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운돼지마지팬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라고 시작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가득했던 무대가 끝나고 난 후 무대의 정적과 고독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래여서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쯤 자주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특히나 독일에서 살면서 번쩍번쩍하던 크리스마스 마켓들이 마법처럼 사라진 광장을 보고 있자니 더욱 노래 가사가 와닿는 것 같아요. 찬공기만 가득 찬 적막한 공기가 꽉 찬 그런 광장을 보면서 지난 한 해를 잠시나마 뒤돌아 봅니다.
올해도 역시 다사다난했던 날들이었어요.
매년 더해지는 나이가 늘 새롭습니다. 서른 살, 마흔 살이 처음이었듯 오십 살도 역시 처음 살아보는 중이라 좌충우돌 중입니다. 언제쯤이면 처음이지만 노련하고 여유롭고 지혜롭게 살아질까요? 이런 고민과 바람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좀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은 인종과 국가를 막론하고 다 같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새해를 맞이하는 각종 의식들을 하나 봅니다. 독일 전국 곳곳에서는 폭죽을 터뜨리면서 나쁜 기운을 날려 보낼 테고요(밤마다 들려오는 폭죽 소리에 깜놀). 우리는 전통적으로 마지막날 골동반을 해서 먹었다지요. 묵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해요. 새해에는 하얗고 동그란 떡국떡으로 한 해를 기원했고요.
독일에서도 복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달달하고 귀여운 것이 있습니다. 쿠키라고도 빵이라고도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어요.
해가 빨리지고 늦게 뜨는 겨울철 운동에 유용할 용품을 사러 시내에 나갔습니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기에 조용하고 썰렁해진 광장을 가로질러 발걸음이 빨라졌지요. 패딩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부지런히 뛰듯이 걷던 중 스치듯 돼지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 뭐지? 귀엽다고 해야 할지 리얼하다고 해야 할지요?
이맘때 독일을 포함한 유럽 곳곳에서는 마지팬으로 만든 돼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였으면 내년이 돼지띠 해인가?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당연 유럽에서 '십이지'를 챙길 리 만무한 것을 순간 엉뚱한 생각을 했지 뭡니까.
아무튼. 카페 디저트 자리에 떡하니 자리한 돼지의 정체는 'Glücksschweinchen 행운돼지'입니다.
행운돼지는 마지팬 반죽으로 만들어집니다.
마지팬(Marzipan)은 아몬드 가루, 설탕 또는 슈가파우더, 달걀흰자로만 만드는 말랑말랑한 반죽입니다. 과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요. 더더군다나 빵은 아닙니다.
마지팬은 설탕 함량을 좀 높여서 작품처럼 만드는 케이크로 만들기도 하고요, 반대로 설탕 함량을 줄여서 슈톨렌에 넣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지팬만으로 만든 무엇인가를 단독으로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선뜻 행운돼지를 보면서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빵이 눈에 뜨였으면 바로 먹어봤을 것 같아요.
행운돼지는 말 그대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연말과 새해를 즈음해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선물을 한다고 하네요.
돼지는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의 식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가축이어요. 단백질과 지방 공급에 중요했을 것이고요.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이 되는 부의 상징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새로 맞이할 365일에 대한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의 행운돼지.
카페와 베이커리에서도 마지팬 행운돼지를 볼 수 있지만요. dm 같은 생활용품 판매하는 곳에서도 돼지 인형 같은 소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빨간색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이 책상 구석에 놓였던 이후로 처음으로 분홍색 돼지를 하나 들이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새해에는 예쁜 쓰레기는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요. 이렇게 시작과 동시에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겠어요.
'페파 피그(Peppa Pig)'는 좀 어떨까요? 예전에 영어 공부 좀 해 보겠다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적이다 보게 되었던 페파 피크. 청개구리도 아니고 독일 살지만 독일어보다는 영어를 더 잘하고 싶어 졌습니다. 거참... 그래서 일단 뭐가 되었건 다시 공부를 또 시작합니다.
다가 올 364일은 지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로 무장하고요.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잘 살아 낸 후, 365일째 마지막날 무대의 불을 잠시 끄고 '멋진 날 들이었다'라고 자축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작가님들 모두의 안녕과 행운은 많은 날들이, 불행은 조금인 날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