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하철이 키운 진상들

by 코와붕가

아침 8시


러시아워 시간이다. 승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때다.

승강장 스크린 도어가 열린다. 이어서 지하철 열차 출입문이 열린다.

그리고 인류의 가장 치열한 경기 중 하나인 '자리 쟁탈전'이 시작된다.


우사인 볼트도 울고 갈 스타트 대시,

팔꿈치는 창날처럼 날카롭고,

어깨는 방패처럼 단단하다.


"나 먼저 탔거든요!"


이 말은 지하철 용어 사전에서 '집적대지 말아라. 여기 내 자리다.'라는 뜻을 가진 고유어다.

스피커로 정치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은 어르신은 이 칸에서 BGM을 담당한다.

문 앞에서 폰만 보는 학생은 열차 출입문 안전 지킴이로 활약한다.


그들은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걸까?

아니다.

지하철이 하루동안 여러 차례 지나다니면서, 50년 동안 길러낸 작품들이다.

처음엔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던 초보 승객이, 몇 번 밀리고, 끼이고, 무시당하다 보면

점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진상의 단계가 올라간다.


1단계: 먹잇감(자리)을 살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밀치며 돌아다니기.

2단계: 앉아있던 승객이 들썩하면 일어나기 전에 다리하나 걸치기.

3단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바로 눈 감기(승리 선언)


이쯤 되면 타인의 불편 따윈 안중에 없다.

"여긴 내가 앉을자리야"라는 철학이 완성된다.

지하철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그들은 매일 똑같은 대본으로 연기한다.

나는 조용히 객석에서 관람한다. 아니 관찰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도,

지하철은 새로운 배우를 키워낼 것이다.

심지어.... 어쩌면... 불행하게도 그 배우가 '나'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코와붕가!







keyword
이전 06화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