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리브 Mar 06. 2024

프랑스에서 400일 - 7)오디션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영화에 가까운 영화들로 유명한 영감독 A는 적은 개런티에도 톱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자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거의 날것 그대로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는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있었던 을 영화로 담아내고자 한 것 같다.


파리 현지 100%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했는데 해외에서 촬영할 때는 주연 배우 몇 명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현지에서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섭외한다고 했다. 아마도 최대한 현실적 실제 삶의 모습을 영화로 담아내고자  것 같다.


선정적인 장면도 적나라하게 담아냈기 때문에 그런 부분으로 잘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 삶에는 당연히 선정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리고 선정적인 장면을 포함해서 대사들이 적나라하 현실적이다 보니 영화를 보는 사람이 민망해질 때가 많았는데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멋 부리지 않는 그런 모습 좋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인터넷 게시판을 보다가 A감독님이 파리에서 현지 오디션을 통해 단역들을 캐스팅한다는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나는 오디션에 참가한다기보다는 오디션이 어떨지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정성껏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함께 참가신청서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의외로 오디션에 참가해 달라고 답변 메일을 받게 되었다.


알바로 일하던 식료품 가게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드리니 다녀와도 좋다고 하셨다. 이때까지 나도 사장님도 설마 오디션에 통과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아주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고 사실 그것만으로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오디션 현장에서는 딱히 연기를 해보라던지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냥 스텝분들과 만나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연락이 되는 모든 친구들에게 오디션 소식을 알렸고 친구들은 이때부터 한동안 나를 슈퍼스타로 불렀다.


그리고 얼마 후 놀랍게도 오디션에 통과했으니 2차 오디션에 참가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 사실이 기쁘다기보다는 가게 사장님에게 한번  휴가를 부탁드려야 하는 것이 조금 난처했다. 어차피 연기라는 걸 해본 적도 없는 내가 영화출연할 확률은 없어보였다. 그냥 못 간다고 연락할까 생각했지만 가게 사장님은 의외로 좋아하시면서 꼭 통과해서 영화에 출연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2차 오디션에는 나를 포함한 3명이 경쟁하게 되었는데 영화학교에 다니는 학생 한 명과 이미 여러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배우 한 명이었다. 도대체 왜 때문에 내가 2차 오디션장에 와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려 감독님과 일대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등에 소름이 돋는다. 


카리스마가 엄청난 분이다. 온몸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파리에서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셔서 20년간 세계 여행을 계획 중인데 첫 체류국이 프랑스라고 말씀드렸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이후의 체류국가를 영국 또는 캐나다 중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너무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을 들으시고 빙그레 웃어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분도 오랫동안 여행을 계획하셨고 실제로도 꽤 많은 여행을 하셨을 것 같았다.


감독님과 독대한 것만으로 기대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아마 딱히 친구들에게 연락은 하지 않고 전에 사놓은 싸구려 위스키를 말 그대로 해치우고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외모까지 출중한 영화학교 학생이 영화에 출연하게 될 것 같았다.


며칠 뒤 오디션을 최종 통과했으며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메일 보내신 분도 놀라신 것 같았다. 물론 굉장히 작은 배역이었지만 무려 단독샷에 대사까지 있었다.


다른 한국인 여성분과 파리에 체류 중인 커플 역할이었는데 촬영당일 감독님이 디렉팅을 주시는 대로 연기를 해야 했다. 너어어무나 어려웠다. 어색해도 괜찮다고 하시긴 했지만 아마도 몇 번이나 계속해서 찍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크게 중요한 장면도 아니었기 때문에 편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영화에 피해가 안되길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귀국도 하고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잊어버리고 친구들도 더 이상 나를 슈퍼스타라고 부르지 않을 때쯤이었다.

건너 건너 알게 된 그리 친하지 않은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 선배! 혹시 영화 찍었어요??!

-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영화를 왜 찍어?

- 방금 극장에서 영화 봤는데 갑자기 선배가 나와서 깜짝 놀랐잖아요! 분명히 선배 맞던데...

- 아..? 헉..  혹시 그... 내가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급하게 검색해 보니 바로 그 영화가 국내에 개봉했고 출연자 목록에 내 이름까지 올라가 있었다. 즉시 가장 빠른 시간대로 빛의 속도로 예매하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촬영한 몇 안 되는 대부분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감독님은 참 좋은 분이라고 새삼 느꼈다.


더 기뻐하신 분들은 따로 있었다. 극장에 잘 가지도 않으시던 분들이 바로 다음날 극장에 가셔서 아들이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것을 보시고 굉장히 기뻐하셨다. 네이버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영화인으로 등록이 되어있었고 친구들은 다시 나를 영화배우 또는 슈퍼스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파리에 가지 않았다면 절대 겪지 못했을 추억의 한 조각이다. 사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글로 옮기기 어려운 일들도 있고 기억이 너무 희미해져 버린 일들도 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어쩌다 보니 유럽연합 산하 국제기구의 작은 오피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는데 그때 내가 프랑스어가 너무 부족한 시절이라 정중하게 거절한 일도 있었다. 이건 좀 후회가 되는 일이다.


사실 후회가 되는 들은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머뭇거렸던 일들이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했던 것들이다.


물론 큰 고민 없이 런던으로 가려다가 입국심사대에서 고초를 겪기도 했고 아무 계획 없이 토론토까지 날아갔다가 고생만 잔뜩 하긴 했다. 너무 힘들었던 일들은 고이 접어두고 좋았던 일들만 계속해서 즐겁게 글로 써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에서 400일 - 6)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