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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Oct 15. 2020

사라진 아이돌 上

수록시: <빈집>, 기형도

보사노바. 삼바와 쿨 재즈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브라질 음악. 사무소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으레 보사노바 선율이 흘러나온다. 보사노바를 즐기시는 선생님이 오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시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삼바 특유의 리듬에 쿨 재즈의 냉소적인 음률의 결합이 선생님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덕에 본래 재즈를 잘 모르지만 스탠 게츠(Stan Getz)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후앙 질베르토(Joao Gilberto)의 노래 정도는 그럭저럭 듣고 아는 체를 할 수 있게는 되었다.(워낙 많이 들었다.) 지금 사무소에는 스탠 게츠와 후앙 질베르토가 컬라보한 ‘The Girl From Ipanema’가 흘러나오고 있고 방금 사무소를 나간 여인을 생각하며 나는 의미도 모르는 포르투갈어 가사를 들리는 대로 따라 부르고 있다.


- 딩동


그 날,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우리는 꽤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앞뜰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들을 만큼 큰 오디오 볼륨 때문이었다.(이 오디오는 사무소에서 가장 비싼 기기이고 우리는 볼륨을 높이는 것으로써 그 기기의 성능을 확인하곤 했다.) 창밖에는 하얀 스포츠카가 세워져 있었고 잘 관리된 차체와 휠이 자신들이 받은 빛을 창쪽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거듭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나는 문을 열어 의뢰인을 맞이했다. 소파에 앉은 채 방문객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미리 약속된 의뢰인은 아닌 듯했다.


“여기가 설 탐정님의 사무소가 맞나요?”


170센티미터 정도되는 키에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배는 약간 나왔으나 검붉은 자켓에 아이보리색 바지, 그리고 스카프를 매치한 중년 신사였다. 투블럭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의그는 단단하고 다부진 인상이었다. 방문자가 의뢰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선생님은 소파에서 일어서서 악수를 건냈다.


“제가 설록입니다.”

“탐정님께 의뢰할 게 있어 찾아봤습니다.”


마침 우려 놓은 녹차가 있어 조금 따라 의뢰인에게 대접했다. 그는 선생님과 사무소가 아늑하고 좋다느니, 책이 많다느니 하는 잡담을 나눈 후 명함을 꺼내며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MF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안토니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받은 명함을 앞뒤로 뒤집어 가며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MF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안토니 씨는 주로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업계에서 나름의 인지도를 넓혀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의 회사를 소개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혹시 ANZ라는 가수를 알고 계신지요? 저희 회사 소속 가수입니다마는...”

“아, ANZ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본 적이 있지요.”


그제서야 선생님의 의심의 눈초리가 풀렸다. 사실 MF엔터테인먼트는 몰라도 ANZ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가수이다. 이즈, 샤니, 보영, eS(에스) 4명으로 구성된 여성 아이돌그룹으로 출중한 보컬실력, 섹시하면서도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데뷔 후 줄곧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가요에 관심이 없는 선생님마저도 알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된 것은 1년 전 ‘Now on’이라는 곡으로 미국 진출을 선언한 그들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후, 하루를 멀다하고 그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애들 중에 ‘이즈’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팀의 리더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아무튼 가수로써의 끼가 많아요. 무엇보다 열정이 많은 친구이고요.” 


우리 애들. 소속 가수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호칭이었다. 안토니 씨는 이즈가 ANZ로 데뷔하기 전, 홍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버스킹하는 모습에 반해 캐스팅을 했으나 단번에 거절당한 후 1년간의 구애 끝에 겨우 수락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캐스팅 비화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최근 들어 좀 이상해졌습니다. 몇 시간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연습에 늦기도 하고요. 연습에 나와서도 시무룩하게 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는데 말이죠. 특유의 열정이 식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영혼이 없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매너리즘의 일종인가요?”

“다른 아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말로만 듣던 빌보드 차트를, 그것도 1위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평소 민아, 아, 이즈의 본명이 민아입니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민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매너리즘에 빠질 애가 아니라는 걸 알겁니다. 매니저도 잘 알고 있죠. 겸손하지만 뚝심도 있고 꿈도 큰 친구라는 걸 말이죠.”


선생님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고 안토니 씨를 바라보았다. 그의 진심을 살피는 듯했다.보통 사람보다 약간 쳐져 보이는 안토니 씨의 눈꼬리가 인상을 쓰자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소속가수를 걱정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민아가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도와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음...일단 평소 민아 씨가 좋아하는 시인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걸 알아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시 탐정이니까요.”

“물론 있습니다. 민아는 ‘기형도’의 열렬한 팬입니다. 기형도 얘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얘기할 정도죠. 그래서 이걸 가져왔습니다만.”


안토니 씨는 가져온 서류 가방에서 시집을 한 권 꺼냈다. 기형도 시인의 유일한 시집이자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민아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입니다. 제가 좀 읽어보겠다고 하니 흔쾌히 빌려주었지요. 그렇지만 저는 시를 보는 안목이 없어놔서요. 탐정님은 시만 봐도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 부분은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요?”

“제가 하는 이 일이 민아 씨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시를 읽는 건 그 사람을 읽는 거니까요.”

“네?” 

“사람들마다 즐겨 읽는 시가 다르지요. 그건 그들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가 자신의 삶에 온전히 들어올 때에야 비로소 그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아마 민아 씨는 기형도 시인의 시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시를 통해 민아 씨의 삶이나 고민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안토니 씨의 의뢰는 민아 씨의 사생활을 읽어내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민아 씨의 동의 없이 말이지요.”

“아...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의뢰를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말이지요.”


안토니 씨의 눈꼬리가 한층 더 쳐져보였다. 그는 매우 실망한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가지고 온 시집을 쥐고 있었다. 


“민아 씨 본인을 여기로 모시는 건 어떤가요?”


명확한 방법이 있는데도 망설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답답했던 내가 나섰다. 민아 씨 몰래 시 추리를 의뢰한 게 문제가 된다면, 그러나 차선책이 없다면 정면돌파를 해야하는 법이다. 그가 그녀를 설득해야 한다. 이 자리에 오도록.(오해할까봐 말하지만 이즈의 만나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으로 이렇게 말한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민아가 허락해 줄까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

“대표님 정도면 다른 방법은 충분히 찾아봤을 텐데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 저희를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실 연애를 하는 걸로 의심하고 뒷조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별 다른 게 나오지 않았어요.”

“정면돌파하십시오. 대표님답게.”


나는 초면인 안토니 씨에게 마치 그를 매우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실례를 범했다. 내 경솔한 발언이 그를 불쾌하게 만든 건 아닐지 염려되었다. 한참동안 아무말 없이 생각에 잠긴 그의 표정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안토니 씨의 입에서 의외로 하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때로는 경솔한 게 지나친 경계보다 나을 때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왼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안토니 씨 몰래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지금 가서 솔직하게 말해야겠습니다. 그럼 민아의 동의를 받으면 시를 해독해주시는 거지요, 탐정님?”

“물론입니다. 안토니 씨. 그런데 안토니 씨께서 솔직하게 물으신다면 그쪽에서도 솔직하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제 도움이 필요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민아는 자기 마음을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진중한 친구이지요. 그래서 제가 팀의 리더를 맡긴 거고요. 그렇지만 시로 자신의 마음을 끄집어 내는 건 직접 말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민아의 마음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군요. 당사자의 동의가 있다면 안토니 씨의 의뢰를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안토니 씨는 감사의 인사를 건낸 후, 사무소를 나갔다. 시동걸린 스포츠카의 엔진소리가 그의 표정만큼 비장하게 들렸다.


- 中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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