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체험하는 유럽의 사순절
기독교를 종교로 갖는 사람들에게 사순절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문득 궁금해졌다.
독일에서 체감되는 사순절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종교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내가 사순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순절보다는 부활절이 훨씬 낯익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성당에 가서 미사 후에 알록달록 달걀을 받아오던 기억과 달걀에 그림을 그리던 기억. 그리고 꽤 오랜 시간 성당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의미도 모른 체 그저 달걀 받는 날 정도로만 기억이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성당 벽면에 걸려있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기도했던 것도 기억해 냈다.
한국인인 나에게 사순절은 그저 성당에서 치러지는 봄날의 어떤 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럽의 사순절은 스치듯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즈음 독일에 도착하여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은 이 기간 동안 사순절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겨울나는 내내 보았던 토끼들. 실물토끼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 마을 곳곳.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디든 사순절이 있었다. 마트에 파는 토끼 초콜릿부터, 토끼 빵, 계란모양 하리보, 정원의 나무마다 걸린 색색의 달걀들, 토끼 오브제, 토끼와 달걀 쿠키 틀, 토끼 문양을 찍은 티셔츠까지. 정말 대단했다.
사순절 문화가 대체적으로 모두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중 사순절을 상징하는 토끼와 달걀이 매우 흥미롭다. 토끼는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유럽의 고대 봄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세 독일에서 ‘부활절 토끼가 달걀을 숨긴다’는 이야기가 생겨났고, 이후 부활절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졌다. 달걀은 사순절 금지되는 음식이기 때문에 부활절에 삶아 먹거나 장식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아울러 달걀은 새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색과 무늬로 꾸며진다.
사순절은 한문으로 쓰면 四旬節, 영어로 Lent, 독어로 Fastenzeit.
사순절은 부활절(Easter) 전 40일간의 기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시험을 이겨낸 것을 기억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되어 부활절 전 토요일까지 이어지며, 전통적으로 고기, 유제품, 알코올, 단 음식 등을 절제하는 시기이다.
사순절은 단순한 금식이 아닌, 자기 성찰, 기도, 자선을 통해 내면을 정화하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사순절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기독교 절기로서 전통적으로 고기, 유제품, 알코올, 단 음식 등을 절제하는 시기이다.
사순절 기간에는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며, 대신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을 먹는 전통이 있지만 사순절 전날(참회의 화요일, Fat Tuesday 또는 Mardi Gras)에는 다양한 고열량 음식을 즐기는 문화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순절 기간에 먹는 음식은 각 지역마다 독특한 음식 문화가 발달해왔다고 한다.
특히 독일에서 본 '사순절 빵(Fastenbrot)'이 흥미로웠다.
독일에서는 ‘Fastenbrot’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사순절 빵'이라는 라벨을 붙여 판매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호밀과 통밀을 혼합한 묵직한 식감이며, 설탕이나 버터 없이 만들 진다.
빵의 무게도 묵직하고 맛도 묵직한데. 이것은 아마도 통밀과 호밀가루에 발효종을 이용해서 발효시키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굽기 때문인 것 같고, 사순절 빵이라 특별히 묵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독일 빵들이 묵직한 편이긴 하다.
그렇게 때문에 실제로 빵의 노화가 빠르다. 하루만 지나도 빵칼로 자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빵칼대신 중식도의 널찍한 날을 이용하여 자르고는 한다. 잘라서 구우면 또 바로 말랑해진다.
아침식사로 밥 대신 빵과 땅콩잼(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을 발라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사순절 빵으로 알려진 또 다른 빵은 라운겐브레첼(Laugenbrezel)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라우겐브레첼(Laugenbrezel)은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이 사순절 동안 먹었던 빵으로,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기도하는 손 모양을 형상화한 모양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사실 브레첼은 독일의 상징과도 같은 빵이기 때문에 다음 편에서 따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사순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할수록 어릴 때 하다 만 성경공부를 좀 더 열심히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기독교의 흥망성쇠가 곧 유럽의 흥망성쇠이니, 기독교와 유럽문화를 떼어놓고 유럽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을 포함한 독일의 명절은 종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많다.
새해, 노동절, 통일기념일(10월 3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독교 축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 느낀 사순절은 종교적 의미와 일상 속 음식 문화가 어우러진, 유럽 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절기인 것이다.
사순절 연휴 동안 상업시설 같은 마트며, 상점 등이 문을 다는 곳이 많아서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사순절의 의미를 생각해 보며 차분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