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지하철이 승강장에 다가오고 있다는 방송이 울린다. 친절한 방송음에 퇴근하는 승객들의 발걸음은 바삐 움직였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속도를 빠르게 유지한다.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 안에서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면서 느리게 걷는 승객도 있다.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웃고 있어도 지쳐 보인다. 다른 이들과 함께 휩쓸려 빨리 가기도 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기도 한다.
나 역시 주간 근무를 마치고 집 근처 역에 도착했다. 직원권을 개찰구에 찍고 나갔다. 그런데 한 승객이 태연하게 개찰구를 넘어갔다. 분명히 카드 찍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냥 지나갑니다'라는 뻔뻔한 태도만 있었다.
난 뒤돌아서 무임승차한 승객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맞은편에서 오던 남성 승객 한 명이 소리쳤다.
"저기요, 카드 찍으셔야죠!"
그 목소리는 지하철 방송에서 나오는 '다음 역은 종로 3가... 종로 3가'같은 자동 안내 방송보다도 더 선명하고
단호했다. 단전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힘이 느껴졌다. 주변 승객들은 동시에 한 곳으로 눈빛을 모았다.
그리고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무임승차를 시도한 승객은 당황한 듯 슬쩍 가방과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애써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 카드가 인식이 잘 안 돼서요."
그러나 이미 늦었다.
승객의 한마디는 지하철 대합실을 법정으로 만들어버렸다.
한쪽은 '봐줘도 되지 않나'하는 관대한 쪽, 다른 한쪽은 '절대 봐주면 안 된다'는 원칙주의 쪽으로 나뉘었다.
잠시 후 CCTV로 감시하던 역무원이 달려와 상황은 정리됐다.
무임승차를 한 승객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서 읽힌 건 억울함이 아니라, 들켜버린 민망함이다. 해당 승객은 31배의 부과금을 내야 한다. 만약 상습범이라면 그동안 여러 번 반복했던 무임승차를 더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황을 곱씹었다.
"정의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구나.
어쩌면 사람들이 외면할 때 눈을 들어 한마디 하는 용기.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도 누군가의 무임승차를 눈치채고,
용기 있게 말하는 시민들 덕분에 굴러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