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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Sep 19. 2018

어른 편

용희사전 15

어른

     

대한민국은 만 19세부터 성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성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성인이 되었다고 어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나이로만 어른으로 판단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떨 때는 나이로 어른임을 증명해야 할 때도 있다.

     

나 역시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단순히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성숙한 어른이란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이라 명시 되어있다.

     

다 자라다? 그리고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다 자란 사람이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어른스러운 사람은 있는 것 같다.

     

사전에 명시 되어 있듯이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보면 확실히 어른스러움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프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을 지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어떤 업을 가졌던 어떤 환경에 있던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들이 성품까지 갖춘다면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은 단순히 해야 되는 일이나 맡은 책임만 해결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성과 성품 역시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어른은 어쩌면 어른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이렇게 훌륭한 어른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철이 덜든 어른도 있고 무책임한 어른, 또는 꼰대들도 너무도 많다.

     

헌데 우리는 꼭 모두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만 할까? 라는 의문이 글을 쓰다 보니 스쳐지나갔다.   

     

사실 생각해 보니 어른이라는 것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회 속에서의 인정으로 이루어지는 때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어른으로 인정하는 것과 사회의 인정과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스스로 나를 어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이제 내가 나를 스스로 책임지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책임지어야 할 것 들이 늘어날 수 록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른 = 책임.

     

이런 공식이 만들어 지는 것 같다.

     

이렇게 스스로를 책임지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잘 책임지는 어른을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존중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책임이 어른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철없는 어른. 책임감 없는 어른. 꼰대 어른을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러한 어른의 형태도 어른의 책임이라는 무게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만큼 어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다.

     

어른 = 성숙

     

이러한 공식도 나올 수 있겠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성숙해 지는 것일까?

     

     

책임의 무게를 느꼈을 때 일 수도 있고,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서 일 때도 있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동기들은 하나로 묶이는 것 같다.

     

나를 마주하게 될 때 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날 것의 나를 마주 했을 때 분명 성장하고 성숙해 지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어나가면서 어른으로 커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은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나를 헤아리는 마음이 생겼을 때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세상과 나의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일수록 더욱 멋진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른의 부작용중 하나인 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다.

     

나는 꼰대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꼰대가 되기 위해서는 꼰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꼰대들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일 확률도 높다.

     

자신을 헤아리는 마음이 높을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근데 왜 꼰대가 되는가?

     

자신을 헤아리는 마음은 높지만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은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헤아리는 마음은 높기에 자신의 노력, 고생, 책임의 무게 등을 이겨낸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을 헤아리지 못하기에 자기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작을 수도 있는 부분 때문에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라 본다.

     

어른은 성숙과 연결 되어 있다. 꼰대들은 성숙의 왜곡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아는 어른으로 성숙해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성숙하고 책임을 다하고 남도 나도 잘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물론 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부분을 다 잘 해낼 수 있는 어른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 = 성장

     

그래서 이런 공식을 한번 대입해 보았다.

     

어른의 또 다른 덕목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완성형 어른도 있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성장형 어른이 대부분 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완성형 어른은 드물게 있겠지만 꼰대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완성되지 않는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는 존재로 생각되어 진다.

     

자신의 성장을 끊임없이 이룩하여 점점 나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완성은 아니겠지만 계속해서 나를 재창조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작품이 아닌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완성이다. 그래서 나만의 인생이라는 작품은 내 생이 끝나갈 즈음에 서서히 완성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어른이 존재 할 것이다. 맘에 드는 어른도 있고 꼴도 보기 싫은 어른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어른들도 현재 자신의 작품을 완성 시킨 것이 아닌 아직 작업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기다려주고 그 분들이 아픔이 있다면 한번쯤은 보듬어주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마지막 공식으로 글을 마친다.

     

어른 =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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