔직히 모르겠어요. 과유불급 아니겠습니까? 사람으로서 감정 이입해 그런지 몰라도요. 그러니까 이물감異物感의 원인이 대부분 그와 같은 작위 아니겠어요? 본래 모습, 자기답지 못하여 부자연스러운 따위 죄다 사뿐히 즈려밟고 자기 삶에 충실하면 그만이겠다는 생각을 시를 읽으며 새삼 새겨봅니다. 정말이지 사람도, 좀 사람답게 뭐 좀 저래야 하잖나 싶고 말이지요. 이 세계의 이물異物 가운데 일개一個의 종種으로서 사람 또한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과 다를 바 없는 제 운명을 긍정. 좋잖아요. 이게 단순히 보면 체념과도 닮은 듯싶지만 다르지요. 운명을 긍정하는 운명애는 그와 같은 태도의 일변으로 해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형태를 분명하게 거머쥐고서 그 구체성을 실감하는 삶일 테니까요. 이목耳目을 사로잡아 끌고자 애쓰려는 마음부터 당초 내려놓으니 당초 여지를 두지 않아 휘둘리지 않고. 중심/변방 가늠하는 세간의 잣대와 기준 따위의 사정과도 무관한 자기 삶에 충실. 그리고 그러한 치들 간 절로 제각각 자리한 곳에서 느슨한 선만을 두어 유유상종으로 엉기기도 하고. 모두의 사각四角 액정으로 전송을 꿈꾸는 21세기 판 호접지몽에 홀리지도 않고 그저 걷는 중에 만나는, '지천으로 불타는 꽃'


어쩌면 인생이란 나름의 로도스에서 엉거주,춤이나 신나게 추다 가도 좋을 '어찔거리는 한나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리멸렬 날줄 씨줄 엮기를 반복하는 일상 중에 잠든 영혼을 들고 차 깨우는 시 한 편. 조용히 마주하기 좋은, 오월 봄밤입니다 ~



붙임. 1 : Head 삽입, 06.05.28 직접(싹 덜어낸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용케 남았네).

붙임. 2 : 인용 詩는,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