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왔다
97년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났다. 당시에 운 좋게? 군대에 있어서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다. 사회에 있다고 해도 난 관심을 두지 않았겠지. 아무튼, IMF사태가 군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수색대대 전투중대 선임들은 제대까지 헬기레펠을 3~4회를 타야 한다고 했다. 수색대대에 온 것도 억울한데 헬기레펠은 또 뭐냐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차라리 헬기레펠이 다른 훈련(유격, 혹한기, 특히 행군) 보다 나았다.
그런데 IMF로 인해 항공기와 헬기, 트럭에 들어가는 기름이 대폭 줄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서 그렇다고 선임 하사가 말해줬다. 여러 특수부대에서 해마다 해오던 낙하 훈련이 줄었다. 우리 수색대대도 헬기레펠 훈련이 중단될 줄 알았다.
"이번 헬기레펠 훈련은 3중대만 한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나는 선임하사의 전달사항을 듣자마자 침울했다.
이날부터 우리 3중대는 한 달 동안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레펠 장'에서 맞았다.
레펠을 훈련하기 위해 흔들리는 철제 사다리를 밟고 올라간다. 정상에서 보이는 홍천 강의 모습은 참으로 맑아 보였다. 레펠 장비를 착용하고 '강하'라는 외침과 함께 흙바닥이 아닌 홍천강에 뛰어들고 싶었다. '강원도의 맛'이 느껴졌다. 맑고 깨끗한 공기 그리고 힘든 훈련이 공존했다.
헬기레펠 훈련이 종료될 즈음 내 모습은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측면, 정면 강하도 능수능란하게 수행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강하 훈련이 고되기보다는 재밌어졌다. 지상에서 훈련 연습을 하는 다른 중대원이 힘들어 보였다. 시간은 항공대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본격적인 대대 훈련이 시작됐다. 우리 3중대는 연병장에 도착한 트럭에 몸을 맡기고 헬기가 있는 항공대로 갔다. 일찍 히 헬리콥터를 타본 선임들의 얼굴에는 익숙함과 여유로움이 보였다. 반대로 접해보지 않은 병사들은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항공대에 도착했다.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처음 본 그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 보였다.
'어서 와, 헬리콥터는 처음이지?'라며 긴장하는 나를 놀리고 있는 듯 보였다.
헬기를 타야 하는 시간이다. 상체를 숙이고 헬리콥터 꼬리 쪽으로 향한 다음 열린 문으로 올라탔다.
덜렁거리는 안전벨트는 심히 불안해 보였다. 옆에 항공대 소속의 60 사수(기관총)도 있었다. 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정면만 주시했다.
헬리 콥터가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을 닫지 않았다. 덜렁거리는 안전벨트를 손으로 꽉 쥐었다. 헬리 콥터는 그러든가 말든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연변장 레펠 훈련장 정상에서 보던 홍천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강원도의 울창한 숲들이 초록색 물감으로 점을 찍어 논 것 같았다.
오대산 정상에 도착할 즈음 헬기 조종사가 사인을 보냈다. 이제 그동안 우리가 한 달여를 준비한 레펠을 할 시간이다. 지금부터는 긴장할 새도 없었다. 능수능란하게 한 명씩 줄을 타고 내려오면 임무는 종료된다. 안전장구류에 링크를 결합하고 휘~익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바로 링크를 해체하고 누워 쏴 자세를 한다.
일반 병사로서 헬리 콥터를 타 봤다는 경험은 참 하기 힘들다. 그것도 IMF가 와서 제대할 때까지 더 이상 헬기를 탈 수 없었다. 유일하게 우리 중대가 헬기를 탄다고 했을 때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 보니 할 수 있었다. 값진 경험이었다. 군 생활 중에 헬기를 타 본 병사가 몇 있으랴.
다시 트럭을 타고 부대로 돌아올 때 기분을 적어본다. 큰 훈련을 마쳤다는 후련함과 안도감이 강원도의 공기와 함께 나를 감쌌다. 두려움을 깨고 해낸 헬기 레펠은 지금도 누구에게나 하는 유일한 자랑거리다. 현실로 돌아온 지금, 놀이공원 위에 올라가 있는 기구를 볼 때면 무서워서 몸을 움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