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16. 2024

엄마가 보내는 편지

아기에게

<출처:pinterest>

너와 함께


세상을 처음 마주한 너는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단단함을,

들이키는 공기가 청량함을,

머리 위를 수놓은 새파란 하늘이 끝없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가 넓은 우주 속에서 빛나는 소중한 작은 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봄이 되었다.

봄에는 벚꽃이 동그랗게 봉우리를 만들었다가

따스한 햇살에 새하얀 분홍빛 꽃을 피워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부는 봄에는 벚꽃 잎이 바람에 흩어지다,

다시 하늘을 휘돌아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모습에 탄성을 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이 되었다.

산책 길에 무섭게 위잉, 위잉 소리 내며 하얗고 작은 너에게 달려드는 모기를 바라본다.

누구보다 재빠르게 손을 휘저으며 모기를 쫓아내는 모습을 보며 길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한여름에도 안아 달라고 울음을 터뜨린 너를 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다. 조금은 시원한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손바닥 만한 반팔 옷을 옷장에 넣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긴팔 옷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한다.

가을 옷을 입고, 시원하고 신나는 바람을 맞으며 놀이터를 걸어본다. 놀이터를 감싸고 있었던 푸른 하늘이 더 높아져 우리를 바라본다.

가을에는 솔방울과 도토리, 알록 알록한 낙엽이 우리를 스쳐간다. 그리고 그런 가을 장난감만으로도 까르르 웃으며 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가을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하늘에서 흩뿌리며 쏟아지는 하얀 것을 만난다. 그것은 눈이라고 너에게 알려줘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너는 그저 좋다.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네가 좋다.

온도차로 김이 하얗게 서린 창문을 볼 때면 창문에 낙서를 해대며 무엇이 좋은지 신이 나서 웃는다. 그 웃음을 보며 겨울이 정말 왔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너와 함께한 사계절이 우리를 지나간다. 느린 듯 느리지 않은 듯한 시간 속에 우리가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는 느렸지만 뒤돌아 보니 화살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 네가 있어 달콤하기도 내가 사라져 생경할 때도 있었다. 지나고 나니 몽실몽실한 기억만 남아 그리움이 되었다. 그렇게 너는 자라났다. 그리고 내 마음도 너와 함께 힘껏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 시는 도도와 함께 보낸 사계절에 대한 글입니다. 글을 쓰기 전 도도를 낳고 도도와 가장 많이 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도도가 돌이 될 무렵까지 코로나로 외출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전 10시쯤 도도와 집 뒤에 있는 공원으로 나가 산책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도도와 1년 정도 매일 산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은 길, 같은 나무, 같은 꽃들을 바라보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모습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도도를 낳기 전에는 아침에 회사로 출근했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여름에는 또 얼마나 더운지, 가을에는 나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겨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가 도도와 함께하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다 보니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소중함,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보 엄마로 육아에 지쳐 스스로 소진되어 가는 것 같아 슬퍼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 다시 뒤돌아 보니 도도와 함께한 그때가 그리운 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전 02화 출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