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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브 Mar 28. 2024

서바이벌 게임




가장 먼저 희생된 건 녀석이었다. 먼 친척 어르신 대신에 희생되었다고 하는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분을 살리고 싶다고 했다. 끝까지 들었더라도 녀석의 성격상 크게 달라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작위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를테면 그냥 짜고짜 길가는 행인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중의 선택이 강요되었다. 

이것 그나마 비교적 쉬운 케이스로 대부분 자신의 목숨을 지켜내고 누군가가 피 흘리며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갓난아기의 생명과 비교되었을 때는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울거나 기절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여유롭게 즐기는 기색마저 보였다.

그러나 명의 생명, 명의 생명과의 선택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생명을 고르던 들도 백만명의 생명 앞에서는 쉽게 고르지 못했다.

그것들은 킬킬대며 웃 바빴다.



-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 다른 사람대신에 무슨 이유로 네가 살아야 하는 건지 대답도 못하면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살고 싶은 거야?


그것들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복해서 물어보곤 했다. 사람들은 고민 끝에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거나 아직 죽기에는 젊다 대답정도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과연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존재의 이유 raison d'etre (레종 데트르)는 예전부터 철학자들의 논제로 알려져 있다.


사실 비슷한 질문을 우리는 다른 장소에서 종종 듣곤 한다.

- 우리 회사에 당신이 꼭 필요한 이유가 뭔가요? 당신을 채용해야 되는지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팩트를 이야기하자면 조직에서 조직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사실 꼭 필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아무리 귀한 인력일지라도 조직원 한 명의 이탈로 인해 흔들리는 조직은 제대로 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면접관이 원하는 답은 이런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적당한 선에서 매력발산을 하는 것으로 응대를 해주곤 한다.



하지만 시커멓게 그을린 그것들은 적당한 수준의 매력 발산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사완전히 무의미한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수세기동안 마치 지로 법정에 끌려 나온 국선 변호사처럼 우리 스스로를 영장류라고 칭하는 등 어떻게든 변호해 보고자 땀을 빼고 있었다.



인생이 덧없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쉽사리 놓지 못한다. 도파민에 중독되고 스포츠에 취하고 사랑에 빠지고 죽마고우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방법을 찾아낸다. 절대 평가로 원하는 결과를 얻 못 때 우리는 상대 평가를 통해 있지도 않은 가치를 창조해내곤 한다.


- 철수야 너 왜 숙제 안 했어?

- 영희 너도 안 했잖아!


비록 숙제를 안 했지만 나만 안 한 건 아니기 때문에 무죄가 성립이 된다. 거울을 보면 못생긴 것 같지만 TV 나오는 개그맨들이 훨씬 더 못생겼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잘생긴 편이다.


나보다 더 가치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가치가 있는 존재다.


나 서울대 나왔어.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야. 포르셰 보이지? 깔별로 다섯 대 더 있어. 내 시계 구경할래?



시계얘기에서 그것들은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다. 어찌나 울며 웃어댔는지 다들 얼굴이 뻘게졌다.






그러나 내가 기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것들의 표정이 굳어기 시작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펀치를 날리려는 녀석이 있었고 어디서 몽둥이를 주워왔는지 정신없이 휘둘러는 것을 간신히 피해야 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랫동안 연구해 오던 기품에 관하여 그것들도 연구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 따위가 기품에 대해 논하는 것을 그것들은 받아들이지 못다. 역시 기품이란 개념은 마치 중력처럼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 같은 것이었다.


기품에는 한계가 없 거짓이 없으며 성역 또한 없었다. 모두가 기품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기품의 심판대 앞에서 눈 녹듯 무너져 내렸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녀석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녀석도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오래전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러시아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어 했다.


쇼팽의 발라드 4번을 틀었을 때는 하나도 빠짐없이 눈을 감고 연주를 감상했다. 시커먼 그것들이 눈을 감고 환희에 빠진 모습은 아주 가관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눈물의 골짜기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그날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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