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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으로 노래 부르는 학생

by 코와붕가

자정을 넘긴 30분,


7호선 열차는 막차시간에 점점 가까이 가고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낸 승객들이 일찍 집으로 갔기 때문일까.

객실 안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승객들은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꾸벅 꾸벅 졸고 있다.


나는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피곤한 다리를 겨우 접어 일반석 의자 끝에 앉았다.

그때, 내 맞은편 자리에 학생 하나가 지친 기색을 한 표정으로 '툭'앉는다.


교복 바지 끝이 해져 있고, 운동화엔 먼지가 수북하게 묻어 있다.

가방이 한쪽으로 축 처졌고, 그 틈으로 학원 프리트물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어느 학교인지는 몰라도,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한 이 전동차 안에서 학생의 입만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처음엔 혼잣말하는 줄 알았다. 학원에서 배운 단어를 수회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영어 단어가 아니라 '가사'였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세상의 음악을 따라 불렀다.

음악에 따라 입으로, 가끔은 작은 소리로,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부르고 있었다.


'학생은 고개를 숙였다가 눈을 감았다가 목을 살짝 젖히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무대에

몰입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묘하게 학생에게 스며들었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흥얼거리는 사람은 많다. 학생같이 '제대로'부르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열심일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나도 학생과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컴컴한 어둠 속에서 달과 별이 동행했다.

축 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방 주머니 지퍼를 열고, 싸구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 없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는 떨렸다. 음정은 불안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학생도 어쩌면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을 꿈꾸고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자기 방에서 유튜브를 켜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하루가 답답해서 노래라도 안 부르면 숨이 막힐 것 같아 감정을 토해내는지 모르겠다.


자정이 넘은 시간 지하철 객차 안은 조용하다.

하지만 학생만은 달랐다. 자신만의 박자에 맞춰 혼자 작은 공연을 이어갔다.

나는 한참 보고 있던 스포츠 하이라이트 영상을 치워버렸다.

맞은편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학생을 뚫어져라 구경한다.


그날 만났던 학생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때(빛)를 기다리며 이어폰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도 코와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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