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Nov 17. 2019

이 회사 몇 년 다닐 거야?

흘러가는 시간에 잠시 머물러 있을 뿐

게시판에 공지글이 올라왔다.

20년 장기 근속자를 축하하는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참석하라는 글이었다. 모든 직원의 참석이 권장된 것으로 보아 시상식을 통해 오래오래 일하면 이런 날도 온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임원의 축하 인사로 시상식이 시작됐다. 회사 발전에 이바지한 노고를 칭찬하는 동시에 포상으로 주어지는 금 두꺼비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 친히 액수로 변환하여 설명했다. 생각보다 꽤 금액이 나가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상을 받는 장기 근속자들은 이름이 호명되면 앞으로 나가 금 두꺼비를 손에 쥐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수상소감에는 감격스러움과 뿌듯함이 묻어있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새로운 공지글이 올라왔다. 임원인사 발표였다. 이 두꺼비가 얼마나 비싼 두꺼비인지 열심히 설명하던 임원은 고마웠다는 메일 한통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그분의 체취가 사라질 새도 없이 새로운 임원이 짐을 풀었다. 입사 후 6개월 만에 처음 겪어본 인사이동은 굉장히 혼란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우리 팀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주의적인 회사 분위기에서 몇 안 되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거의 매일 점심을 함께 먹고, 퇴근 후 무엇을 했는지 시시콜콜 공유했다. 생일엔 돈을 모아 선물을 챙겨주고, 승진 시험이 있는 팀원이 있으면 힘을 합쳐 도와주는 요즘 보기 힘든 유별난 팀이었다. 팀장님이 일반 사원이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서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약간의 소외감도 느꼈다. 이렇게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대리가 되고 과장도 될 미래를 그렸다. 그때쯤 내가 신입이던 시절을 안주삼아 지금보다 더 돈독한 분위기 속에서 떠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영원할 것 같던 우리 팀은, 팀장님의 퇴사를 시작으로 커다란 금이갔다. 충격적인 팀장님의 퇴사 소식에 팀원들 모두 흔들렸고, 부장님이 얼마 후 퇴사했다. 그리고 연이어 과장님과 대리님마저 퇴사하며 팀은 무너져버렸다.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보려 했지만, 코로나로 도입된 재택근무로 인해 입사 초기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회사는 계속 흘러간다.

임원인사와 팀원들의 퇴사 외에도 여러 번의 조직 이동과 변화를 겪으며 회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신입사원 시절, 팀에 융화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어서 3차까지 따라가서 술을 마셨던 날, 집에 가는 길 화장실에서 내 몸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며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잘 보이고 싶었던 사람들의 절반이 사라질 줄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변치 않을 것 같던 일들로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너무도 탄탄하게 업무를 하고 계신 선배들이 있으니, 나는 저런 업무들을 배울 기회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팀원들의 줄퇴사로 모두 업무를 한 번에 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고과를 확인하던 순간의 절망도 또렷이 기억난다. 나름 열심히 임했는데도 계속되는 C고과에 실망하며 회사원으로서 미래가 없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고과를 받는 날은 쓰지만 반기마다의 고과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은 회사생활을 지속하면서 깨달았다. 계속 C를 주던 팀장님은 퇴사하던 때, 처음으로 A를 선물하고 나갔다. 역시 고과는 업무 능력과 나의 노력에 비례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절망할 필요가 없다.

사내 정치라는 것을 지켜보면 꽤 재미있는데, 팀장과 임원급의 인사에는 항상 드라마가 흘러나온다. 이번에 타 부서로 발령 난 팀장님은 대표님에게 밉보인 게 틀림없다라거나, 라인을 잘 타서 빠르게 팀장을 달았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그 드라마에 등장하던 타 부서로 '유배'갔다던 팀장님이 어느 날 우리 본부의 임원으로 승진하여 돌아왔다. 누군가는 이를 '존버의 승리'라 칭했는데, 나는 그 순간에 절망하지 않은 임원이 된 팀장님의 태도를 곱씹게 된다. 회사는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역시 먼저 깨우치셨던 걸까.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흘러가는 물 위에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것, 나는 그렇게 사는 태도를 배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가 곧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고과 하나 혹은 팀장님의 변화에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회사와 나를 분리시켜서, 나는 잠시 이곳에 머무는 것뿐이며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게 회사에서 역량도 빠르게 쌓아갈 동기도 생긴다.


회사는 나의 전부가 아닌, 내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하루하루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이전 06화 워라벨, 진짜 좋은 건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