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꽃의 봄여름가을겨울 걷기 2>
중랑천으로 내려가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북쪽으로 서울의 경계를 넘어 경기도까지 가본 적은 두 번 있지만, 남쪽으로는 30분쯤 걷다가 돌아온 게 전부다. 왕복 세 시간을 잡고, 한 시간 반 지점에서 되돌아오기로 했다. 한눈을 팔 일이 별로 없이 단순히 걷기에 적합한 천변 산책로.
‘OO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행정구역을 넘어선 곳에서부터 샛강 양옆으로 뻗은 간선도로와 그 너머로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 장벽, 낮게 내려온 잿빛 하늘이 말하고 있었다.
‘묵묵히 걷기만 하라고.’
고막을 할퀴는 자동차소음을 들으며 걷는 것은 매캐한 연기 속에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다. 처음 걷는 길은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처럼 때로는 ‘와우~ 멋짐!’일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웁스, 망했다’일 때도 있다.
풍경엔 무심한 채 걷기만 하다 보니 물음표를 붙잡고 있었다. 붙들렸다고 해야 맞을까. 꽤 오래 이어온 모임이 네 귀퉁이 아귀가 안 맞는 의자처럼 삐거덕거리는 중이었다. 연극 공연을 하자고 모인 순수의 스무 살엔 10명이 9명으로, 9명이 8명으로, 8명이 다시 6명으로 줄고, 그 6명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에 처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찐 친구였을까?
관계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중층적 불이해의 구도가 되면 더욱 어렵고, 누가 누구에게든 드러내지 않은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시간이 필요?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시간보다는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화는커녕 싸움 한 번 없이 마음부터 닫힌다. 차라리 대판 싸우고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생쇼를 벌이는 게 건강할 것 같다. “우리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며 거창하게 심리학 스터디까지 했던 아이들이 먹을 만큼 나이를 먹고 나서 꼴좋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풀기 어려웠던 게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째라니. 샛강 가장자리에서 산책로까지 넘어온 무성히 엉킨 잡풀들을 하루에 말끔히 정리해버리라면 차라리 쉽겠다.
그런데 나라고 문제가 없었을까? 집을 나서기 전 2화에서 5화까지 내리 시청한 넷플릭스 미드 <퀸스 갬빗>. 그중 5화에서 세계 챔피언 보르고프에게 대박 패한 체스 천재 엘리자베스에게 예전 상대 해리 벨틱이 충고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았다.
"넌 완고해서 화를 잘 내. 그럴 땐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 화는 강한 향신료야. 약간은 머리를 깨우지만 과하면 감각을 둔화시켜."
나한테 하는 소린 줄 알았네. 원칙주의자인 나는 가끔 완고해질 때가 있고, 원칙에서 벗어난 일을 참고 참다가 가슴 한복판에 화火가 들어앉기도 한다. 밖으로 화를 내지는 못한 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정리해주려다 먹히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겉으론 쿨한 척하는 걸 보면 내 가식도 보통은 넘는다). 일찌감치 포기할 때도 있지만 문제가 심각하다 싶으면 그 문제에 붙들려 소리 없이 항의한다. ‘그거 반칙 아니야?’ 물음표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뭣이 중헌디~’ 어느 날 번쩍 정신이 들 때까지. 중층적 불이해의 구도가 되어버린 이번 트러블에도 나의 원칙주의가 한 겹의 레이어로 들어가 있다.
앗, 걸은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네. 돌아가야 할 시간. 5킬로미터 정도는 걸은 것 같다. 여전히 아파트 장벽, 잿빛 하늘, 거슬리는 자동차 소음. 풍경은 바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돌아갈 때는 무성한 잡풀들 사이에 도드라지게 핀 꽃들, 강아지풀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에 눈길을 주어야지. 뜻밖에도 샛강에 사는 청둥오리 가족을 만났다.
누군가 “큰일 났다”고 하면 “작은 일로 두 번 치러” 했던 언니가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관계의 문제도 다를 바 없다. 상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일 대 일이든 다 대 다든, 다 대 일이든 일 대 다든, 서로 사랑하면 만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만나면 된다. 그러다 이심전심 보고픈 마음이 생기면 다시 만나고, 아니면 뭐... 할 수 없지. 모든 관계가 영원하기만 하다면 그것도 지옥이지 않을까?
길게 쏟아질 듯한 기세로 내리꽂던 비가 한 순간 그치더니 하늘이 좀 높아졌다. 내 손에 꼭 잡혀 있던 물음표도 어느 순간 날아갔다. 불편한 길을 만나도 되돌아오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살랑살랑 나를 맞아주는 나무들이 있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있지. 10킬로미터를 걸으며 빠져나간 강한 향신료 덕분에 마음이 담백하고 심플해졌다. 집에 들어가기 전, 푸릇푸릇 어린 열매들을 매단 대추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나뭇가지에 올망졸망 매달린 대추알들을 톡톡 건드리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세 시간 걷고 왔다!
가끔 그렇게 걸어주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