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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enberg Kruste 구텐베르크 빵껍질

독일 마인츠에서 만난 구텐베르크 빵

by 연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기억이다. 12월에 입성한 독일은 한국처럼 영하 몇십 도도 아닌 날씨인데 희한하게 뼛속까지 추운 겨울이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좀 외출을 하려면 시간표 데로 오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발이 시리고. 손이 시린 겨울날들. 가만히 서있기가 추워서 차라리 몇 킬로미터를 걸어 다닌 날들. 아무래도 자가용이 있어야 했다. 새 차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부가세가 19%)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중고차를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우리 역시 중고차를 구매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던 어느 겨울날 찾았던 마인츠.

중앙역에 내려 찬 바람맞으며 다리를 건너고 강을 따라 걸어 버스를 타고 내려 걷고 또 걷고.


구텐베르크 박물관

강바람이 매서웠던 마인츠에서 그 와중에도 이국적인 건축물들을 힐끔 거리느라 바빴던 오감들. 그러다 발견한 구텐베르크 박물관.

아. 역사책에서 보던 그 구텐베르크 아닌가?

한국에서 팔만대장경도 보지 못한 나이지만.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언제 또 와 보겠나 싶었던 곳.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기억너머의 그날이 선선한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 초입에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갔다. 구텐베르크 보러.


유럽에는 그렇게 누구누구의 집이 많기도 하다. 예를 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하우스,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 등등. 대게는 딱히 일부러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선뜻 방문의 의지를 다졌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물꼬를 튼 인물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그 혜택을 받고 있는 자손 중 한 명 일수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는 이동가능한 활자 인쇄술 (moveable type printing press)을 개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구텐베르크 박물관

이 발명은 인쇄술의 혁명을 가져왔고, 이후 유럽에서 책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의 산물인 책을 다수 대중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보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역사의 한 장면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기대한 것보다는 소소했지만(정작 구텐베르크에 대한 자료 등은 지극히 적은 편이다), 세계 최초의 인쇄술로 작성된 팔만대장경을 꼭 보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던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영 헛걸음은 아닌 셈이 되었다.


뚜벅이로 방문했던 추운 겨울과 달리 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주차장을 찾아가던 중에 복잡한 번화가인 대성당을 지나게 되었다. 유럽의 어느 도시든지 그렇지만 대성당 주변은 늘 북적이는 번화가이다.

참새방앗간 가듯 가로수에 가려 간판이 보일락 말락 하는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또 만난 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 빵이라니. 마인츠는 구텐베르크의 도시가 맞는구나 했던 순간이었다.

'Gutenberg Kruste'. 구텐베르크 빵껍질이라고 해석이 되는 빵 한 덩어리를 샀다.


Gutenberg kruste는 Dinkelmehl(딩켈밀)과 Roggenmehl(호밀)이 반반씩 혼합된 빵이다.

빵을 담아준 봉투에도 구텐베르크의 모습이... 또한 빵 이름이 씌여있다.

Werner’s 빵집 자체 사워도우를 사용했다고 하고, 16시간 반죽 휴지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빵 이름처럼 고소한 크러스트와 촉촉한 속살의 조합이 끝내준다.

16시간 발효라니. 긴 시간을 들여 발효하는 정성이 스며든 맛이다. 16시간 정도면 저온에서 하는 발효일테고.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 발효가 진행되어 구워진 빵은. 확실히 빵 껍질이 바삭하고 매우 고소하다. 자칫 온도관리를 잘 못하면 신맛이 강한데 이 빵은 신맛도 진하지 않다. 묵직함과 가벼움의 중간정도의 텍스쳐를 갖는다.

빵의 포장부터 맛에 이르기까지 구텐베르크의 발명가다운 장인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빵이었다.


한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지역 맛집이나 굿즈 같은 것들을 사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순한 빵에 지역의 특색 있는 이름을 넣어 파는 것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더 어려운 빵의 이름들이 많으니. 아마 이렇게 그냥 밋밋하게 이름만 붙였다면 한국에서는 그다지 반응이 없었겠다. 혹시 나도 독일이니까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을까?

도시의 자부심일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붙인 빵이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는 이들의 무한한 자부심으로 느껴졌다.


빵을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텐베르크는 개인이 이뤄낸 업적인 반면 대한민국의 팔만대장경은 국가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너무 큰 차이인 것 같다. 바로 이점이 위기에 단합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아닐까? 대한민국 떠나 살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타향살이에 지칠 때 돌아갈 국가가 있다는 것. 그러한 국가가 건재하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는 것. 물설고 말설은 곳에서 겪는 사소한 감정들이 훨씬 더 크고 깊은 여운으로 남는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쫀득쫀득한 떡이 생각난다. 합천 해인사 근처에도 팔만대장경 이름 붙은 떡이 있으면 좋겠다. 그냥 빵보다는 떡이 높은 확률로 존재할 것 만 같아서 떡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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