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HR als nur Brot 단지 빵 그 이상을 맛보다.
독일어에서 'MEHR'는 영어의 'more'라는 의미이다. 빵을 사러 들어간 빵집 진열대에 커다랗게 쓰인 MEHR라는 글씨가 제일 먼저 보였다. 빵의 사이즈가 유독 큰 것으로 보니 좀 더 큰 빵을 강조하고 싶었나? 잠시 생각 끝에 반 덩어리를 주문했다. 그때는 몰랐다. 한 덩이를 다 사야 했다. 보란 듯 기대보다 그 이상을 보여준 빵이었다.
독일의 지역명중에 'Bad'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이 꽤 많이 보인다. 첫 글자가 대문자로 쓰이면 '나쁜'이라는 뜻이 아니다. 'Bad'는 '목욕' 또는 '온천'을 뜻한다. 이런 도시 대부분은 온천 휴양지이다. 한국에서는 온천이라고 하면 따뜻한 물에 몸 푹 담가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특정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어 피부병이나 신경통, 부인병 등에 효과도 있지만 때도 밀고 오는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 당연하게도 주로 몸 전체나 발을 물에 담그는 용도인 온천. 하지만 독일의 온천은 한국과는 좀 다른 치유와 힐링의 느낌이 강하다. 그런 지역 중 한 곳인 Bad Orb 바트 오르프는 몸을 담가 힐링하는 온천과는 좀 다르게 과거 소금을 생산했던 염천이 수원이다. 와~ 염천이라니! 좀 신기한데? 사실 온천보다는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 꽤 궁금해서 찾아간 마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동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침 방문했던 날은 부슬비가 내려 비냄새, 숲냄새, 흙냄새가 이미 힐링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 구름이 걸려 운치 있고 신비롭기까지 했던 멋진 곳이었다.
큰 기대 없이 마주한 이 마을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버스 정류장 앞의 작은 광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며 산에 둘러싸인 마을의 고즈넉함에 어울리는 풍성하게 나란 나무들. 그런 멋짐이 폭발하는 나물들이 모인 그 숲길을 맨발로 걸으며 쉼을 실천할 수도 있고,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치유를 할 수 있는 시설 등이 있는 곳이다. Bad Orb의 압권은 소금채취를 하면서 부가적으로 얻는 소금 공기를 이용한 호흡 치료 시설이다.
한국사람인 나는, 소금이란 바닷물을 모아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 천일염이 너무나 익숙한 소금이며 한국 신안 등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이 세계 최대라 자부한다.
그런데 바닷물이 아니라 염천을 이용한 소금채취? 흥미롭다 못해 상상이 가지 않으니 직접 볼 수밖에 없었다. 수 미터 높이의 나무 구조물인 소금 증발탑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러 나선 곳에서 선대의 지혜로움을 접하게 되었다. 너네 나라 우리나라를 막론하고 참 지혜롭다는 생각.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무 구조물에 검은 가시나무가지를 촘촘히 쌓아서 염수를 위에서 흘려 내려보내면서 바람과 태양에 의해 물을 증발시켜 소금 결정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때 발생되는 소금기 섞인 공기가 호흡기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요즘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방문한 날도 단체여행객이며 많은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한 달 살기 하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쨍한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흐린 날, 안개 낀 날, 추운 날 등 모든 날들의 Bad Orb를.
워낙 임팩트 있었던 Bad Orb여서 인지.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빵들이 어쩜 소금 관련된 빵처럼 보여서 하나씩 종류별로 다 살뻔했다는. 맛있어도 보였다. 그냥 그래 보였다.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선 탓에 느리게 관찰하고 느리게 주문하는 나 같은 손님은 점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에 그냥 딱 하나만 빠르게 결정했다.
혹시나 소금과 관련된 마을이니까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금빵이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하다못해 소금 알갱이 몇 개 올린 빵이라도 있을법하건만, 내가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없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었다. 소금 관련 빵이 없었다는 것이. 하다못해 직접 채취한 소금이라도.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며 소금산지의 굿즈가 있어야 한다는 둥의 자본주의 사고에 입각한 잡담을 하며 내가 고른 검은 껍질 빵을 한 입 먹어보고는 소금빵 없어 투덜거렸던 입이 다물어졌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맛있어?
빵의 이름은 'MEHR'.
외관상으로 겉껍질이 강렬한 검은색을 띠기 때문에 두 번 구웠거나 또는 오랜 시간 구웠을 것으로 예상되어 무거운 빵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빵을 받아 든 순간. 엥? 뭐지? 뭐가 이렇게 가볍지?라는 생각이 첫인상이었다. 빵이 너무 가벼웠지만 맛에 있어서는 뭐 하나 빠지지 않는 꽉 찬 맛이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는 웃음이 났다. 큰 덩어리 하나 다 사 올 것을 무척 아쉬워며.
빵의 질감은 가벼웠으나 맛에 있어서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적당한 신맛(사워도우사용)과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메일러드 반응과 캐러멜 반응으로 인한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맛 좋았다. 89% 밀 Weizen, 10% 호밀 Roggen, 1% 스펠트밀 Dinkel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밀이 거의 90%에 가까웠으니 질감으로는 가벼웠겠지만 겉껍질의 색을 진하게 내서 맛이 조화로웠던 것 같다. 조상들의 지혜로운 소금 채취방식처럼 똘똘하게 만들어진 빵이었다.
빵 진열대 앞에 쓰인 "Mehr als nur Brot” (단지 빵 이상)라는 슬로건에 눈길이 머문다.
Bad Orb라는 동네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 이상".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