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리게 하늘이 선명하던 팔월, 사랑스러운 미소의 가브리엘(Gabrielle)과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으로 앙리 마티스의 전시《마티스: 레드 스튜디오 Matisse: The Red Stuido》를 보러 갔다. 필리핀계 영국인으로 홍콩, 호주, 필리핀,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다 현재는 파리에서 지내고 있는 가브리엘은 예술을 사랑하는 아동 심리치료사다. 예술을 사랑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녀는 본인을 예술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심리 치료로 아이들의 마음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브리엘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그녀에게 예술이 가진 의미와 이끌어내는 마음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가브리엘과 그녀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커다란 붉은 실내 Large Red Interior〉(1948)
오늘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마티스 전시회를 같이 봤는데요. 미술관과 전시, 모두 어땠나요?
전부터 친구가 이곳을 강력히 추천해 줘서 이 미술관에 관심이 있었어요. 전시 또한 마티스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작품이 주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좋아서 꼭 보고 싶었죠.
직접 보니 정말 좋았어요! 일부 공간에는 자연광이 밝게 들어와서 좋았고, 전시실도 매우 넓고 높았어요. 전시회에서 이런 공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개방적이고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기여하니까요. 특히 마티스의 큰 작품들을 볼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전시의 구성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마티스의 이야기로 우리를 안내하는 더 많은 정보와 연결을 기대했는데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한 벽면에 그런 섹션이 있었지만 좀 산만하게 느껴졌고 더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죠. 그래서 그런지 전시가 너무 빨리 끝난 느낌이었어요.
《마티스: 레드 스튜디오 Matisse: The Red Stuido》 전시 전경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함께 마음에 들어 했던 다른 붉은 작업실 작품인 〈커다란 붉은 실내 Large Red Interior〉(1948) 요. 굵직한 색감과 다양한 물건들에서 정말 많은 재미와 활기 넘치는 에너지를 느꼈어요. 다양한 스타일의 테이블들, 꽃,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던 레몬처럼 보이는 것들, 전경에 있는 동물들이 눈에 띄었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또는 마티스의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온 것 같았죠. 평면적인 작품이었지만 굉장히 생동감 있었어요! 마티스가 그림 안에 다른 그림들을 그린 것도 정말 좋았어요!
전시를 보면서 과거 경험이나 직업, 어린 시절 등의 기억이 떠오르신 게 있나요?
저는 어린 시절을 호주 시드니에서 오랫동안 보냈어요.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서 호주의 밝고 생동감 넘치는 색감이 떠올랐어요. 밝은 파란 하늘, 선명한 바다와 야생동물들의 색채가 떠오르더군요. 마티스의 색들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과 기쁨, 세상을 바라보는 장난스러운 시선을 떠올리게 했어요.〈커다란 붉은 실내〉를 보면서는 제가 어렸을 때 키웠던 반려동물들도 생각났어요!
가브리엘과〈커다란 붉은 실내 Large Red Interior〉(1948)
심리 치료를 하시는데요. 예술을 통해서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주로 영감이 떠오르거나 에너지가 넘칠 때 전시회를 방문하고 싶어요. 피곤하거나 지쳤을 때보다는 그럴 때가 더 창의적으로 열려 있고 자기 성찰도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저에게 매우 치료적인 역할을 하기도 해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성찰을 하게 되고 제가 겪고 있는 것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돼요. 예술적인 흐름 안에 있다면 심지어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미술 치료를 하곤 하는데요. 이건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이에요. 예술은 제 기분을 변화시키거나, 그 기분을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돼요.
그렇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당신의 삶에 무언가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사소한 변화여도 괜찮고, 없어도 좋아요.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직업적으로 예술가는 아니지만, 항상 스스로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생각해 왔고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드로잉을 하는 등 창작 활동을 즐기는데, 최근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작업할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예술적인 슬럼프에 빠진 느낌이었죠.
그런데 오늘 마티스의 작품을 보면서 다시 예술적인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운과 영감을 받았어요. 새로운 방식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보통 저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데요, 이 방식은 좋긴 하지만 때때로 디테일에 너무 집착하게 돼요. 마티스의 몇몇 작품은 빠르게 그려진 것 같았고, 거친 붓자국, 빈 공간들이 있었죠. 그림 안에 가벼움이 있었어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저도 그런 접근 방식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붉은 작업실 The Red Studio〉(1911)을 보고 있는 관객들
오늘 우리가 함께 전시를 보고 대화를 나눴잖아요. 혼자서 전시를 볼 때와 누군가와 함께 전시를 볼 때의 차이를 느꼈는지 궁금해요.
확실히 달라져요.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내면에 집중해서, 작품이 내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또는 내 생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깊이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나만의 더 깊은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죠.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전혀 달라요. 서로의 에너지가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의 의견과 아이디어, 해석을 나누며 창의적인 경험을 공유하게 되죠.
그러면 친구들과 자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꽤 어려운 일인데요.
네, 자주 해요.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저에게 재미있고 중요한 일이에요. 다른 관점을 알게 되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때로는 그게 제 생각을 바꾸기도 하거든요. 또, 제 해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제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킬 수 있어요. 예술에 대한 대화는 틀리거나 맞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제게는 매우 중요해요. 그저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친구들만 괜찮다면, 저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붉은 작업실 The Red Studio〉(1911)과 가브리엘
나이가 들수록 마티스의 회화가 점점 좋아진다. 마티스 회화의 장식성과 색채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전에는 더 감정적으로 복잡한 작품들이 좋았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기분 좋아지는 작품들이 좋아지더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 깊은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았었는데 이젠 같이 있으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어릴 때는 그런 사람들이 가볍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밝음이 성숙함이란 걸 알았다. 마티스의 회화도 주제보다 표현해 치중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그 표현 속에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 담겼다는 걸 안다. 가브리엘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마티스 회화의 유쾌함이, 그 따뜻함이 닮아있었다.
@spectators_of_art
관객들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는 프로젝트 "전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인터뷰어: 최보영 BoYoung Choi (수카 Sukha)
인터뷰이: 가브리엘 Gabrielle
인터뷰 진행일 : 2024년 8월 8일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전시 공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Fondation Louis Vuitton
전시정보: 《마티스: 레드 스튜디오 Matisse: The Red Stuido》, 2024.05.0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