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 계약의 밤
망항시 부두 끝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바다는 검은 유리처럼 잠들어 있었고, 부두의 철 난간은 비에 씻겨 반짝였다.
미라뉘주는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었다. 손바닥에 유니옹 배지가 찍어놓은 얇은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미라뉘주(속으로): 정의라 믿고 들어왔는데… 왜 이 길은 나만 짓누르는 거지.
그때, 발소리가 다가왔다. 일정하다가도 중간중간 끊겼다. 마치 걷는 리듬을 누군가 일부러 흔드는 듯. 어둠 속에서 코트 자락이 나타나고, 가로등 불빛 안으로 스트라이프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가가 짧게 파르르 떨렸다. 턱이 덜컥하며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틱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위엄을 깎아내리기보다, 오히려 공기 자체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스트라이프: “밤이… (턱이 움찔) 차갑군.”
미라뉘주: “왔나.”
스트라이프: “네가 지쳐 있다는… (목이 툭 끊김) 얘길 들었다.”
미라뉘주: “네가 관심 가질 일 아냐.”
스트라이프: “네가 흔들리면… (어깨가 툭, 경련) 결국 우리가 흔들린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존중하지는 않았다.
스트라이프는 코트 안에서 흑목 상자를 꺼냈다. 문양이 얇게 새겨진 상자였다.
그의 눈꺼풀이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손가락이 상자를 잡으며 한 번 휘청거렸지만, 그 동작조차 위압적으로 보였다.
스트라이프: “네 고집, 인정한다. 하지만 고집만으론… (턱이 움찔) 아무것도 못 바꾼다. 힘이 필요하다.”
미라뉘주: “넌 힘이 정의라 믿지. 난 달라.”
스트라이프: “믿음이 뭐든… (목이 툭 끊기며) 결과를 만든 쪽이 옳다.”
상자가 열리자, 흑침과 유리관, 문양 필름이 드러났다. 액체는 살아 있는 듯 표면을 흔들었다.
스트라이프: “시선만으로 옮는 병. 원하면 퍼뜨릴 수 있다.”
미라뉘주: “조건 말해봐.”
스트라이프: “네가 뿌린 전염이 사라지면, 너도… (어깨가 덜컥) 같이 사라진다.”
미라뉘주: “결국 네가 던지는 미끼에 목을 매라는 거네.”
스트라이프: “목을 매든… (턱이 움찔) 깃발을 세우든, 선택은 네 거다.”
미라뉘주: “네가 준다고 해서 네 게 되는 건 아니야. 난 내 방식대로 쓸 거다.”
스트라이프의 입가가 짧게 경련했다. 틱과 함께 섞인 비웃음이 번졌다.
스트라이프: “큭—(턱이 툭 끊기며) 웃기는군. 네 방식이든 뭐든, 결국 내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거다.”
부두 끝 창고 안, 바닥에는 원형 홈이 새겨져 있었다. 스트라이프는 흑침을 꺼내 들며 말했다.
턱이 덜컥하면서 잠시 말이 끊겼다.
스트라이프: “중심에 서라. 이제부터—(목이 툭) 네 선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미라뉘주: “대가는 내가 감당해. 넌 아니야.”
그가 원의 중심에 섰다. 발밑에서 전류 같은 기운이 올라왔다.
스트라이프의 눈꺼풀이 짧게 파르르 떨리더니, 다시 고정되었다.
스트라이프: “눈을 들어… (어깨가 움찔) 날 봐.”
미라뉘주: “네 눈빛에 굴할 생각 없어.”
흑침이 팔을 스쳤다. 피 대신 검은 잉크 같은 액체가 번졌고, 문양 필름이 덮였다. 유리관의 액체가 한 방울 떨어지자, 문양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미라뉘주: “큭…!”
스트라이프: “버텨라. 못 버티면—(턱이 덜컥) 넌 그 정도였던 거다.”
미라뉘주는 무릎이 휘청였지만, 이를 악물었다. 고통이 지나가자 묘한 무게가 눈가에 남았다. 시선이 무겁고, 공기가 휘는 듯했다.
창고 문이 열리고 젊은 요원이 들어왔다.
요원: “무슨—”
그 순간, 미라뉘주의 눈과 마주쳤다. 단 한순간. 요원의 동공이 흔들리며, 목덜미에 잿빛 반점이 번졌다.
요원: “어… 어지럽…”
다른 요원이 그를 급히 끌고 나갔다.
스트라이프: “봤지? 최소한의 시선으로도—(목이 툭 끊기며) 가능하다.”
미라뉘주: “네가 준 게 아니라, 내가 빼앗아낸 거다.”
스트라이프: “네가 뭐라 부르든—(어깨가 움찔) 결국 이 힘 없이는 넌 아무것도 못 하지.”
미라뉘주는 팔의 문양을 덮으며 낮게 웃었다.
미라뉘주: “착각하지 마, 스트라이프. 이 힘은 내 것이다. 난 내 정의에 맞게 쓸 거야.”
스트라이프는 턱이 파르르 떨리며 미소를 흘렸다.
스트라이프: “큭—(목이 툭) 좋다. 언젠가 그 말이 칼날이 돼 돌아올 거다.”
그는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돌아섰다. 창고 밖 빗줄기가 거세졌다. 미라뉘주는 비를 맞으며 문을 나섰다. 멀리서 젊은 남자가 고개를 들었고, 눈이 스쳤다. 그 순간,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미라뉘주(속으로): 시선은 질문이자 명령.
바다는 검은 거울 같았지만, 금이 번지기 시작했다.
미라뉘주: “지켜봐. 이제 내가 내 정의를 증명할 차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