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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또 나타났다'

by 코와붕가

지하철 승강장


2호선 신도림역 승강장이다.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은 양 쪽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열차는 터널에서 라이트와 신호음을 발사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승강장에 열차가 정위치에 멈춘다. 철벽 같은 스크린 도어가 공기 빼는 소리를 낸다.

'취~익'

출입문이 열리자 길게 늘어선 승객들은 종종걸음으로 승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그 사람을 다시 봤다.


2호선 지하철 진상의 화신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오늘도 한 손엔 생수, 다른 손엔 커다란 코스트코 쇼핑백을 들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자자! 여기 집중.

여기에 계신 어르신과 젊은 사람들 다들 바쁘시지요.

이 물을 한 번 보세요. 그냥 물이 아닙니다."


그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자신의 폰만 보고 있다. 이런 자세는 일종의 방어자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갔다. 승객들의 귀는 열려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제가요, 간경화로 죽을 뻔했는데,

이 물 먹고 살아났어요! 그것도 한 달 만에! 믿기십니까!"


승객들은 안 듣는 척하면서도, 미세한 소리에 반응한다.

'어쩌면 저 사람, 진짜 아픈 걸까?'

'아니야, 세상에 저런 일이 어디 있어?'

'진짜건 말건 왜 이렇게 목소리가 커."


나는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그 사람은 비슷한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문 앞 공간에서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저기요, 여기 공공장소잖아요. 좀 조용히 해주세요."

당연히 그 사람은 정색했다.


"아줌마, 이게 다 병든 사람들 살리려고 그러는 겁니다.

왜 그렇게 못 마땅해하세요!"

조용한 열차 객실에 코끼리 울음 같은 소리가 울렸다.


이에 질세라 아주머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당신보다 열 배는 더 힘든 사람이야! 별 미친 X 다 보겠네."


공기가 확 굳어지고 무거워졌다.

정적 속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승객들의 고개도 동시에 돌아갔다.

모두가 눈을 피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열변을 토했다.


지하철은 조용한 곳이다. 누구도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는, 암묵적 규칙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 사람만은 모든 걸 무시한다.

다음역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보안관들에 의해 강제 하차를 한다.


자기 말이 곧 사명이고, 자기 존재가 곧 이유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아니 내일도 돌아온다.

그 사람, 또 나타났다.


누군가 신고하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해도 소용없다. 그는 벌금에 떨지 않는다.

"전 진짜로 사람 살리려고 하는 겁니다."라고 목소리를 드높일 뿐이다.


지하철은 시간을 지키며 간다. 그도 같이 간다.

누군가 내리고, 누군가 타지만 그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나타난다.


아뿔싸!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피곤해 보이는 형제님, 이 물 드셔보셨나?"


나는 생각한다.

내일 이 시간, 이 칸은 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또 나타날 것이다.


오늘도 코와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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