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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02. 2024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여행

"임신이라고? 와우, 축하해요. 김변호사. 다시 돌아올 거죠?"


저기서 박 부장님이 타박타박 걸어왔다. 바쁘냐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마치시고 급한 소송건 좀 의논하시자고 하셨다. 나는 부장님께 급한 소송건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슬그머니 배안에 자라고 있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을 들은 박 부장님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다. 그리고 나에게 출산 후 복직할 거냐는 당연한 질문을 던졌다. 새삼스러운 질문에 나는 뭐 그런 걸 물으시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육아휴직 끝나면 바로 복직할 거예요."


박 부장님은 나에게 출산 후 육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러니까 누가 도와줄 것인가에 관해 더 묻고 싶은 눈치였다.


"음. 근데 김변호사. 친정은 서울이라고 했었고, 시댁이 좀 가깝나?"

"부장님, 시댁은 저기 경남 쪽이거든요. 2시간 정도 가야 해요. 좀 멀어요."

"음,, 그래요. 김변호사님, 출산휴가 시작 전까지 몸조리 잘하고요."


 박 부장님은 말을 이으려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가 에이 됐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며 총총 사라졌다.


                        <출처: pinterest>


사실 박 부장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찬스를 전혀 쓰기 어려운 타지에서 일을 하면서 아기를 키워 내는 것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박 부장님 역시 연고 없는 타지에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친정 엄마가 7년째 육아를 전담해 주고 계셨다. 젊었던 친정 엄마는 두 아이 육아를 전담하며 밤마다 아픈 곳이 늘어 간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박 부장님이 육아의 쓴맛을 모를 수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마음은 정말 그때까지 출산 후 복직에 진심이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이 끝나면 멋지고 당당하게 복직한다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아이를 낳고 복직하지 못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기르지 않더라도 베이비 시터가 있으니, 베이비 시터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를 키우면 되지 않는가.


뭐가 문제라는 거지?

 


<출처: pinterest-KORpngtree>

출산일이 다가오며 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쿠폰만 있으면 무료로 만삭 사진을 찍어주는 곳이 있다길래 남편과 만삭 전문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만삭 사진은 메이크업을 받고 난 후 옷을 고르고 사진을 찍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근한 얼굴에 인상이 좋아 보이는 A는 자신은 두 명의 아이를 둔 엄마라 소개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산모님, 그런데 출산하시고 복직하시는 거예요?"


나는 에이,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시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당연히 복직할 거라고 아티스트 A에게 자신 있게 빛나는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티스트 A는 내 눈썹에 세심하게 붓칠을 하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요. 산모님. 그건 아이를 낳아 봐야 아실 거예요. "


아티스트 A의 미묘한 웃음과 함께 당연한 회사 복직이 아이를 낳아 봐야 알 거라는 이야기를 듣 좀 당황스러워졌다. 왜냐하면 내가 아이를 낳고 복직하지 않는다는 계획 내 인생 지도에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으니까.


" 선생님, 그런데 아이는 아이 인생이 있고, 저는 제 인생이 있잖아요. 저는 주체적으로 제 인생을 살아갈 거예요."


아티스트 A는 자신감에 넘치는 내 말을 듣고, 풋 하고 웃으시더니 말했다.


"산모님, 정말 멋져요."





아이는 2023년 4월에 세상에 나와 쑥쑥 자라 주었다. 아이의 이름은 도도다. 아이가 배 안에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가 처음 눈을 마주 했을 때 너무나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신생아가 이렇게 작을 수 있다니. 그냥 안으면 부서질 것 같았다. 부서질 것 같이 작은 도도에게는 예쁜 구름 향기가 솔솔 났다.


그렇게 작았던 도도는 잘 자라나고 있었다. 도도가 16개월이 되는 시기, 이제 회사로 복직해야 했다. 그 기한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도도가 잠들었던 어느 날 밤, 남편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이제 복직이라 베이비 시터를 구해야겠어요."


남편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태어날 때에 비해 많이 자랐지만 도도는 여전히 작았다. 아직은 말 그대로 아기였다.


아기였을 때 도도는 내가 안아주면 울다가도 방긋 웃었고, 나를 참 좋아해 주었다. 내가 엄마인 것을 본능적으로 어떻게 알고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런 아기를 두고 직장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복직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도도를 만난 후, 변호사 커리어를 쌓으며 탄탄대로를 힘차게 달려가겠다고 아티스트 A에게 말하던 멋진 산모님은 내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도도를 두고 직장에 나갈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도도와의 지금 시간들이 너에게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될 거야. 도도가 좀 자란 후에 커리어는 다시 쌓을 수 있잖아. 근데 지금은 다시없으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결정이 나에게 맞는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복직을 앞두었던 나는 복직을 해야 할 것인지 도도와 함께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선택하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당시에는 양자택일 아래에서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어떤 이는 출산 휴가 후 바로 아기를 맡기고 복직해서 아이도 잘 크고 커리어도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육아서 전문가들은 만 3세 이전까지는 엄마 품에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했다. 육아와 커리어를 모두 잡았다는 이의 이야기도 육아서를 쓴 전문가의 이야기도 내 선택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만 커지고 있었다.


 


24살 무렵, 친한 언니와 인도로 한 달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인도에서의 한 달은 정말 더럽지만 세상 재미가 넘치는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고프고 지저분하며, 좌충우돌 생명을 위협받는 여행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었고, 행복했고 자유로웠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마음을 읽으려 했고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인도 여행을 마치며 나에게 다짐했던 이야기가 있다.


' 주어진 생애 안에서 가능하면 가 즐거울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그날도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며 복직을 할 것인가, 도도를 돌볼 것인가 상담을 받고 있었다. 혼돈 속이였다. 그러던 중 문득 20대 때 다녀온 인도여행이 주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나의 복잡스러운 고민은 생각보다 쉽게 혹은 허무하게 해결되어 버렸다. 나는 내가 계획했던 여정이 아닌 내 마음이 가보자고 하는 새로운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게 도도와 나의 조금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여행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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