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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zen Rustikal Natur 투박한 밀 빵

기억 저편 뮌헨 마리엔광장에서 다시 만난 소박한 빵

by 연우

기억에는 희미하지만 그날의 느낌만으로 추억하고 있다고 할까? 어쩜 그렇게 기억에 없었을까?

10년 전 즈음 인생의 한 챕터를 닫고 또 다른 쳅터를 준비하는 시기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그로기 상태였던 우리 부부가 캐리어 하나씩, 배낭 하나 챙겨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온 유럽은 뭐 그리 춥던지. 비는 또 왜 그리 자주 오는지. 사진을 봐도 우중충 그 자체. 그 당시 나의 마음이 우중충해서였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유럽은 그저 추운 기억뿐인 것 같네. 하지만 유럽이 따뜻하기도 하다는 추억을 만들라는 기회가 생기다니. 이렇게 유럽에 살고 있으니 인생 참 알 수 없다.


막연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장면에서, 야외 장이 서는 곳에서 바로 끓여 따뜻했던 채소 수프와 작은 하드계열 빵을 먹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브로첸이었던 것 같다. 찬바람 불면 뜨끈한 국물이 땡기는 찐 한국인인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맛이었다.

따뜻하게 먹어서인지 주변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다음의 구체적인 기억은 전혀 없다. 너무도 희한하게. 그날 먹은 음식들과 그날의 날씨. 그리고 너무도 예쁜 것들을 파는 큰 상점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다. 돈이 넉넉지 않은 여행이기도 했지만 짐을 늘려 다니기가 버겁기도 했기에 그저 눈요기만 하던 젊었던 어느 날의 하루였다.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도 신기하게 유럽의 대표적인 성당이며 무슨무슨 광장은 기억에 없었지만 유독 한 곳만 가끔 생각이 나고는 했다. 너무 멋진 원예 용품과 필기구들과 주방도구 등을 팔았던 거기가 독일이었는지, 프랑스였는지, 체코였는지 남편과 서로 기억을 맞춰보며 사진을 다시 찾아보자는 말만 하고는 또 잊고 지나온 날들이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운명같이 독일 살이를 하면 한 번은 방문한다는 세계 3대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보러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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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뮌헨을 대표하는 6대 맥주 양조장 중 하나인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의 옥토버페스트 모습. (우)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판매하는 브레츨

독일 맥주에 홀릭 중인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뮌헨을 포함한 바이에른 주는 맥주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너무 잘 알려진 유명 맥주들이 죄다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시는 빵인 맥주의 도시인만큼 빵에 대한 기대도 잔뜩 했지만 막상 빵보다는 유명한 맥주 양조장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만났다. 기억 속의 그곳. 심장 떨릴 때 만난 그곳을 이제는 다리가 떨리는 나이에.

뮌헨의 마리엔광장에 위치한 'MANUFACTUM' 입구 오른쪽에 베이커리가 있다.

바로 뮌헨의 마리엔광장에 위치한 'MANUFACTUM'이라는 숍이었다.

10년 전과는 다르게 주변이 공사 중이라 기억과는 많이 다르게 보였지만. 그곳이었다. 너무 신나고 반가웠다. 아직도 건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예쁜 것들이 예쁜 쓰레기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 찾게 되어 좀 서글펐지만. 눈요기는 실컷 할 수 있어 좋았다. 사실 아기자기 알록달록한 물건들보다 숍 입구에 자리한 숍인숍 베이커리 카페의 빵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좀 늦은 시간이라 빵이 많이 없기도 했어서 가장 심플하고 가벼워 보이는 밀 빵을 샀다.

사고 보니 이름 참... Weizen Rustikal Natur. 투박한 자연스러운 밀빵이라니. 참고로 Rustikal은 소박한', '시골풍의', '투박한'이라는 뜻이다.

가장 번화하고 북적이는 화려한 중심에서 만난 투박한 빵이라니.

그러나 가장 소박한 것이 맛 내기가 까다롭다. 심플한 재료로 재료 그대로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내공이 있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음식은 볶음밥으로, 이탈리아 피자는 마르게리타로 그 식당의 내공을 가늠하는데, 빵 역시 가장 기본 빵을 먹어보면 딱 답이 나온다.


옥토버페스트에서 뮌헨을 상징하는 얼굴만 한 브레츨과 맥주를 잔뜩 먹은 터라 빵을 사기는 했지만 바로 먹어보지는 못했다. 그 다음날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에 가볍게 뜯어먹기 시작한 빵이. 어쩜 그리도 맛나던지. 과하지 않은 신맛과 푸석하지 않은 탄력과 적당한 소금 간. 겉으로 봤을 때는 그냥 툭툭 잘라 둘둘 말아 성형해서 구워졌을 것 같은 제빵사의 날렵하고 절제된 동작이 느껴지는 그런 빵이었다고나 할까?

뮌헨의 마리엔광장에 위치한 'MANUFACTUM'에서 구입한 빵덩이.

호밀 같은 다른 곡물이 섞이지 않은 밀만으로 만들어진 빵이고. 겉은 거칠고 단단해서인지 빵 속살의 수분이 잘 유지되고 있다.

예전에 왔을 때도 먹어봤을까? 아무리 쥐어짜 내 기억을 소환해도 단연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뮌헨에 대한 나의 기억에 하나를 추가해 본다. 화려한 중심에서 만났던 가장 소박한 빵으로.


뮌헨에서 사 온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사진에는 꿀만 보이지만 실제로 땅콩잼을 발라 먹었다.

다른 종류도 좀 사 왔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과는 다르게 도로에 트래픽이 거의 없다. 몇 백 킬로 미터를 일정한 속도로 운전하다 보면 사실 가끔 졸리기도 하다. 그런데 투박한 빵을 꼭꼭 씹어 먹으니 졸음도 물리쳐졌다. 빵을 먹으며 뮌헨을 추억했다.

독일살이를 통해 유럽의 우중충했던 기억을 찾아 화사하고 좋은 기억을 더해 다채롭게 추억하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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