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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Oct 24. 2024

예술이 만들어지고 드러나기까지

파리에서 살고 있는 UI 디자이너 나연을 만나다. #2



보통 전시를 보고 그에 관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사적인 생각, 잡생각들이 계속 끼어들잖아요. 그런 사적인 생각과 전시를 보고 있는 그 순간이 섞여서 다른 생각으로 발전이 되기도 하고요.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게 있는지 궁금해요. 


디자이너로서의 생각과 저의 개인적인 생각,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색감에 대한 자격지심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그런 감정이 있거든요. 색감은 노력한다고 되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색을 잘 쓰는 작가들을 보게 되면 질투, 혹은 그를 넘어선 경외감이 들어요. 마티스는 참 색을 잘 쓰잖아요. 그래서 그런 색에 대한 감각을 안 놓치려고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왜 이 작가는 이 색깔을 썼고, 왜 이 색은 잘 어울리는지 등을 나가서 까먹지 않고 내 작업에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마티스 전시뿐만 아니라 모든 전시에서 색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켈리 전에서는 영역에 주목했어요. 라인, 색의 영역, 그림자의 영역과 같은 부분들. 그런 걸 잘 쓰는 방법을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웹디자인은 디지털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텍스쳐나 입체감을 넣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했죠.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저는 항상 그게 궁금해요. 이 사람은 이 작업을 어떻게 세상의 눈앞에 공개할 수 있었을까. 금수저였을지, 운이 좋았을지, 좋은 학교를 나와서 거기서 전시를 해서 눈에 띄었는지. 예술은 집에서 끄적끄적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세계의 눈으로 나와야 하잖아요. 항상 궁금한 게 '어떻게'예요.


어떻게. 이 사람이 그렇게까지 똑똑했나, 그렇게까지 작업이 엄청났나, 운이 좋았나, 아니면 유럽인이라서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그런 코스나 협회 같은 단계가 있나. 이런 궁금증들. 왜 이 사람의 작업들은 여기에 걸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런 게 궁금한 이유는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쌓고 싶기 때문인가요?


쌓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요.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랑 뭐가 다르길래 거장이 됐는지가 궁금한 거예요. 콘텍스트인지, 연도와 상황 때문인지. 솔직히 미술이라는 게 주관적이어서 좋다 좋다 그러면 좋아 보일 때도 있잖아요.


예전에 갤러리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갤러리에서 가격을 높게 정하면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 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게 좋은 경우도 있겠지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거고. 정말 팔고 싶어서 가격을 올리고 서너 명이 이 작업 좋다 하면, 당연히 반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게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 받는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궁금해요.      





본인의 명성이랑은 전혀 상관없더라도, 주변에 디자이너나 창작자들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인정을 받거나 혹은 받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영향이 있었을까요?     


엄청 있죠. 제가 프랑스에 유학 왔을 때 아는 창작하는 친구들, 지인들이 진짜 많았어요. 회화나 순수 미술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실제로 작가가 돼서 활동하는 게 진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는 어떤 일이 가능하게 되는 자세한 단계를 알지 못하면 불안한 성향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고등학교 나온 후에 나 그림 그릴래-해서 그렸어요. 잘했어, 근데 누가 그 잘함을 알아주겠어요. 갤러리 문 열고 들어가서 제 그림 써주세요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작업 창작과 비저빌리티,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과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 눈에 띄게 되는 것과의 간극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래서 '대체 이 사람은 다른 작업하는 사람들과 어디가 달라서 이렇게 보이게 되는 걸까?'가 늘 궁금해요. 예체능만큼 재능 타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재능만 있다고 되는 건 또 아니더라고요.      


맞아요. .      


운도 타고 집안도 타고 상황도 타고. 그래서 예술 자체만 보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속세적인가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체 이 사람은 뭐길래. 뭐가 달랐길래.


     



가볍게 물어보고 싶은데요,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급하게 얘기하면 등 따신 인간들이 할 일 없을 때 남은 에너지로 만드는 기적 같은 것. 더 정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가장 큰 차이. 예술만큼 쓸데없는 게 없는데, 인간만 그 가치를 느낄 수 있잖아요. 무가치에서 무한한 가치를 만드는 것.      


은근히 되게 냉철한 눈으로 보는 거네요.      


네, 이야기하다 보니까 우와-이런 따뜻하기만 한 시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는 고전 회화 같은 것도 예술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 기록이잖아요. 그 시대의 어떤 배경이 예술가가 이런 예술을 하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요.


되게 거시적이네요.      


저는 항상 거시적입니다. 거시적인 사람이에요. 전시를 보고 난 후에도 작가의 전기를 찾아봐요. 작가의 가족 관계나, 누구랑 결혼했나, 혹은 어떤 병으로 인해서 화풍이 바뀌었다든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항상 궁금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고 싶어요. 평소 전시를 볼 때나 보고 난 후에 그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편인가요? 만약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영향을 받거나 때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지... 


상대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상대가 인스타 사진 찍으러 왔다-하면 이야기하지 않고요.


나와 다른 사람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좋죠. 영향을 받는 편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게 당연히 정답일 수 없기 때문에, 너무 궁금하고 신기하거든요. 전시 관련된 사람, 큐레이터나 작가가 이야기해 주는 걸 듣는 것도 좋아해요.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작가들조차도 이게 정답이다-라고 작품을 내놓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모든 게 다 예술 아닐까요.


모든 게 다 예술이다. 좋네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재밌었고요. 제가 왜 전시를 보러 가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돼서 좋았습니다.





잘 모르지만 관심 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켈리의 전시를 보면서 켈리의 생각보다 나와 다를 생각을 하고 있을 그녀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5분-10분 정도로 계획했던 인터뷰가 30분이 넘어갈 정도로 그녀의 생각들은 흥미로웠다.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전시를 놓치면 된다는 생각에 전시를 본다는 그녀의 의무감 공감하기도 하고,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켈리 작업의 특징들으며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배우기도 했다. 전시를 때마다  한 명의 작가가 보이고 드러나까지의 맥락이 궁금해진다는 말은 미술계의 작동원리에 대해 곱씹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대화의 마지막에는 나연이라는 사람을 더 깊게 알게 된 뿌듯함이 았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생각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자칫 까맣게 잊내 사고방식과는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나'  친구들, 학교 동창들로, 직장 동료들로, 심지어 내 옆의 모르는 사람들로도 쉽게 치환해 버린다.


미술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관람객들의 생각은 내 오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돌이켜보니 내가 미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미술계 종사자들 뿐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도 관심 없말을 길게 늘어놓는 게 아닌가 걱정되어 말을 아꼈고, 때로 미술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있어도 무식이 탄로날까 두려워 굳이 대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고립되어 가다보니 어느덧 내 생각이,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 미술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예술의 의미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전시와 작품을 보고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면, 혹은 관계자들끼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논다면  이 거창한 주제의 작품대체 무슨 의미 있는 걸까.


이 답답함이 늘 하고 싶었지만 미루어왔던 관객 인터뷰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된 이유였다. 어느덧 일곱 명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예술이 가지는 의미와 전시를 보는 방식, 그들의 전시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종종 내 생각이 전체의 생각일 거라 일반화를 저질러버리는 내 오만을 깨트려주는 재는 날들이었다.


예술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기만의 각기 다른 예술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연과의 인터뷰처럼, 모든 게 다 예술 아닐까. 




@spectators_of_art

관객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는 프로젝트 "전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내년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응원하신다면 브런치북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



인터뷰어: 최보영 BoYoung Choi (수카 Sukha)

인터뷰이: 김나연

인터뷰 날짜: 2024년 8월 25일


전시 공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Fondation Louis Vuitton, 프랑스 파리

전시정보: 《엘스워스 켈리. 형태들 색채들》, 2024.05.0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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