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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Feb 18. 2024

프랑스에서 400일 - 5)파리 입성





어느덧 12월이 되어 1학기가 끝나게 되었다. 이제 길고 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2월에 다시 2학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거의 매일같이 기숙사방으로 찾아와서 수다를 떨어준  친구들 덕분에 어느 정도 프랑스어에 자신이 생긴 나는 이제 슬슬 알바를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활비를 아끼기 위해 1유로에 2개 살 수 있는 바게트와 한 묶음에 2유로밖에 안 하는 감자로 최대한 버텼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물과 바게뜨만 먹고 사는것이 가능했던 시절


하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인 릴에서는 당연히 알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제 슬슬 한적한 릴도 질리기 시작했다. 이제 파리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파리의 알바자리를 찾아보생각보다 쉽게 파리 시내의 한 식당에서 와서 일해도 좋다는 답을 얻었고 고민 끝에 나는 기숙사를 정리하고 짐을 쌌다.


정든 기숙사를 떠나며 (물과 바게뜨와 병맥주를 먹고산듯)


그리고 고속 열차 테제베 TGV를 타고 파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유럽의 기차역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기차를 타고 릴로 이동했기 때문에 파리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센느강의 퐁뇌프 다리


La Seine 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느 도시에나 있는 강과 강변이긴 한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확실히 있긴 하다.


룩셈부르크 정원 Jardin du Luxembourg  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아름다운 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에 도착게 된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과 넓은 광장 분위기라 대체적으로 광화문 사거리와 느낌이 유사하긴 한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프랑스적인 느낌이 있다.


에펠탑 전망대는 너무 높은 편이고 개선문정도 높이가 파리의 경치를 가장 좋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상젤리제 거리


그리고 다음날 일하기로 한 식당으로 찾아가서 잠깐 면접을 본 뒤에 바로 실에 투입되어 홀서빙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식당 에 서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응대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다시 한번 높은 프랑스어의 장벽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홀업무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어버렸고 일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프랑스어를 더 배우고 다시 오기로 하고 가게를 나서게 되었다.





아마도 카트르 셉템버 Quatre Septembre 전철역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하기로 했던 식당에서 숙소까지 알아봐 주기로 했었기 때문에 나는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한 상태였다.


거대한 캐리어를 포함한 모든 짐과 함께 거리 벤치에 말 그대로 나앉게 되었다. 나는 몇 시간 정도 멍하니 벤치에 앉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건너편에 프랭땅 Printemps 백화점이 있었는데 관광버스가 끊임없이 중국인들을 백화점에 내려주고 그들은 얼마 후 명품을 잔뜩 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다 보니 문득 도대체 내가 왜 서울에서 만 킬로미터정도 떨어진 파리의 길거리에 앉아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니었고 유학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 것도 아니다. 뭔가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나는 프랑스에 와있었다.


갑자기 리의 악사가 나타나서 내 앞의 길에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듣기 좋았지만 배에서 신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줄을 붙잡고 일단 파리에서 방을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찾아갔다.


서울에서도 괜찮은 원룸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파리에서는 아예 매물자체가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아주 비싼 가격의 방은 많았지만 괜찮은 가격의 방이 나오면 방의 상태를 막론하고 순식간에 계약자가 나타나서 매물이 사라지곤 했다.


다행히도 파리외곽 르발루아 페레 Levallois Perret 라는 지역에 방 하나를 임대한다는 게시물을 찾았고 400유로 당시 환율로 약 50만 원 정도 가격의 방을 계약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커다란 창이 있는 낡고 오래된 집이었는데 삐걱거리는 계단을 3층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간신히 구한 방이 마치 호텔 스위트룸처럼 좋았고 특히 창밖으로 거리를 구경할 수 있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마침 아주머니가 아는 분이 식료품점을 운영하는데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프랑스어가 부족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잘 얘기해 둘 테니 걱정 말고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찾아가서 떠듬거리는 프랑스어로 면접을 보았는데 프랑스어는 조금 못해도 괜찮은데 판매할 물건을 옮겨야 해서 힘쓰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힘쓰는 일은 해본 적은 없었지만 당연히 열심히 보겠다고 말씀드렸고 월급으로 800유로를 받기로 했다.


800유로면 방세로 400유로를 내고도 400유로가 남는다. 원화로 겨우 50만 남짓이지만 당시 나에겐 아주 넉넉한 생활비였다. 그때부터 진짜 나의 프랑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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