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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옆동네 네덜란드의 빵

빵은 잠시 물리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다.

by 연우

헤이그라고 불리는 Den Haag(네덜란드 어)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그리 가깝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약 458km 정도의 장거리 운전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는 약 9,000km 떨어진 네덜란드에서도 서쪽으로 더 끝에 위치한 도시인 헤이그. 구글 지도를 열고 한국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중국, 러시아, 유럽 대륙을 지나 서쪽 해안에 자리한 곳이 네덜란드 헤이그이다.

헤이그에 다녀온 후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인 듯. 자꾸만 지도를 보게 된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저 먹먹할 뿐이다.


뚜렷한 계획 없이 네덜란드로 향했다. 학창 시절 잠시 들러 반나절 둘러본 그날의 네덜란드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풍차와 에담, 고다치즈의 나라로만 기억하는 것 같아 십 수년 전의 기억은 없는 셈 치고 이제는 조금은 더 넓어진 눈으로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준열사 기념관-네덜란드 헤이그

하지만 꼼꼼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탓에 뒤죽박죽 일정이 짜였다. 빈센트 반고흐 미술관을 보고 싶었으나 예약을 미루다 결국 네덜란드 도착한 날에야 취소표를 기다려 예약을 해야 했고. 호텔 역시도 미술관 예약과 매한가지였다.

그러다 헤이그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헤이그 특사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무지한 나는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돌아오지 못할 그 먼 길을 떠나왔던 분들에 대한 역사를 어렴풋이 알 뿐이었다.

그래서 가봐야 했다. 일요일은 휴무일이었지만 문 닫힌 그곳이라도 가보고 싶었다.


고종의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 3명이 머물렀던 호텔이 재개발한다는 소식에, 대기업 주재원이었던 현재 박물관 원장님 부부가 매입하여 기념관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 또한 대단한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사로 임명받은 세 명은 모두 어디 하나 빠지는 않는 훌륭한 인물들로 구성된 완벽한 한 팀이었다. 고종의 마지막 염원을 담은 희망의 불씨였던 세 사람.

한반도에서 러시아를 거쳐 네덜란드까지. 비행기를 타고도 14시간이 걸리는 그 길을. 어떤 결의를 다지고 떠났을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1907년 일본의 불법적 만행을 알려야만 했다. 이준 열사는 당시 49세로 법관이었고, 강골검사였다. 이상설은 경제학, 근대수학을 정리한 책을 썼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러시아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프랑스 등에서 유학하고 7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알려진 이위종까지.

하지만 우리 모두 다 알듯. 결국 만국공동회의장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다. 이준 열사는 지금의 기념관인 호텔에서 도착 20일 만에 순국하신다. 사망원인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Den Haag Hs 기차역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다. 막상 도착한 곳은 차가 두 대정도 지나갈 수 있는 유럽의 평범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지라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잠시 서서 사진만 찍고 주변을 빙빙 돌며 둘러보았을 뿐인 이곳에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는. 다소 초라한 주변모습이 마치 그들의 외롭고 원통했을 심정과 닮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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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열사 기념관 근처에 자리한 베이커리카페(왼쪽)에서 구입한 빵(오른쪽)

비도 오고 마음도 무거웠지만 그래도 좀 더 머물고 싶었다.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 문을 연 카페가 없는듯했다. 그래도 또 원하니 찾아졌다. 기념관 근처에 자리한 카페이다.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하고 고소한 빵 냄새가 훅하고 몸을 데워주었다. 빵을 굽는 중인듯했고. 갓 나온 빵의 냄새 샤워로 잠시나마 무거운 마음이 밝아졌다.

협소한 공간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서 앉을 여유는 없어 보였다. 빠르게 내부를 둘러본 후 고를 정도로 종류가 많지 않은 빵 중에 바로 보이는 빵을 사서 나오며 비에 젖을세라 빵 봉투를 꼭 품고 비속을 달려 차에 탔다. 역시나 갓 구운 빵은 고소했다. 밀과 호밀이 혼합된 빵이었다.

호텔의 조식도 그랬지만 식빵과 하드계열 빵의 중간정도의 질감이기 때문에 샌드를 해서 먹어도 입천장이 까지는 정도는 아니다. 빵 겉에는 미세한 곡물들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빵이라 좀 다른 줄 알았으나 일반 마트의 빵이나 거리의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이나 전반적으로 크기가 큰 편이다.

보통 높이의 식빵보다 좀 높고. 길이는 약 50cm 정도의 사이즈. 너무 커서 망설이다 못 사 온 것이 또 아쉬웠다는.

내가 경험한 네덜란드의 빵 특징은 독일 빵보다는 말랑한 편이다. 겉은 좀 단단해 보이지만 독일빵에 비하면 좀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냥 손으로 뜯어먹어도 무리가 없다.


먹으면서 또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물론 지금과 다른 먹거리였을 수 있다. 순전히 상상의 영역으로.

고종의 특사들이 그나마 딱딱한 빵을 씹지 않고 그래도 조금은 덜 이질적이었을 식감의 빵을 먹어서 다행이라고. 딱딱하고 차가운 현실과 같은 눈물 젖은 빵이 안되었으면 좋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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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호텔 조식으로 나온 빵(왼쪽)과 마트에서 판매중인 빵(오른쪽).


역사에서는 실패한 외교적 통한의 역사라고들 평가한다. 하지만 영혼을 갈아 이룬 이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자부한다. 말 설고 물선 타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돌아갈 수 있는 국가가 든든하게 있어주길 바란다.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싸우면 내편이 되어주는 언니, 오빠와 누나, 형이 짠 하고 나타나 한편이 되어주는 것만큼 큰 빽이 어디 있을까? 국가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 내편이 아주 힘이 세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요즘 한국이 힘이 센 것 같아 좀 다행이다. 약 120년 전 헤이그 특사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에게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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