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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27. 2022

[고.그.담5] 간섭하지 말아주세요

초보상담자의 고민 외. <가만히 들어주었어>

고그담(고민을 그림책에 담다) 다섯 번째 사연은 어느 초보상담자의 고민과 알아서 다한다며 말하는 아들의 엄마 고민 입니다.  


Q-1. 초보상담자입니다. 

내담자가 고민을 말하면 경청하면서 판단하지 말고 들어주라고 배웠는데 듣다 보면 자꾸 틀린 점이 들리는 거예요. 말을 듣다 말고 잘라요. 제 딴에는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을 말하고 있더라구요. 상담이 길지 않고 단발성을 끝나 고민입니다.      


Q-2. 제 아들은 엄마인 제가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 해요. 말도 꺼내기 전에 단도리 하듯 엄마 말을 확 잘라버려요.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앤데 자기가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아들은 자신이 엄마보다 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제게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주면 제 아들 고생 덜어주고 좋잖아요. 제가 너무 과하게 참견하는 건가요? 말 자르는 아들이 걱정이에요.      

     

A-1. 고민이라고 찾아오는 사람, 즉 내담자에게 공감 100. 들어주기만 100%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대학원에서 배운 거 그대로 했다고 하는데도 결과는 모범 답안과 다르게 나오기도 합니다. 

상담 관련 공부를 할 때 무조건 인간중심 이론부터 배우면서 경청과 공감과 수용으로 내담자를 이해하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 되지 않았어요. 저도 상담 초기에 교수님한테 슈퍼비젼 받은 대로 해도 안 되고, 책이나 지인들한데 들은 대로 하려고 해도 안 되었어요. 이런 신경을 너무 써서 그런지 어느 날은 귀도 눈도 가렵고 뭘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 불안한 적이 많았어요. 내담자를 오히려 상담하다가 망치는 것 같아 걱정되었답니다. 특히 초보 상담 시절에 그런 경우가 더 많았는데요, 상대방의 고민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빨리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고, 그 방법이 옳은 것 같아 고집을 피운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상담 시간을 단축시키는 이로운 점이 많겠다 싶었거든요. 내담자의 말을 가로채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올라온 적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적도 많았아요. 아무 말 않고 듣기만 하는데 상담비를 받는 미안해서 뭐든 돕겠다는 생각으로 참견하는 저를 보았답니다. 완벽한 상담자를 꿈꾸는 저는 정말 상담을 잘하고 싶은 게 맞는지 상담 마칠 때 마다 회의와 반성의 연속이었습니다. 듣고 마음을 전달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까요?      


상담한다는 건, 내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기가 먼저입니다. 상담을 신청한 사람은 내 말을 전적으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에요. 고민있을 때 동네 아줌마들과 이야기하면 시원하긴 한데 찜찜해서 뒤돌아서서는 왠지 실타래가 더 엉켜서 복잡해진 때도 있습니다. 뒷 말도, 뒷 탈도 걱정되어 제대로 고민을 덜지도 못하고 곪아 터질 때가 있거든요. 우리는 어떤 특별한 조치를 하려고 하기보다, 말하지 못한 답답함을, 뒷말이 새 나갈까 걱정하는 그분들께 대나무 숲이 되어주면 됩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들어주고,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시적소에 해드리면 됩니다. 가령 심리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면 검사를 하면 되고, 약물 처방이 필요하다면 병원에 연계하면 됩니다. 잘하려는 완벽성의 욕구를 조금만 내려놓으면, 내담자도 상담자의 마음을 알고 편하게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가도 된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귀를 기울이는 현장에 계셔주시면 됩니다


A-2.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의 고민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고민을 들어보면, 대부분 자식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도 있어요.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학부모의 고민 중에 하나다 ‘아이가 제 멋대로다.’, ‘부모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등 비슷한 고민으로 저를 찾아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집니다. ‘이렇게 살아보니 힘들었기에’ 내 아이에게는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선배로 험한 세상 조금 더 편하게, 시행착오를 덜 하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자녀는 몰라줍니다. 자녀를 도와주려는 부모 마음은 일도 몰라주고 마치 자기가 다 알아서 잘 큰 것처럼 말을 할 때는 서운하기도 합니다. 답답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 조금 기다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또 자녀들 어릴 때 아이들 말을 내가 먼저 자른 적은 없었는지 점검도 필요합니다.     


읽어드리고 싶은 그림책은

코리 도어펠드 글, 그림 북뱅크 출판사의 <가만히 들어주었어>입니다.

테일러는 블록쌓기를 좋아하는 토끼입니다. 오늘도 블록쌓기를 합니다. 높게 잘 쌓아서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새들이 날아와서 쓰러지고 말았어요. 정말 속상해서 울고 있었어요. 제일 먼저 온 닭은 호들갑스럽게 뭣 때문에 우는지 말하라고 다그쳤어요. 말하지 않자 닭은 가버립니다. 다음에는 곰이 나타나 누가 망치게 했는지, 누가 테일러를 울렸는지 말하라며 거칠게 화를 냅니다. 테일러는 말하지 않았어요. 다음에는 코끼리가 와서 고쳐준다고 하고, 이어서 나타난 동물들은 웃어버리라고 하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깨끗하게 치워버리라고 하고, 하물며 뱀이 나타나서는 다른 친구들 것도 망가뜨리자고 꼬시기도 합니다. 테일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너무 슬펐고, 그냥 내 마음이 어떤지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었죠. 주변 누구도 테일러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합니다. 다 자기 방식으로 해결을 해주려고 하지요. 그런데 토끼가 조용히 다가 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꼼짝않고 말이지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거나 독촉하지 않습니다. “테일러가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까지”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는 토끼입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어요. 이윽고 그간 닫혔던 테일러가 마음이 열리고 먼저 말을 합니다. “나랑 같이 있어줄래?”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줍니다. 소리지르거나 웃을 때도, 생각이 멈춰 있을 때도, 같은 시선으로, 같은 마음으로 놀아주고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테일러의 마음이 풀렸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해 냅니다. 테일러가 토끼에게 말합니다.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찾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은 부모일 때도 있고, 친구일 때도 있고, 직장동료, 또는 학교 선후배 등등 다양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대상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합니다. 고민의 내용과 정도에 따라 찾는 사람들이 다르다고 해요. 연애에 대한 고민일 때는 연애 코칭을 잘해줘서 고민을 그때그때 해결해 주거나, 학교나 회사에서 어려운 점이 있어서 고민이라고 이야기할 때 맞장구쳐주고 공감을 해주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도 합니다. 상황별로 고민의 내용에 따라 지인들을 찾게 되는데요, 어떤 해결도, 어떤 조언도 필요 없이 무조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만 달라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결해주지 않아도 돼. 그냥 들어만 달라고”

이런 말 듣거나 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조언도, 충고도, 평가도, 판단도, 해결도 아닌, 그냥 그때 그 사람의 마음 그대로 읽어주는 경청을 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래서 지금 내게 들어만 달라고 하는구나’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때의 마음을 읽어주면서 곁에 머물러주면 그 사람의 감정의 절반은 덜어줄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 감각 없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고민을 충분히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들어주세요. 처음에는 어렵지만, 차츰 본인의 불안과 상대방의 거절 이유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테일러 곁에 있던 토끼처럼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 주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고 시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여러분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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