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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Feb 24. 2024

프랑스에서 400일 - 6)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만약 당신이 운 좋게도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당신의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 머무를 것입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친구에게, 1950년


헤밍웨이는 파리를 움직이는 축제 A moveable feast 라고 표현했는데 파리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생미셀 광장 앞의 분수와 몽마르트르 언덕의 계단 그리고 파리 구석구석의 수많은 골목길과 카페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파리의 매력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면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해가 저문 후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에펠탑이라던지 웅장한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우아한 센강 그리고 그 강 주변을 걷는 연인들의 모습등 굳이 상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그냥 쉽게 알 수 있는 매력도 있는 하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름답고 우아한 건물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념치 않고 검정 모직 코트의 깃을 올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가는 파리지앙들의 모습들. 사실 다른 유럽의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는 있지만 파리는 그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리의 카페에 커피 한잔 시켜놓고 한 시간씩 의자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다가 어느샌가 똑같이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파리라는 곳에 그 거리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것이다.





파리가장 좋아했던 적어보자면 룩셈부르크  Jardin de Luxembourg  빠트릴 수 없다. 서울과 비교하자면 지형적인 모습은 성수동 근처의 서울숲 공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반적인 분위기는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석촌 호수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룩셈부르크 정원의 연못과 돛단배들

호수는 없고 작은 연못만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작은 깃발이 달린 돛단배를 띄우고 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을 보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음악을 듣다가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뭔가 하루의 그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힐링 되는 곳이다.


우중중한 날씨가 취향이라면 완벽하다


배가 고프면 근처 카페에서 버터를 바른 바게트에 얇게 저민 짭짤한 햄을 넣어 만든 잠봉베르 Jambon Beurre 샌드위치를 사들고 벤치에 앉아 먹곤 했다. 잠봉베르는 한국에도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어서 가끔씩 사 먹고 있다.


잠봉베르가 질리면 가끔은 똥 Thon 이나 뿔레 Poulet 샌드위치 사 먹기도 한다. 참치 샌드위치와 치킨 샌드위치인데 참치의 프랑스어  발음이 한국어로 배설물과 같아서 처음에는 주문할 때 굉장히 어색다. 똥 하나 주세요!?


생 라자르 St Lazare 기차역 앞에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바게트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만 박리다매로 파는 곳이었는데 점심시간에 배고픈 직장인들의 줄 서서 먹는 곳이었다. 나도 그들 틈에 껴서 사 먹곤 했다.


게트를 사들고 라자르역에 자주 려서 구경하곤 했다. 녀린 아가씨들이 산더미같이 거대한 배낭을 아무렇지 않게 매고 다니는 유럽의 기차역은 지 모를 설렘과 두근거림이 가득한 특유의 매력이 있다. 꼭 어디로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잠시 들리면 여행의 설렘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기차역 안까지 비둘기들이 난입해서 라도 쪼아 먹을 것을 있나 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지만 내쫓는 사람은 없다.


바게트 부스러기는 이들에게 마약 같은 느낌이다 멋모르고 바게트 부스러기를 던져줬다가는 눈 돌아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비둘기 떼를 피해 정신없이 줄행랑을 치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진짜 무섭다.





룩셈부르크 정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오데옹 Odeon 역을 지나 생 제르망 데프레 St Germain des Pres 지역이 나오는데 극장과 옷가게 그리고 유명한 카페들이 있는 즐비한 곳이다. 래전부터 철학자나 예술가들의 모임장소로 유명한 레 두 마고 Les Deux Magots 카페도 이곳에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관광객보다는 파리지앙들이 많은 곳인데 저녁 무렵에는 오데옹 근처의 극장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파리지앙커플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


파리지앙 커플로 추정되는 남녀


극장 건너편에 Neo Cafe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있고는 했다. 특별히 커피가 맛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카 하나 해놓고 가서 다도 떨고 책도 읽고 멍도 때리면서 죽치고 앉아있다.


사실 그 후에도 파리에 갈 때마다 그곳에 가서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있고는 한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관성 같은 것라고 할 수 있을까. 파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30년 후 다시 가봐도 그 카페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파리 남서쪽 15구의 라 모뜨 삐께 La Motte picquet 역 근처 사거리의 모퉁이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긴 한데 지금 구글지도로 확인해 보니 카페 르 피에로 Cafe Le Pierrot 인 거 같다.


사거리 모퉁이의 카페 Le Pierrot 구글 지도 캡쳐

이 카페의 테라스 자리에서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고 소개받고 울고 웃고 얘기하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 파리의 카페인 것 같다.


얘기할만한 카페는 몇 군데 더 있긴 한데 하다 보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 와서는 프랜차이즈 카페만 가게 된다. 뭐라 꼭 집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런 건 한국의 안 좋은 점 중 하나일 것 같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웬만하면 가지 않는 곳이 있다. 샹 젤리제 Champs Elysees 거리와 개선문이다. 유동인구의 거의 90퍼센트가 관광객으로 덮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착하면 사방에서 한국어도 엄청나게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샹젤리제와 개선문을 좋아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 같은 곳은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혼자서  자주 샹젤리제 거리의 맥도널드에 들려서 1유로짜리 커피를 사들고 관광객들 틈에 껴서 개선문을 구경하곤 했다.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을듯한 개선문


개선문을 축으로 거대한 로터리와 개선문 사이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콩코르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대로를 나는 좋아했지만 다들 거기를 왜 냐고 되묻곤 했다.



파리 북역을 비롯한 파리 북쪽의 대부분 지역은 꽤 위험한 우범지대이다. 해가 떨어지면 절대 다니지 말라고 다들 신신당부하곤 했다. 위에서 말한 룩셈부르크 정원이 있는 센강 남쪽의 5구나 생제르망 데프레 거리가 있는 6구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 북부에서 그나마 위험하지 않은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 엄청난 관광객이 무리 지어 다니는 곳이다.


Anvers 전철역이 있는 큰길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올라가면 그 유명한 팔찌 갱스터들을 만나게 되어 강제로 팔찌를 사게 되거나 말싸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파리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품게 돼버리곤 한다.


밑으로 위로 걸어 올라가려면 다리 아프고 힘든데  그러지 말고 Abbesses 전철역으로 가서 뒤쪽으로 돌아가면 가는 길에 초상화 그리는 화가들의 구역을 지나 손쉽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갈 수 있다.


파리 Abbessees 전철역


운 좋게도 나는 나중에 Abbesses역 근처의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아름다운 골목과 식당이 많은 곳이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빨간 풍차 물랑루즈가 있고 성인전용 극장과 성인용품 상점이 줄지어 나오는 홍등가지역의 중심인 삐갈 Pigalle 거리가 온다.  이런 곳들까지 모두 사랑하게 되는 점이 파리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상태로는 사실상 파리의 매력을 완전히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건 너무 효율이 떨어지고 파리에서 배우는 건 가성비가 떨어진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방소도시의 매력도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6개월 정도 준비과정을 거친 후 파리에서 6개월쯤 즐기는 것으로 인생에서 1년 정도를 프랑스에 머무는 것을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서울에 살면 서울의 사진은 찍지 않는 것처럼 파리에 살다 보니 파리의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게으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사진이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몇 번을 더 다녀왔지만 역시나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센강변의 오르셰미술관 Musee d'Orsay  좋아해서 주 찾아갔었고 파리 남동쪽의 아름다운 방센느 숲 Bois de Vincennes 과 방센느 성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많긴 하이번 글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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