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우 Sep 11. 2020

[단편소설]화성과 바다

돌아갈 곳이 없을 때,  공기는 희박해진다.

“형이 너 데려오래.”


녹슨 문을 열자 굼뱅이 같은 걸음으로 성혜미가 기어나왔다.


“어디로?”


고저도 강약도 없는 목소리. 체육관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지금?”

“응.”


굼실거리는 몸짓으로 성혜미가 개집 같은 곳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런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됐을까? 손가락으로 달을 세어보니 이제 열 달이었다. 몇 년은 된 것 같았는데, 겨우 열 달이었다.


“야, 왜 이렇게 늦냐?”


목소리를 높이며 대청 위로 오르자 성혜미가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피로가 역력했다.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추워.”


대문을 밀고 나오자 성혜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대답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이윽고 종종걸음으로 날 좇던 성혜미가 성가시게 굴기 시작했다.


“커피 사주면 안 돼?”


손이 시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천 원짜리 두 장이 손끝에 걸렸다. 돈 없다고 눈을 부라리자, 회색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나직하고 우울한 목소리. 한 번 들으면,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성혜미의 표정만큼이나 음울한 목소리.


“너도 하게 해줄 게.”

“개년아 돈 없다고 한 거 못 들었냐?”

“싫어?”


잊고 싶은 얼굴이 떠오르는 말이었다.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편의점으로 내처 걸었다. 딸랑, 편의점에 달린 종소리가 부담스레 들렸다.


“빨리 사라.”

“응.”


성혜미가 온장고에서 커피 두 캔을 꺼내왔다. 1,600원이었다.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 돈을 뿌리듯이 던졌다.


“거스름돈 줘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눈을 치켜떴다. 나도 째려보자 곧 고개를 돌렸다. 그 틈에 나는 카운터 앞에 있는 초콜릿 하나를 슬쩍했다. 둔해 빠진 년이었다. 400원을 돌려받고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성혜미가 낡고 지저분한 교복을 입고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구겨진 치마. 목 떼가 새카만 블라우스. 누구도 돌보지 않음이 티 나는 행색.


“거지새끼냐, 앉아서 먹어.”


어지럽게 헝클어진 머리칼이 힘없이 위아래로 칠렁였다. 예쁘지도 않고 매력도 없는 얼굴이 긍정을 표했다. 형이 왜 이년한테 집착하는지는 몰라도 왜 이년을 괴롭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성혜미는 그런 애였다. 마음 놓고 괴롭혀도 될 것 같은, 절대 저항하지 않을 것만 같은 무력한 느낌이 감돌았다.


“다 마셨으면 가.”

“조금 남았어.”

“형 기다리는 거 알지?”

“곧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초조했다. 이상하게 성혜미와 함께 있으면 짜증이 났다. 먼저 의자에서 일어나자, 성혜미가 다 먹지도 못한 캔커피를 들고 따라왔다. 체육관 쪽으로 걸었다. 한겨울이었다. 목도리를 하지 않아 한기가 파고 들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걷자 성혜미가 뒤에서 다시 말을 걸어왔다.


“넌 어디서 할래?”


느닷없는 말에 눈을 홉뜨고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회색 눈동자가 약속은 지키겠다고 희미하게 긍정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꼴에 자기가 한 말은 지키겠다는 게 우스워서였다.


“너 같은 년이랑 내가 왜 하냐?”


대답은 없었다.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익숙한 우리였다.


“싫음 말아.....”

“병신같은 소리 말고 걷기나 해.”


걸을 때마다 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몇 개가 달랑였다. 400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더 병신 같았다. 어느새 형이 있는 체육관 앞에 도착했다. 문은 잠겨있다. 문은 늘 잠겨있다. 형을 부르자 작은 창으로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문 잠겼어요.”

“기다려.”


형이 창문에서 사라졌다. 우린 개처럼 바닥에 웅크린 채 기다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형이 손짓했다. 도살장에 양을 집어넣는 기분이었다. 지친 걸음으로 성혜미가 발을 끌었다. 이윽고 형이 날 불렀다.


“조좆, 너도 들어와라.”


성기라는 내 이름은 늘 그리 불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왜 나까지 들어가냐고 되물었다. 형은 대답 없이 문을 확실히 잠그라고만 일렀다. 더 묻지 않는 게 좋았다. 순순히 들어야, 볼이 얼얼하지 않을 테니까.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어디에서 뭘 해야 하는지 허락부터 구했다.


“내가, 이년이랑 하는 거 옆에서 좀 보고 있어.”


성혜미는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나오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겨우 물었다.


“왜요?”

“그냥, 요즘에는 흥분이 안 돼서 누가 옆에서 봐야 설 거 같아.”


어둔 체육관 안에서 성혜미를 바라봤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헤벌쭉 웃어 보였다.


“그래, 새끼야. 언제 이런 거 구경해 보겠냐?”


실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변태 같은 새끼, 돌덩이로 앞니를 찍어서 혀를 짓이겨버릴까 보다. 함께 들어온 체육관은 음습했다. 바닥에는 체육 시간에 썼을 법한 하얀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매트리스 옆으로 전기 코일 난로의 빛이 반짝였다. 홍등 같아. 매트리스에 오른 형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성혜미가 그 앞에 섰다. 나는 둘에게서 떨어진 농구대 아래에 앉아 가만히 지켜봤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심지어 아무것도 묻지도 않은 채.


“안 벗고 뭐 해?”


제촉 하는 말투에 성혜미가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냐고 비죽거리자 형이 소리쳤다.


“분위기 깨지마, 좆같은 새끼야.”


이윽고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번 봐온 풍경이었다. 엄마는 자주 낯선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누가 내 아버지인지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내 아버지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자였다. 성욕도 분노도 통제할 수 없어 늘 감정에 휘둘리며 살았던 여자가 내 엄마다. 술과 도박 섹스와 거짓말 그리고 약까지, 그 모든 걸 지켜보며 산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내 엄마라는 걸 인정하는 게 힘겨웠다. 비정상이 일상이 되면 뭐가 정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쓰레기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그건 내게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었다.


“야, 신음 소리 안내?”


그르르, 형의 목소리가 야비한 맹수처럼 울렸다. 포개어진 수컷 아래 암컷이 침묵했다.


“안 낼 거야?”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울리자, 기계적인 신음이 어둠을 채우기 시작했다. 뻑뻑한 주사기가 움직이는 것처럼 낡고 지친 목소리였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내 좆은 서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게 다 연극 같아서였다. 두 사람의 헐떡임이 끝나고 하얀 입김이 방향도 없이 흩어졌다. 정리해야 했다. 몸을 일으키고 매트리스 앞까지 걸어갔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정리 잘하고 집까지 제대로 보내.”


이런 대화는 익숙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좋았어요?”


씨발, 이 빌어먹을 짓들이 정말 널 기분 좋게 하는 거야?


“뭐가?”

“제가 보는 거요.”

“아니, 별로네. 흥분될 줄 알았는데 별거 없었어.”


형이 옷을 다 입고는 먼저 나갔다. 체육관 안에 두 개의 붉은 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는 엎어진 성혜미 옆에 앉았다. 가지런한 숨소리가 마치 삶을 정리할 것처럼 들려왔다.


“왜 이렇게 사냐?”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납득하지 못했을 뿐.


“못 들었어?”

“들었는데, 이해가 안 돼서 그런다.”


깜빡깜빡, 난로는 늘 소리 없이 불타올랐다. 내가 본 타오르는 것들은 늘 소리가 없었다.


“너는 왜 그렇게 사는데?”

“갈 곳이 없으니까.”


대답이, 아주 오랫동안.....끊어졌다가 이어졌다.


“나도 그래.”


절망적인 말이 이어졌다. 누가 나 같은 걸 걱정하겠냐는 성혜미를 위로하지 않았다.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가 없어 난롯불로 불을 붙였다. 시궁쥐가 낼 법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냐?”


대답 없이 돌아눕기에 나는 우느냐고 다시 물었다. 성혜미의 벗은 등과 엉덩이가 보였다. 옷도 입지 않은 채 성혜미는 누워 울고 있었다. 담배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뭐 때문에 우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성혜미의 등을 신코로 툭툭 차댔다.


“상관하지 마!”


되레 신경질적인 대답이 오길래 나는 담배를 쪼옥 빨아당겼다. 엄마도 그랬다. 자기 슬픔을, 처지를 감당하지 못해 이렇게 몸을 움츠려 울고는 했었지.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저 여자가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애썼지만 나는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았다. 나는 불붙은 담뱃재를 성혜미의 엉덩이에다가 그대로 떨어뜨렸다. 담뱃재가 들러붙자 성혜미가 소리 지르며, 허리를 곧게 폈다. 이윽고 나를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은 성혜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이건 아프냐?”


멍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건 아파서 피하고, 소리 지르고, 나한테 욕까지 하면서 왜 그 새끼한텐 아무 말도 못하냐?”


우리 둘 중 이 말이 더 절실한 사람은 누구일까?


“병신같은 년. 다 울었으면 옷이나 입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말이었다. 아니, 달리 할 말도 없었다.


“너 나랑 할래?”


어둠 속에서 성혜미가 킥킥거렸다. 맥락없는 대화는, 성혜미와의 우울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은 이미 여러 번이었다.


“너 같은 년이랑은 안 해.”

“솔직히 너도 하고 싶었잖아.”

“성병 걸릴 것 같아서 안 해. 닥치고 옷이나 입어.”

“왜? 하자? 기분도 거지 같은데.”


자조적인 목소리로 내가 중얼거렸다.


“씨발 넌 무슨 화성인이냐? 지구인인 나는 네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

“화성?”


엉뚱한 말에 귀가 솔깃했나 보다. 나는 화성이 뭔지는 아느냐고 비아냥거렸다. 모른다는 성혜미의 말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화성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걸 말했다. 존나 춥고, 공기도 없고, 사람도 못 사는, 아마 거기는 좆도 서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성혜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랑 다를 게 뭐야......”


그래, 다를 게 없지. 난롯불이 꺼졌다. 담뱃불에 손가락을 데었다. 체육관을 나오자 밖은 한층 더 얼어있었다. 나는 조용히, 여기가 화성이 틀림없다고 인정했다. 성혜미를 집까지 보내야 했다. 말없이 집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어떤 소리가 말이 되지 못한 채 웅얼거렸다. 나는 좀 닥치라고, 기분 좆같아 지는 소리 할 거면 아가리 싸물고 있으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성혜미는 특유의 고저없는 목소리로 또 말을 걸었다.


“더러워서 안 하는 거지?”

“너, 그냥 처맞고 싶냐?”


눈을 꼬나 뜨고 바라봤지만, 회색 눈동자에는 채도가 없었다. 명암도 없이 텅 빈 눈, 몇십 년 전에 말라버린 우물을 들여다보듯 공허하고 쓸쓸한 눈이었다.


“내가 더러워서 안 하는 거 맞지......”


이번에는 질문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마치 형에게 맞을 때의 나처럼 성혜미는 바닥만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짜증스러워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할 기분이 아니어서 그런다. 됐냐?”


귀찮아. 짜증나게 하지 마. 이제는 대답조차 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성혜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평생을 부엌 아래 숨어 산 시궁쥐처럼 찍찍거리며 울었다.


“감기 같아. 생리도 온 것 같고......”

“아, 씨발 그래서?”

“춥고 너무 어지러워.”

“아니, 너 아픈 걸 나보고 어쩌라고?”


털썩一내 말을 듣지도 않고 성혜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무릎을 오그리고 앉은 그 자세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것처럼 어울렸다. 나는 일어나라며 성혜미의 뒷머리를 한 움큼 잡아 일으켰다. 목덜미가 위로 끌려 오르다가, 흐느적흐느적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보는 눈이 많아 때릴 수가 없었다.


“야, 안 일어나냐?”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사람이 없었다면 때려서라도 데려갔을 거다.


“걸을 힘이 없어서 그래.....”

“하아....너 같은 년이랑 엮어서 나까지 피곤하다.”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나도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 차가운 바닥의 균열을 뚫고 나온 한 쌍의 벌레처럼 웅크렸다. 뭇 사람들이, 집과 가족이 있는 이들이 우리를 지켜봤다. 지긋지긋한 눈빛이었다. 나는 뭘 보느냐는 눈길로 그들을 쏘아봤다. 스리슬쩍 외면하는 눈길이 익숙하게 흩어졌다.


“춥다. 가자.”

“........응.”


느린 걸음으로 성혜미네 집까지 돌아왔다. 대청마루 위까지 성혜미를 올려놓고 보자, 성혜미가 나를 보며 깜빡깜빡 꺼지기 직전의 난롯불처럼 눈을 떴다 감았다.


“조금만 있다가.”

“내가 할 게 뭐 있다고?”


매정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대문을 열고 나서는데, 내 목덜미에 얹힌 시선이 부담스레 느껴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조용히 뇌까렸다. 너만 힘든 줄 알아? 꿍얼꿍얼 빠르게 걸음을 걸었다. 형의 집에 가서 좀 자고 싶었다. 오늘은 더 할 일이 없었다. 또 심부름을 시키면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나는 내 오른손을 펼쳐봤다. 담뱃불에 탄 검지 마디가 쓰라렸다. 씨발.....나란 새끼는 진짜 답이 없다. 자신을 혐오하며 나는 방향을 다시 틀었다. 낡은 시멘트 담장 밑이었다. 곱게 다져진 흙을 손으로 파내자 나무함이 나왔다. 딸깍, 열아보 자 삼십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모여있었다.


언제 필요할지 몰라서 모아둔 돈이었다. 배를 곯아도 안 건드렸던 돈이다.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다섯 장을 꺼냈다. 이윽고 성혜미의 집으로 돌아가자 대청마루 위에 더러운 운동화 한 짝이 보였다.


“야!”


대답이 없었다. 대청마루 위까지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 한 번 더 불러다 답이 없어 문을 열었다.


“대답 안 하냐?”

“으....응?”


끙끙 앓는 소리였다. 성혜미의 얼굴에서는 더운 땀이 나고 있었다. 냉방에서 이불을 싸맨 성혜미를 발로 툭툭 차자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또 하고 싶대?”

“아니.”

“그럼?”


대답이 가빴다. 나는 주머니에서 오만 원을 끄집어냈다.


“너 죽을 것 같다고 하니까, 형이 돈 주더라.”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성혜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린 차라리 속고 싶었다. 정말이냐고 묻길래,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어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성혜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좀체 움직이지를 못했다. 못 일어나겠냐고 다그치자 생리에다 감기까지 걸려서 머리가 어지럽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불을 걷었다. 속옷 차림이었다.


“옷은 왜?”

“땀이 너무 나서.....”


병신인가 이 년은? 감기라는데 불도 안 때우고 옷까지 벗고 있는 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걷고 성혜미더러 옷부터 입으라고 다그쳤다. 서랍에서 옷 몇 벌을 보이는 대로 던져주자 성혜미가 느릿느릿 받아 입었다.


“어디 가?”

“병원.”

“병원을 왜......차라리 뭔가 배부르게 먹자.”

“미친년아 형이 너 병원 데리고 다녀오랬다고, 영수증도 가지고 오래.”

“갈 힘이 없어서 그래.”

“아오一이 썅년아! 내가 업어서라도 갈 테니까 좀 닥치고 옷 좀 입을 수 없냐?”


결국, 택시를 타고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접수처 앞 의자에 앉아있으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행색이 초라해 쪽팔렸다. 성혜미는 품이 맞지 않는 옷이고 나는 누런 흙먼지가 내려앉은 까만색의 옷차림이었다.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이윽고 접수처에서 돌아온 성혜미에게 어딜 등록했느냐고 물었다. 부끄러운 듯 내 눈길을 피하다가 겨우 대답이 돌아왔다.


“.........산부인과.”


코웃음이 나왔다. 


“대가리에 총 맞았네. 감기 때문에 병원에 왔는데 산부인과를 등록했냐?”


임신하면 생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았다. 왜 성혜미가 등록했는지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말없이 가만히 기다리다, 성혜미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2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병원은 따뜻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혈색이라는 게 보였다. 한 시간이 지나자 성혜미가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내가 대신 돈을 내야 했다. 접수처까지 따라가 진료비를 계산했다. 성혜미가 내 옷섶을 잡고 빨리 나가자고 보챘다.


“약은?”

“받았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내가 아는 게 없다지만, 병원에서 약을 주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가 낸 건 진료비가 전부였다. 약을 보여달라고 하자 성혜미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몸을 움츠렸다. 우악스레 성혜미의 손목을 잡아채, 더러운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구멍 난 주머니 끝으로 성혜미의 차가운 맨살이 만져졌다.


“......됐다. 가자.”

“화 안 내?”


움츠린 목으로 성혜미가 물었다. 그럴 기운이 없다고, 그만 가자고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병원을 나사자 성혜미가 밥 먹고 가자며 징징거렸다. 네 돈이냐고 쏘아붙였지만, 배고프다는 징정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 가볍게 따귀를 때렸다. 그제야 조용해졌다. 나는 말 없이 길가에 있는 포차로 들어왔다. 번듯한 가게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였다. 포차 의자에 끄트머리에 앉아 우동 두 그릇과 튀김 네 개를 시켰다. 방금까지 아프다고 찡찡대던 성혜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고개를 파묻고 개걸스레 먹어댈 뿐이었다. 튀김은 성혜미 혼자 다 처먹었다. 나는 아줌마를 보고 튀김 네 개를 더 달라고 말했다. 내 눈치를 보던 성혜미가 들릴락 말락 속삭였다. 미안해. 병신아,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하는 거 아니냐?


“닥치고 먹기나 해.”


나는 튀김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성혜미는 혼자 일곱 개나 튀김을 먹고서야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덜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 먹었냐?”

“응.”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일어났다. 성혜미가 먼저 나가고 내가 계산하려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왜 안 받느냐고 내가 따졌다.


“나도 너희 같은 애들이 있거든.”


따뜻한 미소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온기가 무서웠다.


“씨발, 우리는 아줌마 같은 엄마 둔 적 없거든요? 밥을 처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우리가 거지새끼로 보여요?”


테이블을 쾅 치고 *만 이천 원을 내려놓았다. 밖으로 나오자 성혜미가 날 물끄러미 봤다. 포차에서 좀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무언에 질문에 대답했다.


“돈 내는 게 맞잖아.”

“안 내도 됐잖아?”

“밥 먹고는 돈 내는 게 당연한 거지. 물건은 훔쳐도 음식은 처먹고 그냥 가는 건 거지새끼나 하는 짓이지.”


성혜미는 내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더 묻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쪽팔려서 말하지 못했다.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까지 속이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고 하는 건 나답지 않은 말이었다. 구질구질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이상하게 안에서 밖으로 나오면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4년 전, 집을 나올 때부터 든 버릇 같은 거였다. 도시의 커다란 건물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디로 갈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성혜미가 속삭이듯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


나는 집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걸 집이라고 불러도 될지 몰라서였다. 


“당연한 걸 뭘 묻냐?”


퉁명스레 말하자, 성혜미의 얼굴이 한층 더 우울해졌다.


“거기 추워.”

“그럼 어디 갈 건데?”


성혜미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바닥에 내린 눈이 다 녹아 없어질 만큼 길고 느린 고민이었다.


“그래, 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목울대로 뭔가 뜨거운 게 치미는 느낌이었다.


“생리대는 있냐?”

“다 떨어졌어.”

“하....빡대가리 같은 년아, 생리한다는 데 생리대가 없냐?”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만 원짜리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천 원짜리 다섯 장을 펴주며 말했다.


“제일 싼 거 사.”


편의점을 가리키자 말없이 성혜미가 들어갔다. 나는 그 앞, 색이 바랜 코카콜라 의자에 앉았다가 바로 앞 약국에 들러 감기약을 하나 달라고 했다. 약사가 되물었다.


“어떤 감긴데요?”

“알게 뭐에요. 그냥 짱 쎈 걸로 주세요.”


약사는 고까운 표정으로 감기약 하나를 건넸다. 하루에 세 번, 식후 30분 후에 먹으면 된다는 말이 배려 없이 던져졌다. 나는 카운터에 놓인 약병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하루에 세 끼 못 먹는 사람은요?”

“별문제 없어요. 그냥 식후에만 먹으면 돼요.”


약사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 약병을 홱一낚아채고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 앞에서 서성거리던 성혜미가 날 봤다.


“뭐 하냐?”


날 바라보는 표정에 안도라는 게 보였다. 버리고 도망간 줄 알았나 보다. 손끝에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난지도에 버려진 인형같이 성혜미는 봉지를 들고 털레털레 내게 걸어왔다. 왜 그러냐 다그쳐 물었다.


“그냥.......”


싱거운 대답이었다.


“제대로 샀냐?”


내가 띠껍게 묻자 봉지를 열어 보여줬다. 우리는 함께 성혜미네 집까지 걸었다. 가는 내내 걷기만 했다. 이윽고 성혜미의 집에 도착한 후 나는 옷 입고 자라고 확실히 말했다.


“좀만 있다 가면 안 돼?”


나는 대답도 않고 대문을 밀고 나왔다. 비탈진 고개를 내려오자, 길 아래 연탄집이 보였다. 연탄 두 개도 파느냐고 묻자 수염이 지저분한 노인이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가져 가.”


맨손으로 두 개를 받아 들었다. 옷이 새까매서 재가 좀 묻어도 괜찮았다. 성혜미네 집 부엌에 들러 연탄을 땔 수 있는 화덕을 열었다. 연탄 두 개를 집어넣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도 연탄을 피웠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연탄 두 장이면 제대로 잘 수 있는데, 이 멍청한 년은 왜 이마저도 안 할까?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연탄 한 장 살 돈도 없고 배도 고프다면서 왜 형한테는 밥 사달라는 말도 한 번 안 하는 걸까? 연탄에 불이 붙었다. 까아만 구멍 아래로 빠알간 불이 깜빡깜빡 졸음처럼 피어 올랐다.


그 후로도 나는 성혜미를 여러 번 실어 날랐다. 형의 미친 짓을 보는 것도 처음에만 놀라웠지, 계속 보자 익숙해졌다. 나는 그 연극 같잖은 짓을 보며 남근을 만지작 거리고는 했다. 추욱 늘어진 내 부랄과 성기는 이 모든 걸 납득하지 못해 늘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 있었다.


“에이.....완전히 질렸네 이것도.”


다섯 번째였을까 혹은 여섯 번째였을까. 어쨌거나 그 언저리에 형이 한 말이었다.


“조좆, 뒷정리 잘하고 와.”

“네, 형.”


그러나 형이 걸음을 멈췄다. 의아해진 내가 물었다.


“왜요?”

“잠깐만.”


체육관 구석 매트리스에 성혜미는 죽은 듯 모로 누워있었다. 아마 알몸이거나 치마 정도만 걸친 채였을 거다. 그쪽으로 돌아간 형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미 끝났는데 왜 그러나 싶어 바라보자 곧 몸이 겹쳐졌다. 이윽고 성혜미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지 말라고 손으로 밀어내자 형이 성혜미의 뺨과 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시궁쥐 같던 소리가 여우의 카랑한 울음으로 결국은 새끼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로 잦아들었다. 두 개의 난로가 피처럼 피어올랐다. 앞이 아니라 뒤를 쑤셔대는 꼬라지가 혐오스러워 내 두 눈에도 핏발이 섰다. 하지만 어째선지 폭력이 더 강한, 아니 폭력만이 가득했던 섹스 끝에 내 성기는 완전히 서 있었다. 찢어지는 신음 소리와 함께 형이 사정할 때 어느새 나도 바지에 싸고 말았다.


“제가 정리할게요.”


아득한 기분이었다. 나는 축 늘어진 내 성기와 축축해진 속옷을 느끼며 설명할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였다. 마치 영혼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처맞아 나동그라진 것만 같았다. 형이 나가고 난 후, 체육관에는 숨쉬기 힘들 만큼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진공과도 같은 대기조차 없는 화성의 풍경 속에서 나는 속삭였다.


“울지마. 씨발.”


성혜미는 울지 않았다. 나도 울지 않으려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나는 부어오른 성혜미의 뺨을 더듬고, 얻어터진 턱을 오른손으로 쥐어 꾸욱 눌렀다. 왼손은 성혜미에 정수리에 두고 위아래로 힘을 주자, 성혜미는 소리 없이 드디어 울 수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울고 있었다. 누구도 그 어둠 속에, 우리가 있는지도 우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드디어 내 두 손아귀도 풀리자 성혜미가 시를 읽듯 나직이 읊조렸다. 그건 우리의 소리없는 의식이 끝나고 나온 최초의 만트라 같은 거였다.


“난......이미 끝났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난 겨우 열두 살이었어.”


오랫동안 써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같은 목소리. 성혜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다. 그때의 일이 오늘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엄마가 악몽인 것처럼, 성혜미에게는 아빠가 악마 같은 존재였다는 건 안다. 때로 가족은 가족이 아니고, 가족이 칼을 들었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말할 필요 없어. 나도 알고 있으니까.”

“죽고 싶어.....”

“그래, 차라리 죽어.”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상처가 많은 사람에게 위로는 힘이 없다. 나는 어릴 때 진작 그걸 깨달았다. 난로가 꺼진 체육관은 차가웠다. 나는 그녀의 몸 위로 다리를 올렸다. 차가운 허벅지가 내 하중 아래서 꿈틀거렸다.


“나도 그런 생각한 적 있어.”


나는 엄마 이야기를 했다. 오래토록 그 여자 이야기를 하다 말을 맘췄다. 딱一딱 난롯불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외로워졌다.


“듣고 있어?”


미약하게 답이 돌아왔다. 나는 아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어렴풋한 아비라는 낯선 존재에 대해 말했다. 누구에게도 한 일이 없던 이야기가 내 안에서 술술 풀려나왔다. 그건 텔레비전에 비친 나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또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남 이야기인 것처럼.....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하고 있었다. 내 다리 아래, 버르적거리는 허벅지가 느껴졌다. 옅게 꺼지는 성혜미의 가슴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바다.....본 적 있어?”


갑작스레 웬 바다 이야기인가 싶어 나는 되물었다.


“바다는 왜?”

“본 적 없지.....?”

“봤어.”


거짓말이었다. 누구도 내게 바다로 가자고 말한 적 없었다. 우리 집 앞에는 철교와 그 아래를 흐르는 더러운 하천이 있었을 뿐이다. 그게 내가 아는 물(水)의 풍경이었다.


“난 바다를 본 적이 없어.”

“열일곱까지 뭐 했냐?”

“중학교 1학년에 학교 다닌 게 마지막이었어. 수학여행도 가본 적 없어.”

“그럼, 그 교복은 뭔데?”

“의류 수거함에서 주운 거. 고등학생이 입다 버린 거겠지.”


그건 성혜미에게는 없는 시간이었다. 바다처럼, 온전한 부모처럼.


“나도 바다 본 적 없어.”


체육관을 나온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뒷정리는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

“밥 먹으러.”


일전에 갔단 포차에 다시 들렀다. 아주머니가 우릴 봤다. 돈이 없었다. 돈 한 푼 없이 포차에 와 나는 구걸을 준비하고 있었다. 멍하니 거기에 서 있으니 아주머니가 먼저 우리를 테이블에 앉혔다. 우동 두 그릇과 튀김 열 개가 나왔다. 나와 성혜미는 고맙다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그걸 먹어 치웠다. 다 먹고 나자 목이 메었다. 우동 국물을 마셨는데도 목울대에 뭔가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말해야 했다. 말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온정을 베푼 사람을 위해, 성혜미 대신 나를 돌보지 않은 우리 엄마 대신 말해야 했다. 그래서 겨우 말했다.


“죄송해요.”


병신아.....이럴 때는 고맙다고 말해야 하잖아.


“우리 애들 같아서 그래....”


아주머니가 우리 대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줄 용기가 없어, 도망치듯 포장마차를 뛰쳐나왔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갚을게요. 언젠가는 꼭 갚으러 돌아올게요. 나와 성혜미는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 아래를 걸어,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으로 돌아왔다. 우린 이불을 펴고 쓰러지듯 거기에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모든 걸 외면하고 싶어 가만히 누워있자 성혜미가 먼저 말했다.


“고마워.....”


형이 다시 성혜미를 찾은 건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받기만 할 수 있는 전화기 너머로 왁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육관으로 데려오라는 심부름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성혜미의 집까지 찾아가, 부르지도 않고 방문을 열었다. 더러운 이불을 만 채 성혜미는 잠들어 있었다.


“형이 너 찾아.”


부스스한 얼굴로 성혜미가 날 바라봤다. 말없이 교복으로 갈아입는 성혜미를 두고 마당으로 나왔다. 달리진 건 없었다. 달라질 것도 없었다.


“가자....”


옷을 다 갈아입은 성혜미가 말했다. 나는 문을 열고는 물었다.


“너희 집에 너 말고 누구 있냐?”

“아무도.”


망설일 이유는 더 없었다. 나는 나무함을 묻어둔 곳까지 걸어왔다. 평소와 다른 길을 돌아오자 성혜미가 나를 의뭉스레 쳐다봤다. 나는 함에서 돈을 다 빼내,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


“바다 본 적 없다고 했지?”


성혜미는 말이 없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겨우 말했다.


“아무도......날 바다에 데려가 주지 않았으니까.”

“지금 가면 다시는 여기 못 돌아와. 난 계획도 없고, 가서 어떻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네가 선택해. 네 발로 바다에 가든지 아니면 이대로 체육관으로 혼자 걸어가든지.”


침묵이었다. 오랫동안 침묵하는 법만 배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듯 오래 말없이 대치했다.


“갈래....”


힘없는 긍정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나무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이 묻어, 다시는 울릴 수 없도록 배터리를 빼버렸다. 이윽고 우리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씻고 싶었다. 이제 그만 씻어 깨끗해지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후에야 다시 만났다. 조금은 사람 같아진 성혜미였지만 여전히 밋밋하고 흐릿한 얼굴이었다. 핏기없는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따라오라고 말하고는 함께 옷을 사러 갔다. 또다시 새까만 옷을 사자 성혜미가 왜 똑같은 걸 사는 데 돈을 쓰냐고 물었다. 나는 다르다고 말했다. 같아 보일 뿐, 다른 거였다. 다음에는 바지를, 신발을, 치마를, 속옷을.....가진 돈을 전부 다 써서라도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고 싶었다. 돈이 십만 원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 성혜미가 말했다.


“밥 먹고 가면 안 돼?”


저번에 그 포차에 들렀다. 아주머니가 먼저 우리를 알아봤다. 행색이 말끔해진 우리를 보고 아주머니는 불안한 기색이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다 알고 있었다.


“혹시 너희들.....”


나는 말 없이 돈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저번에 낸 것도 포함한 돈이었다. 더운 우동이 나오기 전에 나는 아주머니를 안심시키려 말했다.


“죽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음식이 남았다. 음식이라는 걸 남겨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계산을 치르고 나오려 하자, 아주머니가 우리 어깨를 붙잡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성혜미를 봤다가 오후가 돼도 어둑한 하늘을 한번 보고는 말했다.


“또 올게요.”


터미널까지는 쉬웠다. 그러나 어느 바다로 갈지, 도대체 바다가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도 헷갈렸다. 동해로 가야 할까, 서해로 가야 할까. 어느 쪽으로 가야 제대로 된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이제 어디로 가?”


성혜미가 습관처럼 물었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울진.”


그건 엄마가 태어난 곳이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내가 한 번도 갖지 못한 바다는 그곳에서 숨죽여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울진?”


성혜미의 말이 낯설게 들렸다. 울진.....오지게도 멀게 느껴졌다. 나는 티켓 창구로 가 울진으로 가는 차표 두 개를 끊었다. 버스가 곧 출발할 시간이었다. 터미널에 있는 싸구려 호두과자와 생수 두병을 사고 성혜미에게 23번 플랫폼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버스 안은 한산했다. 배정된 좌석과 다른 맨 뒷자리에 우린 한 칸 떨어져 앉았다.


“좀 자고 나면 알게 돼. 그러니까 닥치고 가면 돼.”

“응......”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여러 번 반복했지만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울진은 아직이었다. 내 옆에, 성혜미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깨지도 않는 깊은 잠이었다. 나는 뜬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형이 우릴 찾겠지. 성혜미가 없어진 걸 알겠지. 핸드폰을 찾고, 내 물건을 부수고 욕지거리를 해대겠지. 성혜미를 같이 따먹으려고 하던 녀석들은 실망해서 돌아가겠지. 이제 내가 갈 곳은 없겠지. 형과는, 그 개새끼와는 다시 만날 일 없겠지. 차라리 그리웠다. 울진으로 가까워질수록 나는 형이 그리워서 울고 싶었다. 그걸 그리워하는 내가 비참하고 한심해서 울고 싶었다. 성혜미를 변태 같이 따먹고 싶어 하는 내가 싫어서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진짜 울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이 거듭되자, 어느새 버스가 터미널에 닿았다. 초라하고 작은 터미널이었다. 기사가 우릴 향해 울진이라고 소리쳤다.


“다 왔어. 내리자.”

“어디야?”

“울진.”


우리는 비척비척 걸어 버스를 나왔다. 정류장에 내려 서성이자, 버스 기사가 우릴 의아하게 봤다. 나는 기사에게 물었다.


“바다보러 갈 건데 어디로 가야돼요?”

“곧 해지는데?”


엉뚱한 답이었다. 다시 바다보러 간다고 말하자, 여기서 동쪽으로 쭉 걸어만 가면 된다고 했다. 15분 정도 걸으면 방파제가 나온다고, 바다 냄새가 나기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 바다 냄새라니.....그게 도대체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성혜미와 함께 걸었다. 한걸음, 두걸음, 열걸음......백걸음. 계속해서 걷자 소금기가 실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푸르른 물결이 귓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방파제가 보였다. 저 너머에, 저 너머였다. 손에 닿을 것만 같은 파도가 우리가 단 한 번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게 시야 너머에서 넘실거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바다야 봐.”


동해 바다였다. 해가 지기 시작한 바다에 붉은 노을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언제나 고개를 숙였던 성혜미가 바다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바다에 비친 노을이 눈부셔 눈이 찡그려지고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바다.....”

“그래. 바다.”


해가 곧 질 것 같았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다에, 노을만이 아스라이 빛났다. 점점 더 흐려지는 노을빛에 의지해 우리는 등대까지 걸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방파제 위로 퍼지는 하얀 포말을 보았다. 콘크리트로 이뤄진 방파제의 끝에서야 우리는 함께 걸터앉았다.


“바다에 온 기분은 어때?”

“모르겠어. 이게 내가 생각한 바다가 맞는지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바다를 본들, 우리 삶이 달라질 건 없었다. 대책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 이제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기 전 성혜미가 내게 물었다.


“이제 뭐할 거야?”

“몰라, 너랑 섹스라도 해야할 것 같아.”

“그래. 약속했으니까....”


소금기를 실은 바람이 내 짧은 머리칼을 쓸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용서한다는 말은 감히 하지 않았다. 이해한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엄마의 행복을 빌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덜 불행하기를 빌었다. 내 기도 뒤로 성혜미의 더운 숨결이 내려앉았다. 내 등에 기댄 채, 성혜미는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지도 않은 채 왜 그러냐 묻자, 늘 묻던 물음이 습관처럼 또 나왔다. 나는 아직 지지 않은 노을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지구.”


-FIN- 


*주 : 등대라는 장편 소설의 기저가 된 단편 소설. 이 소설과 중편의 고백이라는 소설을 기초로 등대를 완성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편소설]그녀와 곰인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