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결혼이라는 제도의 여러 가지 의미 중 한 가지는 바람피우지 않겠다고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약속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배우자의 외도(外道)를 막을 제약이 꼭 필요하다는 말도 되는 건 아닐까?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처음 보는데, 예쁜 여자’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왔겠는가 말이다. 물론 여자라고 해서 ‘처음 보는 멋진 남자’가 싫기야 하겠는가.
한때 “4주 후에 뵙겠습니다.”를 유행시킨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는 매주 이혼을 위한 각종 사연이 등장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막장 사연은 종영된 지금도 심심찮게 재방으로 만날 수 있다.
그중 단연 흥미로웠던 장면들은 바람피우는 배우자를 잡아내고, 시원하게 응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허술한 바람꾼들을 보면 외도에도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지 싶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神曲)』과 비견할 수 있다는 ‘인곡(人曲)’,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성의를 다하다 못해 응원해주고 싶은 바람꾼들이 나온다.
그중 두 가지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 본다.
일단 여기 나오는 바람꾼은 여자다. 남편이 외출한 사이 애인을 불러들였으나, 갑자기 남편이 돌아오고, 여자는 애인을 커다란 독에 숨긴다. 외출한 남편이 돌아온 이유는 애인이 숨은 그 독을 팔기 위해서였다. 여자는 기지를 발휘해 숨은 애인을 독 장수로 소개했고, 애인은 독을 사가면서 여자의 외도는 들키지 않고 끝난다.
다른 바람꾼도 여인이다. 이 여인은 애인이 여럿이었다. 첫 번째 애인을 불러들였는데, 약속도 없던 두 번째 애인이 들이닥친다. 욕심이 많은 건지, 대범한 건지, 첫 번째 애인을 숨겨 놓고 두 번째 애인과 즐기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인은 두 번째 애인에게 첫 번째 애인의 이름을 알려주고 그 이름을 부르며 잡아 죽일 듯 화내며 뛰쳐나가라 이르고 손에 칼까지 쥐여준다. 두 번째 애인과 마주친 남편은 당황해서 아내에게 상황을 물어본다. 여인은 남편의 평소 가르침대로 딱한 사람을 숨겨주었다며 첫 번째 애인을 풀어주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무려 『신곡(神曲)』과 비견할 수 있다며 ‘인곡(人曲)’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전, 제목부터 뭔가 딱딱하고 근엄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데카메론』이 의외로 대단치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사는 이야기다.
억압한다고 그대로 억압당하고 살지만은 않았을 터, 본능에 따른 숨겨진 이야기를 물밑에서 꺼내왔다고나 할까.
임헌영 평론가는 세계문학사를 속된 말로 ‘자유연애를 쟁취하기 위한 변천사’라고 말하며 이를 ‘5단계의 사랑의 변천사’로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임헌영의 문학과 인문학5.문학과 사랑의 변천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데카메론』은 그 두 번째 단계인 ‘르네상스의 육체의 발견’에 해당한다. 보카치오는 세상사의 모든 고통 중 여성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데카메론을 썼다고 밝혔고 이를 해석해 본다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던 ‘성’을 해방하는 의미이다.
위에서 소개한 두 이야기의 결말은 이후 남편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애인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 『데카메론』 중 일부만 읽어 볼 독자를 위해 안내하자면 두 번째 이야기는 열흘간 이야기 중 7일째 여섯 번째 이야기다.
고전이라 겁내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랑과 전쟁」이라 생각하며 읽어 보면 어떨까싶다. 「사랑과 전쟁」 부류의 막장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