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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Sep 17. 2018

실패 편

용희사전 14

실패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던 20대에 겁 없이 이것저것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니 사실 제대로 해낸 것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좌절을 하고 후회를 하고 무너지고 쓰러졌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극복하고 일어났을 때 나는 그것들은 삶의 실패가 아닌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의 부분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실패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 명시되어있다.     

이번 편은 앞서 용 희사 전 챕터 13 성공 편의 연작으로 기획되었다.    


나는 올해 34살이다. 30대 중반이란 참으로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어리다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많이 먹었다고 얘기하기도 그런 나이이다.     


34에 나는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하면서 살아왔었던 같다. 보통의 내가 했던 도전들은 미술작업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것 같다.     


주로 내가 했던 작업을 이야기하자면 실종아동을 주제로 진행한 MEMORIES라는 작업이 가장 대표적이다.     

MEMORIES는 내가 대학생 시절 최초로 진행했던 작업으로 단순히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직접 실종아동 협회도 찾아가고 가족 분들도 만나보고 해서 진행했던 작업이었다.      

그래서 기억에도 많이 남는 작업이다.


나는 MEMORIES를 갤러리 라든지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지하철이나 도서관등의 공공장소에서 전시를 진행하였다.     

나는 사실 이러한 작업 과정들이 세상에서 발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종아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달라진 건 없었다. 나의 공공미술로서의 첫 도전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이나 버렸다.     

그 후로도 나는 여러 시도들을 하면서 공공미술로서 사회를 조금이나마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도전하였다. 하지만 나의 열정 마음만큼의 성과를 올린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포기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나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조금씩 정진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상은 APT라는 정신을 이루는 것이다. APT란 아파트의 약자가 아닌 A름다움이 P어나는 Ter전의 약자이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곳으로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APT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 APT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꼭 나로 인해서 세상이 아름다워 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그러한 세상이 되는 것에 일조를 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프로젝트들은 사실 실패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상에 제대로 발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나의 꿈과 목표는 나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의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사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생각보다 성공할 일 보다 실패할 일이 더욱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우리는 왜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일까? 실패의 쓴 맛을 첫째로 들고 싶다.     

사실 실패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게 해준다.    


자괴감, 나에 대한 실망감, 심한 경우 절망감, 또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저하까지 오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를 피하게 되는 것 같다. 즉 우리는 실패를 피해 도전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점점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고 무모함을 피하게 된다.     


두 번째로 우리가 실패를 피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방어를 예로 들고 싶다.     

실패로 인하여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바닥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아한다. 나라는 인격, 자아가 온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인격,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무너짐을 견딜 수 없어 그대로의 나로 유지를 한다면 정확히 말해 그것은 인격, 자아의 정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 나라는 개인의 밑바닥은 끝없이 깊다. 그 끝에 도달해야만 보이는 것들도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개인의 밑바닥을 꼭 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잘 나가고 성공한 모습만 나의 모습이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 반대의 내가 너무도 보기 싫은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이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어쩌면 그 모습이 본능에 충실한 또는 본연의 나의 모습 일수도 있다.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내가 아닌 진짜 나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본성 혹은 본능의 모습을 바라봐야지만 나의 날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실패는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준다.     


실패는 그리고 많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패의 과정들이 모두 실패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실패는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실패는 쓴맛이 나고 성공이라는 열매는 달달할까?    

실패는 한계라는 벽을 실감하게 해준다. 그 벽을 느끼는 것이 너무도 씁쓸하다. 그리고 성공은 그 벽을 와그작

씹어버리는 느낌이랄까? 한계를 깨버리는 경험은 역시나 너무도 달콤하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우리가 성공이라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란다. 물론 씁쓸한 뒷맛의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도전하기를 바란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실패의 연속이었다. 무엇이든지 넘어지고 깨져가면서 성공을 해나갔다.     

물론 지금까지 일군 것들을 잃기 싫어서 주저한다면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 가치 역시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 껍데기를 탈피하면 또다시 우리는 성장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각자에게 맡긴다.     


나는 성공을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좌절과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섭지 않다. 그 씁쓸함이 나를 좀 더 매력적으로 단련시켜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성공 그리고 실패 모두 응원하며 실패 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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