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마티스 전시를 봤던 날, 엘스워스 켈리의 전시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빠르게 전시를 훑어봤는데 강렬한 색감과 형태, 구성 등이 디자인 작업물 같다고 느꼈다. 파리에서 알게 된 디자이너 나연이 생각났다. 전에 그녀와 함께 전시를 볼 때마다 꼼꼼하게 감상하는 모습에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그렇게 같이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시간을 보낸 후전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물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프랑스에서 산지 올해로 10년 차가 된 김나연입니다. 한국에서 영상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쪽을 공부하다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커뮤니케이션 비주얼로 학사를 했어요. 그 후 디지털 디자인 쪽에서 석사를 하러 파리로 왔고 파리에서 UI 디자이너 아트디렉터로 일한 지 한 2년 정도 됐습니다.
평소에 전시회를 찾는 이유가 무언가요?
저는 거의 FOMO 때문에 가는 것 같아요. Fear Of Missing Out. 이걸 내가 하지 않으면 놓친다는 마음인데요. 예를 들어 파티에 갔을 때 나만 안 가면 FOMO 때문에 간다, 이런 식으로 써요.
그러면 대화 주제나 트렌드를 놓치기 싫은 마음인가요?
아니에요, 그런 마음과는 되게 달라요.
전시라는 건 전시가 내가 있는 도시에서 열리는 우연, 내가 살아있고 갈 수 있을 때 하는 우연이 다 맞아야 갈 수 있는 거잖아요. 이걸 놓치면 내가 언제 이 전시를 볼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같은 작품이라도 설명과 큐레이팅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전시가 내가 갈 수 있는 곳에서 할 때 안 가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는 그런 기분. 그런 기분 때문에 거의 의무적으로 가고 있어요. 미슐랭 레스토랑 메뉴 바뀔 때마다 가는 느낌이랄까?
재밌네요. 그렇지만 이 시간과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가 많잖아요. 그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나요? 주제, 공간 등 다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주제에 따라 선택해요. 아무래도 디자이너다 보니 그래픽이 제일 흥미롭죠. 80년대 가구 쪽도 항상 흥미롭고요. 사실 저는 상업적인 요소가 살짝 들어있는 걸 좋아해요. 상업이라는 건 정말 역사랑 떨어뜨릴 수 없는 건데요. 왜냐하면 역사의 필요에 따라 생긴 게 상업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상업은 역사의 기록이라고 느껴져요. 제가 디자인을 하는 이유도 대상이 있기 때문이에요. 성공의 척도가 있는 디자인을 좋아해요. 그래서 상업적인 요소가 있으면 많이 보게 돼요. 패키징, 가구, 의류 등. 고전 회화는 덜 좋아해요.
우리가 오늘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전시를 함께 봤는데요, 오늘 어땠는지 간단하게 들려줄 수 있나요?
네, 지난번에 한 번 갔었는데 예매하는 걸 몰라서 집에 왔어야 했어요. (웃음) 그래서 이번이 첫 방문이었는데 아무래도 루이비통이라는 초대기업이 이렇게 큰 랜드마크를 만들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느꼈어요. 건물의 규모와 전시의 퀄리티에서도 놀랐어요. 생각보다 전시 안의 작품 수가 적어서 그런 점이 아쉽긴 했지만, 건축 자체가 워낙 예술적이어서 '전시란 정말 종합경험이구나'라고 절절히 느꼈죠.
작품 수가 적었다고 느꼈다고 했잖아요. 지금 마티스 전시하고 엘스워스 켈리 전시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데, 두 전시 모두에서 느낀 건가요?
마티스는 확실히 작품 수가 적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지는 알겠는? 부족하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렇게 규모를 잡았다는 느낌이었어요.
켈리 같은 경우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작업 방법이나 영감에 대한 설명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픽적으로 어떤 효과를 노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요. 특히 마지막 큰 홀에는 정말 제목밖에 안 적혀있었는데, 그렇게 큰 공간에 제목만 쓰여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엘스워스 켈리 작품들이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까 더 자세한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더 자세하게 이번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듣고 싶어요. 그전에 엘스워스 켈리 알고 있었는지 여부도 궁금하고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들어가는 걸 되게 좋아하기는 해요.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는 그 시대의 작가들의 특징이 그렇듯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하지만 한 편으로 아예 시각예술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즐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왜냐하면 '이건 빨간색으로 칠한 것뿐인데 왜 이게 전시야?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거야.' 보통 그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을 잘 해명해야 하는 전시라고 느꼈죠.
그래픽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저는 그래픽 디자인을 하긴 하지만 웹디자인을 한단 말이에요. 웹디자인은 스크롤이 있고 모든 것은 컴포지션이거든요. 웹디자인의 특징이 뭐냐면 화면 크기가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 모든 화면 크기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섹션을 나누는 게 되게 중요해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본 작업들이 되게 섹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했어요.
예를 들어 이 작가의 특징이 섹션을 나누어서 이어 붙이는 거잖아요. 그게 되게 웹디자인 같다고 느낀 게 웹디자인에는 편집디자인에서 이어져 온 게 있는데요. 편집 디자인에서 칼럼이랑 그리드라는 걸 한단 말이에요. 거기에서 맞추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이 작품들에서 연결고리를 많이 찾은 것 같아요. 그리고 시스템에 유독 고집이 많은 작가라고 느꼈어요.
시스템이 무슨 뜻이에요?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만든 시스템은 패널을 나눈 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패널이 하나의 무언가를 상징한다는 것, 그게 그림자를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 뎁스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림자를 이용하거나. 그림자에 의해서 영감을 받은 형태를 또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용한다던가. 되게 그걸 시스템적으로,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디자인을 시스템화하는 게 되게 그래픽에서는 중요하거든요. 일관성이라고 해야 되나요?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하게 만드는 게 어려운데 그게 되게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아요. 워낙 일관성이 강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색채 자체도 단순하다 보니까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브랜딩이다 싶기도 하고 뭔가 웹디자인에서 연관시켜 볼 만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전시를 보셨는데요, 지금 이렇게 말했던 요소들이 긍정적인 레퍼런스로 보였나요? 아니면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이런 쪽이었나요?
둘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로 긍정적인 건 시스템이 강할수록 제한이 생기거든요. 그 제한 때문에 심플리시티가 발생해서 거기서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 제한 속에서 어떻게 내 시스템을 가지고 가면서 다양함을 만들어서 한 시리즈를 만들어야 되나에 대한 결단력이자 일관성. 그건 진짜 영감이 됐어요. 웹디자인도스크린이 사각형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뭘 배치할까에 대한 싸움인데요, 그 고뇌가 비슷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요.
부정적인 건 아무래도 좀 불친절했다? "난 이 시스템을 여기에 딱 적용을 할 거야." 여기에서 좀 반복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근데 그게 정말 많은 작가들의 성향이기도 하고, 미술에서는 시리즈의 개념이 있으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다만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지루하고 너무 반복된다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부분은 이 전시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시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그래서 전시 막판에 갈수록 이 사람이 어떤 의도로 작업을 했구나라는 메시지가 약해졌어요. 처음에는 작가의 표현 의도가 느껴졌는데, 작업이 진행될수록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없다고 느껴졌죠. 덜 와닿았어요. 굉장히 단순하게 이 작품들이 어떤 메시지가 있냐 보다는 그냥 아 이건 뭐 닮았다, 저건 뭐 닮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봤던 것 같아요.
전시를 볼 때 딱 명쾌하게 답이 내려지는 걸 선호하는 편인가요? 전시를 함께 볼 때마다 느꼈는데, 엄청 전시를 열심히 보더라고요. 텍스트도 엄청 열심히 읽고, 작품도 엄청 열심히 보고. 그런데 보통 그렇게까지 잘 안보거든요.
전시를 볼 때 굉장히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도록 설명을 찾을 수도 있고, 시각적으로 감각에 의존에서 마음에 드는 걸 찾을 수도 있고요. 전시를 볼 때 어떤 식으로 보는 건지 궁금해요.
되게 정확하신 게 저는 이해를 하려고 보는 거예요. 시각적으로 그냥 좋다-하는 걸 피하려는 편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가방 매장에 있는 게 아니라 미술관에 있는 거기 때문에요. 저는 디자인과 미술의 차이를, 미술은 작가의 아이디어의 표현이고 디자인은 필요에 응답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미술에서 그저 내가 마음에 든다고 '이거 예뻐' 이렇게 보면 가방 사는 거랑 다름없는 것 같게 느껴져요. 왜 이렇게 했는지가 되게 중요하고 그게 제일 궁금하죠.
그럼 시각적인 것과 텍스트 중에 텍스트가 우선한다고 보나요? 보통 텍스트를 먼저 보고 작품을 보나요?
그렇게 까지는 아니고 같이 간다고 봐요. 왜냐하면 예쁜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걸 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이걸 알아야 카타르시스가 생기는 것 같아요.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경험을 했는데 이 작가는 뭐가 다르길래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걸까? 왜 이 작가만 가능한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항상 보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마티스의 스튜디오도 재밌었어요. 왜, 어디서 그렸는지를 아니까요. 그래서 전시에 콘텍스트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심정인지까지는 몰라도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 왜 했는지 정도는 알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