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Lille 에서 파리로 이사했지만 아직 파리지앙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국으로 치면 일산정도라고 할 수 있는 파리 근교의 르발루아페레 Levallois-Perret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원룸을 내놓는다는 게시글을 보게 되어 알바가 끝나고 찾아가게 되었다.몽마르트르 Montmartre 언덕 근교의 아름다운 주택이었는데1층의 작은 방이었고 아주 저렴했다. 일반적으로는 경비아저씨들의 숙직실정도로 쓰이는 방이지만 방이 귀한 파리에서는 그 방을 얻기 위해 말 그대로 줄을 섰다.
방을 내놓은 사람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강미 넘치는 한국인 여성이었는데 내가 찾아갔을 때 이미 방을 얻기 위해 찾아온 사람의 명단이 노트에 빼곡했다.
그녀는 집주인과 가까운 사이라며임대지원자 중에 방을 깨끗하게 사용할 괜찮은 사람을 골라서대신 계약서를 쓸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지원자 중 하나인 나에게도 살짝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릴에서도 그랬지만 파리에서도 프랑스어를 최대한 익히기 위해 한국인들과는 거리를 두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자유롭게 모국어를 쓰면서 얘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그녀는 건축학을 공부했고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건축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성공한 유학생이었다.
방을 구하다가 만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외로운 남녀가 만나다 보니 친해지게 되어 밥도 같이 먹으러 가고 친구들도 같이 만나서 와인도 여러병까고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과 사는 구별한다며 아직까지 방을 누구에게 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나도 그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났을 때쯤 둘이서 또 와인을 마시며 웃고 떠들다가 그녀가 약간 발을 헛디뎌서 벽 쪽으로 쓰러졌고 전원 스위치를 건드려 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흐린 날이라 해가 들지 않아 불이 꺼지자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다. 그리고자연스럽게 남녀 간의 흔한 로맨틱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그런지 그날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그다음은 잘 기억이 좀 흐릿하다.
아무튼 확실한 건 나는 결국그 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드디어 공식적으로 파리에 거주하는 파리지앙이 될 수 있었다.
파리로 이사 온 후에는 룩셈부르크공원이나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거리대신 집에서 5분 거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을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보이는 파리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근처에 모여있는 아름다운 카페들과 골목길 그리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있는 작은 광장과 크레페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파는 가게들은그 어느 지역보다도 가장 파리답다고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그렇게 몇 개월간 파리 시내 대부분의 골목길을걸어 다닌 것 같다.몽마르트르를 비롯한 파리의 골목길들은 아무리 물청소를 해도 깨끗해지지 않지만 서울이나 뉴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낡고 오래되고 색이 바랬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손때 묻은 아끼는 옷들이나 소품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제 머지않아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고 느낀 것 같다.
파리에서 좋아하는 곳들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을 다시 찾아 구석구석을 눈과 마음 한편에 담아보았다.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오르세미술관은 그 자체가 훌륭한 미술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파리를 벗어나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Melun을 지나 퐁텐블루성 Chateau de Fontainebleau 으로 가는 길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Bois le Roi라는 곳인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마을 길을 생각하니 갑자기 프랑스에 가고 싶어 진다.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은 일본에 도착하면 편의점부터 들어가서 계란 샌드위치부터 한입 물고 시작한다고 들었다.
나는 프랑스에 갈 일이 생기게 되면 가기 전부터 케밥 생각이 난다. 물론 한국에도 케밥가게는 많지만 뭐랄까 아무리 LA 한인타운의 김치찌개가 맛있어도 원래 가던 한국의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는 느낌과 비슷하다.
케밥도 케밥이지만 케밥과 함께 주는 본토의 프렌치프라이가 한몫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벨기에가 원조라는 감자튀김은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 암스테스담의 길거리에서 먹은 것이 가장 맛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릇에 감튀를 가득 담고 마요네즈를 뿌려주는데 점심대용으로도 많이 먹는다고 한다
가장 자주 갔던 케밥가게는 생 미셀역 Saint Michel 근처 먹자골목 안의 케밥집인데 얼마 전에 갔을 때도 수십 년 전 가격인 5유로에 그대로 팔고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케밥이란 음식이 어떻게 왜 맛있는지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한식과 비교하면 개인적으로 김치볶음밥과 비슷한 느낌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맛있다는 이야기다. 거기다 가격까지 싼데 맛있기까지 하니 안 먹을 수는 없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케밥과 맥도널드 그리고 바게트 샌드위치인데 나중에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들도 그렇다고 동의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파스타라던지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나름의 프랑스가정식을 먹지만 대부분 성인이 된 후에는 혼자 살기 때문에 냉동피자나 케밥 또는 중국가게에서 뷔페식으로 파는 중국음식들을 사다가 먹는다고들 했다.
그래도 나는 알바를 해서 돈이 생긴 후로는 가끔씩레스토랑을 찾아가서 필레 미뇽 Fillet Mignon 같은 걸 먹어보긴 했지만 아무래도 케밥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수입이 아예 없었던 릴에서는 케밥도 먹어보지 못했다. 투쾅 Tourcoing에 있는 중국가게에서 1유로에 파는 신라면도 사놨다가 어쩌다특식으로 먹었다.
릴 플랑드르Lille Flandres 기차역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1.5유로 했던 것같은 치즈버거를 2번 정도 먹은 것 같은데 어쩌면 한 번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맛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말 이유를 모르겠는데 돈도 없고 시골이라 할 것도 없고 버스비 아낀다고 걸어 다녔던 릴이 가끔 너무나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