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버티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모른다.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져서 마지막에 내가 넘어져야 할 차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없을 만큼.... 치고 다가오는 괴로운 상황들의 뭉텅이들로 버티고 있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음을 감추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얼굴과 안색에묻어나는 깊은 고난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권사님들은 수술을 앞두고 있는 딸아이를 데리고 목사님께 가서 기도를 받고 오자고 하셨다. 어렵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상황이었다. 등에 떠밀리듯이 들어간 자리에서 목사님은 안경을 살짝 콧잔등에 내리고 그 사이 위로 올려진 눈으로 날카롭게 나에게 말하셨다.
" 감사를 좀 똑바로 해요 김집사~
감사가 없으니 일이 꼬이지!"
위로받고 싶어 겨우 등 떠밀어 들어간 자리에서
매서운 눈빛과 말로 상처를 받고 나왔다.
감사... 감.. 사.....감... 사.... 감..... 사.....
라는 말을 되뇔수록 내 마음을 감사가 오히려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내 상황에 감사가 먼저 나올까? 아이의 얼굴이 성하지 못한 채로 태어나 우유 한 방울 제대로 빨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나의 상황이 자신의 상황이라면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본인의 자식이... 손주가... 그런다면... 진정한... 감사.. 할 수 있을까?'
라는 뒤틀린 감정의 질문이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할 수 없다고 드러누워 울지도 못했다. 막막한 상황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내가 먹이고 살릴 수 있는지를 하루종일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
잇몸의 사이는 벌어진 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입술은 갈기갈기 갈라진 채로 제 멋대로 근육이 움직이며 아이는 생전 본 적이 없는 입모양으로 울고 웃었다. 입천장은 콧 속 안의 뼈가 드러난 채로 다 지어지지 못한 건물의 형체처럼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감정이 다리 허벅지 정강이 어딘가를 아리게 흔들어대곤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아이의 질병이 낯설었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마음에 하루하루 죽고 싶었지만 버텨야 하는 엄마였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있는 게 나로서는 최선의 감사였다. 그런데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라는 말이 억울하게 들렸다. 모두에게 비슷한 상황은 얹어주고 누가 결국은 끝까지 버티나 시합을 해보고 싶었다. 거기서 탈락하는 순서대로 감사를 누가 잘하나 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난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게 때론 서글펐고 괴로웠다.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귀를 관통하는 이상한 소리들이 나의 몸을 감싸고 나의목을 조아오기 시작했다. 괴로운 마음들의 실체가 내 육체까지옭아매는 듯했다.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를 쭈뼛하게 하는 악하면서 괴로운 그 기운의 실체는 내 몸을 빙빙 돌면서 나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 실체가 나의 아픈 딸에게도 가서 돌기시작하자 아이는 이유 없이 울었다. 나는 내 눈에만 보이는 이 어두운 형체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숨이 멎은 느낌으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정신은 있는데 갑자기 내 혼이 고통스러운 줄에 목이 매달리는 채로 끌려나가 버리는 섬뜩한 체험이었다.
남들보다 몸도 예민하지만 섬뜩한 기운을 느끼는 감각도 예민했다. 그렇게 내 몸을 누르며 조여 오는 상황들이 잠을 자다가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하루는 겨우 잠든 소파 끝에서 갑자기 내 몸이 유체이탈 된 듯 우주 밖으로 끌려가 온 세상을 정신없이 도는 어지러움을 버텨야 했다. 겨우 내 몸으로 나의 기력이 돌아올 때면 토할 거 같았고 또다시 겪을 몸의 이상반응에 공포스러웠다.
누군가는 이석증의 증상이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라리 병명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고 없이 다가오는 상황마다 대처하지 못하고 괴로웠다. 이런 일 들 속에서 나는 감사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감사라는 말이 나의 고난과 반대되는 편에서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머나먼 별처럼 느껴졌다.
하루를 고되고 괴롭게 보내고 아이를 겨우 재우고 잠이 들었다. 사실 그날 하루에도 난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구나.. 내일도 희망이 없구나라는 좌절스러운 마음만 남은 밤이었다.
잠이 들다 귀에서 섬뜩한 소리들이 다가오는 느낌을 느껴 눈을 떴을 때, 바다전망이 보이는 집 창 밖으로 어두운 바닷속에서 검은 봉지 같은 형체들이 나를 향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에게 다가와 또다시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괴로운 소리들과 함께 서서히 목을 조아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버티고 숨을 쉬는지 보자는 듯이 숨은 멎어가는 거 같았고 나는 이겨낼 몸의 기운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수 없는 상황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입을 열어 말하고 싶어도 손을 올려 숨 막힘을 풀고 싶어도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었다.
깊은 서러운 감정은 움직일 수 없는 몸과 달리 눈물로 차올라 나오고 있었다..
"누가 나 좀 도와줘요... 살려줘요.. 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라는 소리가 겨우 올라왔다.
"감사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 도저히... 감사할 수 없어요..
나어떻게 해요..?... 나 좀.... 누가... 도와줘요...."
라는 서글픔들이 아무도 없는 어둠에서 어둠을 쳐내고 있었다. 듣는 이가 없는 서글픈 메아리들이 허공에 떠돌며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어두운 형체들은 몹시도 괴로워함과 동시에 소스라치듯 놀라며 혼비백산하듯 까무러치는 소리를 내고 급하게 멀리 사라져 갔다.
(마치 영화에서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보이면 힘을 못쓰고 깜짝 놀라며 도망가는 장면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
그리고 몸이 편해졌다. (그전에도 이런 일을 가끔 겪어 괴로웠는데 이날 이후로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정말 이 또한 감사)
나는 내가 한 말에 놀라던 그들의 형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내가 죄인임을 알고 십자가의사랑을 감사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처럼 나는 죄인이었다.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 두려움과 불안과 고통에 매일 얽매여 지내야 하는 연약한 자였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던 괴로운 어둠에서 결박을 풀어내는 빛이었다.
메아리처럼 허공에 겨우 내뱉던 나의 신음 어린 소리에 대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똑바로 감사를 해야지라는 말에 억울하고 속상했던 마음을 다독이는 진짜 감사를 알게 되었다.아프지 않고 건강한 아이를 낳아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돈이 많고 넉넉함에 내가 불편하지 않아야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편하고 걱정 없는 하루가 모든 감사의 충족조건들이 아니었다.
그저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이 진정한 감사의 조건이었음을 나는 그날 밤 알게 되었다.
나를 값없이 대가 없이 사랑하심에 버텨낼 수 없는 괴로운 상황에서 이겨 낼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 경험이 죽지 못해 버티고 있던 나의 마음을 바뀌게 하였다. 나는 혼자 버려진 존재가 아니구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구나라는 힘이 내 안에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편안해진 나의 영과 몸에 나는 감사하며 그날 일을 기억하려고 했다.시간이 흘러 나의 삶의 걱정이 예전보다 작아지고 남들과 비슷하게 평온한 하루가 나에게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환경이 편해질수록 내 마음에 진정한 감사는 멀어진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사십(40) 춘기처럼 많은 생각과 고민이 나를 또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고 정체 없는 눈물이 내 볼을 적시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들어온 나를 깨닫게 하는 한 마음은
나는 자격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찬양 같아 찾아보고 듣다 보니 다시 그때의 진정함 감사가 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닌 예수십자가의 보혈로~완전하신 사랑 ~완전하신 은혜 믿으며~ 나아갑니다.
라는 찬양이 내 마음에 적셔왔다. 그날의 기억을 다시 기억하며 나는 다시 필요 없는 두려움과 고통을 털어내야 함을 상기했다.
또한 버텨내기 힘들었던 삶에서 고통받던 내 자아가 진정한 해방감을 갖게 한 감사의 힘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다시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적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