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도 별 탈 없이 도착한 우리

by 코와붕가

출퇴근길 지하철은 늘 비슷한 풍경이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둔다.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상상한다.

옆자리에 커다란 커피를 들고 있는 승객을 본다. 열차가 갑자기 멈추면 다른 승객에게 쏟기 좋게 잡고 있다.

난 언제라도 피할 자세를 취한다. 이렇듯 출근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특별한 사건은 없다. 지하철은 멈추지 않고 정시에 도착해서 나를 태우고 집 근처 역에 도착한다.

오늘 내 발걸음은 하루를 대변하듯이 큰 실수 없이 이어진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무 탈 없이 집에 왔구나."


허무하다면 허무한 하루였다. 매일 역무실에 들려 자연스럽게 커피를 타 먹는 '커피 맨'도 안 보였다.

열차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잡상인을 퇴거하라는 관제 전화도 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선로에 빠트려서 발을 동동 구르는 승객도 없다.

조금 날씨가 풀려서일까. 승객과 승객 간에 다툼도 발생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하 밖 뉴스를 접한다. 온갖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오늘만큼은 이곳(지하철 역) 만큼 평화로운 곳은 없다. 별 탈없이 흘러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대단한 성취를 바라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별 탈 없는 하루가 성취다.

제시간에 출근해서, 꼼꼼히 업무를 보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하루가 그렇다. 거창하지 않아도 무사히 집으로 귀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이렇게 정리한다.


"이런 날도 있구나. 가끔 진상들도 쉬어야지.. 그럼.."


다시 내일이 오면, 그들(진상)은 작은 틈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나타날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어디선가 만나게 될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 말이다.


오늘도 코와붕가!






keyword
이전 10화친절한 역무원과 쿨한 승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