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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Mar 27. 2022

[고.그.담6] 제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두려운 미래, 평범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 <빨간 나무>


고그담(고민을 그림책에 담다) 여섯 번째 사연은 어느 청년 가장의 고민 입니다.     

    

Q.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살던 집을 팔고 산동네로 이사하면서 저희 집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뭐랄까요? 각개전투의 모습으로, 거의 남남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술을 잘 못 드시던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시러 나갔다가 밤늦게 술이 떡이 되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들어옵니다. 두 아들의 간식과 영양식을 챙겨주시며 가족밖에 모르는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그 일 이후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일했는데 아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서 가사도우미로 바꾸어 일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한 군데, 지금은 하루 두 집을 가사도우미를 하시는데 집에 오면 파김치로 쓰러져 제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주무십니다. 가출을 일삼던 어느 여름날 남동생은 몸 여기저기 망신 창이가 되어 틀어와서 놀란 어머니는 쓰러지기까지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눈물로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 한 동생은 연락두절 입니다. 저는 너무 힘듭니다.


저요? 28세인 저는 전문대 사회복지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입니다. 내년이면 스물아홉 살이 됩니다. 고 1 때까지 공부를 곧잘 했던 제가 어디든 못 들어가겠냐 싶어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잘 되지 않더라구요, 재수하고, 바로 군대가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장남인 네가 제대로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 네가 잘되어야 동생도 잘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너무 미안하다, 등록금 걱정은 하지 말고 어디든 들어가라”고 울면서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자꾸 실망시켰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학비 번다는 명목으로 일만 하다가 결국은 대학을 포기하고 24살에 미루다 군대 갔습니다. 군대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선임은 저를 장난감 가지고 놀듯했습니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화내고 저를 던지고 굴리고 때리고, 전역한 뒤에도 선임은 갑자기 차비 없으니 돈 달라고 하고, 돈 없다고 안 주면 제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와서 깽판을 쳐서 짤리게도 하구요.      


바보 병신같은 제가, 27살인 제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집 가까이 있는 전문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마련해서 어렵게 학교를 다녔는데, 이번 방학기간에는 복기과 실습을 다녀야 해서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도 못했습니다. 실습하는 내내 용돈은 고사하고, 저의 등록금도 못 벌었는데, 또 이번에는 주말에 또 실습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실습 많이 나가면 경력으로 인정되어 더 좋은 곳으로 취업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요,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월급은 다 거기가 거기고, 복지관에 남자들이 없어서 오히려 일을 더 혹사 시키니 몸을 사리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자꾸 무릎과 허리가 아프다고 병원을 다니는데 병원비도 못 보태드리고 있거든요. 아버지는 이제 거의 알코올에 의존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욕만 잔뜩 하니까 어머니는 쉬고 싶어도 집에서 쉴 수 없으니 또 나와서 일하고…‥.동생은 이제 정신차렸으니 배워야 일도 한다고 학원비 구해오라고 난리입니다. 저희 집엔 돈이 정말 없어요. 어머니가 버시는 건 간신히 생활 유지 정도?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버는 건 등록금 내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 이런 건 참을 수 있습니다. 다 참아 냈어요. 다 옛 날일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더 힘든 건요, 저의 미래예요. 내년이면 29살인데, 4년제도 아닌 2년제 대학을 졸업해요. 제가 내년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정식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요? 취업이 될까요?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취업이 어렵다는데, 전문대 나온 제가 취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회복지학과 나오면 취업은 보장된다고, 남자들이 부족하니까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입학을 했는데요, 지금 보니까 사회복지사도 현장에 득실득실 해요. 그리고 일하는 것에 비하면 월급은 정말 너무 짜요. 아르바이트 두 개, 세 개 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월급은 적구요. 제가 내년에 취업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제가 좋은 곳에 취업을 할 수 있을까요? 술만 드시고 행패부리는 아버지를 고칠 수는 있을까요?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결혼은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는데…‥. 나아지진 않고 점점 더 힘들어요. 세상 모든 것이 절망스럽고 아무런 즐거움도 없어요. 뭘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허무하고 제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저는 너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미래가 두려워요. 저는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고, 나이만 들어가고 이젠 정말, 지치고 힘들어요. 제게도 희망은 있을까요?     

      

A. 늦은 나이에 군대 갔다 오고 학비까지 벌면서 대학 생활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정말, 대견하고 대단합니다. 어떻게든 어머니께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는 애씀과 장남으로서 가지는 부담감,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려는 모든 노력이 지금 많이 힘들지 아나 힘들겠어요. 힘들지 않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동안 아주 많이 애쓰셨어요. 더구나 지금 살고있는 삶 마져 내 편 같지 않고,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취업 준비생이 가지는 불안감은 당연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우리나라 청년실업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 되고, 청년 5명 중 1명이 실업자라고 할 정도로 취업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누구라도 미래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과거가 불행했기 때문에 미래 또한 그럴거라는 부정적 불안감으로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아직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읽어드리고 싶은 그림책은

숀 텐 글, 그림. 풀빛 출판사의 ⌜빨간 나무⌟입니다. 


 세상의 절망과 슬픔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녀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단어가 가득 적힌 종이배에 몸을 지탱하며 앉아 있는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침에 눈 뜨고 싶지 않을 만큼의 절망이 가득한 하루, 하루하루 지나면 나아질 듯하지만, 점점 더 악순환되는 하루의 일상들에서 소녀는 아주 큰 절망과 각박한 세상에 진저리를 칩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과 단절도 해보고, 스스로 자신을 가두며 눈물을 한없이 흘리기도 합니다.          


소녀의 희망은 있을까요? 가슴에 있는 뚜껑을 열면 희망은 아주 희미하게 빛이 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내 편이기보다 마음을 헤아려주지도 못하고, 아니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 기계와 같은 냉정한 현실에서 답답함과 슬픈 감정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슬퍼하는 것조차 지치고 힘듭니다.    


소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뭔가 조금은 달라질 거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화석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다림에는 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 실망합니다. 무모함까지 느낄 정도로 참담한 게 현실임을 느끼면서 또다시 절망과 실망을 합니다. 분명 흐른 시간 속에는 좋은 일들도 있었을 테지만 그것마저도 남의 일인 듯, 후회하는 일들 안에 아주 희미해지는 추억조차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라서 혼돈에 빠져 아무런 생각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고 기다림에 지쳐 쓰러져 버립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포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득, 아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 희망은, 내가 그렇게 바라던 희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집, 내 방에서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었거든요. 언제가 될지 몰라 포기하려는 절망감 앞에 희망의 싹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고, ‘이젠 모든 것을 내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실망감이 극에 달할 때 한 번 주변을 둘러보세요. 내 안의 빨간 나무가 어디에서 피어나는지, 어디에 숨어서 나를 지켜줄지 말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좋았던 경험이나 추억이 떠올려 볼까요? 내가 힘들 때 한 번이라도 내 말을 귀담아 주었던 사람, 내가 어려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주었던 사람, 베개를 파묻고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어깨에 손 얹어주며 위로를 해주었던 사람이 있었을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잠시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과 그런 상황이 없었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걱정인형 입니다. 혹시 ‘걱정 인형’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걱정 인형은 옛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중부 아메리카의 과테말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인형입니다. 자녀들의 걱정을 인형이 가져가기 때문에 즐겁게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인형입니다. ‘걱정 인형이 내 걱정을 대신해줄 것’이란 믿음은 의식적으로 걱정을 더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의학적으로도 유용한 ‘처방’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병원이나 아동상담센터 등에서 아이들의 수면 장애나 심리 치료의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거든요. 근원적인 일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걱정이 없어진다는 믿음이 진짜로 걱정을 없애는 주기도 한다는 거랍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루어 짐작하면서 미리 불안해하지 마세요. 과거가 나빴기에 현재, 미래에도 나쁠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를 준비해 보세요. 자신에게 더 적합한 일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그러면 조금씩 자신감도 찾을 수 있고 절망에서 희망도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빨간 나무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망나무가 바로 곁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아차리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혼자 다 감당하려하지 마세요. 가장 친하다고 느끼는 친구나 선후배도 괜찮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시고 도움을 요청해 보세요. 물질적 도움이 될 수도,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거, 그리고 이 세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두시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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