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이의 발달센터 치료비는 외벌이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이의 특수적인 상황에 맞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면 장애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대학병원에서 인지검사를 하게 되었고 IQ가 48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지적장애 중증이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사진이 함께 박혀 장애인증명카드를 발급받게 되었다. 장애판정을 받으면 전기세 가스요금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 등의 할인 혜택을 받게 된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이고 이런 혜택을 안 받는 가정들이 더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
남편과 나는 생각해 본 적도 계획해 본 적도 없었던 장애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내 아이가 점점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리다고는 생각했지만 중증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자 이제는 확실하게 아이의 아픔을 하나의 간판처럼 명칭 지어준 거 같았다. 특별하면서 특수한 아이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른 아이만의 세상... 한 동안 그 명칭을 나의 것으로 우리 가정의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마음을 그만큼 넓히느라 나름의 애씀이 있었다.
그렇게 느리지만 나름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다. 마음의 긴장이 풀렸는지 어떤 음식을 아이에게 잘 못 먹이게 되었고 아이의 약한 소화기관이 막혀버렸다. 막혀버린 소화기능으로 인해 아이의 머리에 이상 뇌파인 전기가 흐르며 번개가 내리꽂듯이 아이의 온몸을 괴롭혔다. 아이는 팔과 다리가 뒤틀어지고 마비가 오는 증상에 초점이 흐트러진 눈으로 누워 침만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픈 모습을 보고 몸에 깊은 병이 박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병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뜻이 지금 아이의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안고 미음이라도 한 수저 먹이려고 하는데 흘러내리는 침을 따라 먹여준 미음이 다 쏟아져 내려버렸다. 아이의 옷은 침과 음식으로 다 젖어버렸다. 하루종일 아이에게 먹여보겠다고 애를 쓰다 방금 갈아입힌 옷이 다 젖은 것을 보고 괴로운 마음에 혀를 한번 차며 쯧! 소리를 냈다.
애써봐야 소용없음에 대한 나의 마음에서 나온 혀 끝의 한탄이었다.
쯧!
그리고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어쩌다 아프게 태어나서 병이든 장애가 될 몸으로 태어나서.. 너도 나도 힘든 걸까? 건강하게 태어나지 왜 아프고 그래. 아무리 어떻게 해봐도 낫지도 못하고 이리 아프면 어쩌자는 거야. 나 너무 힘들어... 하루종일 널 안고 이렇게 먹여보려고 하지만 삼키지 못하는 너를 보면 나도 괴로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고 해 보지만 달라지는 게 없어서 괴로워...
아이는 나의 쯧! 소리에 담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인지
쯧! 소리와 함께 울기 시작했다.
섭섭하고 속상함이 담긴 울음이었다.
나는 단지 쯧! 만 소리 냈을 뿐인데... 아이는 내 표정을 보고 내 마음을 다 읽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마음이 조금은 들킨 거 같았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2달 가까이 아픈 아이는 잘 먹지도 잘 배출하지도 못하고 말라갔다. 그런 아이에게 햇볕이라도 보여주면 나아질까 싶어 아이를 안고 집 앞에 나와 햇빛을 보고 앉아 있었다.
2달 가까이 차도가 없이 병은 더 깊어갔다. 아이의 몸은 더 메말라갔고 검어진 안색으로 눈 동공이 흰자보다 더 위로 솟구친 채 입에서 침만 흘리고 있어야 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몸으로 누워 팔과 다리는 밖으로 뒤틀려 딱딱해져 버렸다. 병이 들어버린 몸 어떤 치료로도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 아이의 팔과 다리 몸을 매만지며 나는 딱딱해진 것이 풀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서 한참을 그러다 나는 내 안에 내 삶에 막힌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찾고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안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는 말하지 못하는 아이와 나눌 대화가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