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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고는 지하괴물과 발냄새 공포

by 코와붕가

지하철은 언제나 그렇듯 정시에 도착한다.


나를 포함한 승객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 폰에 빠져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승강장 풍경은 평화롭다.


빠르게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했다.

내가 선호하는 열차칸은 기관실이 있는 맨 앞쪽이다.

평화로운 시간대라 앉을자리가 많다.


열차문이 닫히는 순간,

"쿠르르르릉.. 커헉... 쿠르르..."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정체불명의 굉음이 들렸다.

처음엔 기관실 쪽에 고장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내 맞은편, 노약자석 자리에서 한 남성이 천장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물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입과 코로, 괴물 같은 코골이를 토해내고 있었다.


단순한 코골이가 아니었다.

고릴라가 씩씩대며 산업용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와 콘크리트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바로 일어나 옆 칸으로 피신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도 "좀비냐..."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남성을 쳐다보며 슬며시 일어나

옆칸으로 옮겼다.


나는 다른 칸으로 이동하지 않고 참았다.

역무원인 내게 이 정도 빌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빌런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무방비로 드러난 양말.


흰색바탕에 검은 얼룩이 타투처럼 번져 있었다.

그 발끝에서 피어오른 것은 공포 그 자체.

열차 한 칸 전체를 점령한 무기였다.


이곳은 지하철이 아니라 군시절 화생방훈련소 같았다.

에어컨 바람을 타고 그의 발냄새가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눈은 따갑고, 숨은 막히고, 머리는 아찔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평온했다.

코 고는 남자는 한 번씩 콧바람을 세게 뿜으며 소리를 다양하게 다루었고,

양말을 벗고 있는 청년은 자신의 발냄새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이어폰 소리에 몰입했다.


두 빌런의 협연.

이 칸은 다양한 색깔로 연주 중이었다.

곡의 제목은 [지하괴물과 발냄새 공포].


나는 급하게 일어나 가까운 출입문으로 갔다.

다음 역까지 2분.

아무리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역무원이지만, 버티지 못했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최대한 숨을 참았다. 1분 1초가 급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비상탈출을 했다.


'살았다'


지하철엔 별의별 빌런이 나타난다.

그중 가장 무서운 건, 익숙해지는 나 자신이다.


오늘도 코와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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