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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일 Jan 12. 2021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 펫로스 이야기

몰래 온
수의사 선생님




"몰래 온 수의사 선생님"


이상하게,

이곳 장례식장을 자꾸 찾는 수의사가 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 그는 분명
얼핏 봐도 수의사 선생님이었다.

동물병원에서 방금 막 나온 것처럼
근무복 위에 재킷만 걸치고 크록스
슬리퍼를 신은 채였기 때문이다.

지금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인 아이를 보러 왔다고 했고,
자신이 그 아이의 주치의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추모실 안에 고이 누워 있는
작은 강아지의 사망 판정을 직접 내린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찾아온 거였다.

사실 동물병원에서 장례식장을 안내하거나
대신 예약해 주기는 하지만 담당 주치의가
직접 찾아와 추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이 이상하다거나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저 지금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현실에 놀랐을 뿐이다.

그는,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흔히 버동수라고 부르기도 한다)’소속으로
평소에도 유기동물 구조와 복지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담당했던
반려동물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수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마주친
생경한 광경은 그날 이후로 한 번, 두 번
그리고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혼자 와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다 돌아가는 것도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워졌다.


자신이 돌보았던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아팠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관계였다.

어쩌면 수의사로서 아픈 아이를...
끝내 돕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아픈 아이들이 병원 밖을 나서는 순간이
아니라 하늘로 홀로 소풍을 떠나는 지점까지를
자신의 책무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수의사나 동물병원 관계자들이 동물을

의료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동물의 죽음에 대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장례지도사로서,

내가 봤을 때 그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내 경우 몇 년 동안 하루에도 십수 마리의
주검을 마주하다 보면 이젠 무뎌질 법도 한데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아이들의
수에 따라, 혹은 아이들이 가진 사연에 따라
그 고통과 슬픔은 그날그날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전혀 괜찮을 리 없다.

홀연히 나타나서는 마음을 담아 조문을 하고
잠시 눈물을 훔치는 게 다라고 하지만,
주치의 입장에서는 이제 ‘그것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몰래 온 수의사 선생님은,
거기까지가 자기 할 일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고 자신의 위치와 사정을 고려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래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아이의 눈을 감겨 주었던 손을 이제는
간절히 모아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거다.

나는 오랜 시간 지금의 일을 해왔지만...
수의사와 장례지도사가 장례식장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수의사 선생님의 손을 떠나 내 손에
전달되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아이의 마지막
호흡을 목격한 자의 정중한 부탁이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뛰어놀지는 못했지만
저기 멀고도 평화로운 곳에서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줄 수는 있는 자격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몰래 온 수의사 선생님께,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안녕, 우리들의 반려동물 : 펫로스 이야기」 중에서


http://brunch.co.kr/publish/book/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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