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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Jan 23. 2024

포근해서 포대기

"으아아아아앙"

"도도야,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예민한 아기와 순한 아기 중 고르라 한다면 도도는 어떤 때는 순한 아였지만 아닐 때도 있었다. 그 기준은 계속 변해 갔다. 그래도 도도는 잠도 잘 잤고 잘 먹었다. 낯선 지구별에서 그럭저럭 적응 자고 있었다. 그러나 총량의 법칙이 육아에도 적용된다아이를 키우는 데에 일정량 육체노동이 필요했다. 순한 아기라도 어려움  형태로든 존재했다. 런 어려움은 육아를 힘들게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고 나면 육아 효능감을 높여 주기도 한다.


매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도를 보는 게 만만하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하루에 몇 시간씩 도도를 안아 주어야 했다. 품에서 도도를 바닥으로 내려놓는 순간 귀를 찌르는 울음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그때 도도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오래오래 계속 안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에게 아기를 오래 안아 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같은 경우 본래 태어나기를 팔힘이 없게 태어난 것 같다. 운동신경은 좋았지만 철봉 매달리기, 팔 굽혀 펴기는 나에게 불가능한 운동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오래 드는 걸 힘들어했기에 도도를 낳고 많이 안아주지 못하면 어찌해야 하나 출산 전에 괜한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도도를 낳고 보니 팔힘이 없는 정도 더 심각해져 있었다. 출산 후 손목에서 지릿 지릿한 저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타난 손목 통증은 도도를 안아 줄 때마다 그 정도가 심해졌다. 도도를 안을 때면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느낌보다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혹시 뼈에 문제가 있나 싶어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도 찍고 진료도 받았지만 어떤 이상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지금 느껴는 통증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그저 손목을 많이 쓰지 않을 것을 당부하며 진통제를 처방해 줄 뿐이었다.


떠나가라 우는 도도를 달래기 위해 도도를 안으면 팔목에 흐르는 통증 때문에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내려놓으면 도도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서로 울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도도와 둘이 남아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했지만 결국 손목에 아대를 차고 진통제를 먹으며 도도를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도도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으면 우는 이유가 궁금해 육아 서적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아기들에게 등센서가 있다고 하는데 책에서는 아기들에게 등센서가 작동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중력의 힘을 느끼게 되는데 어떤 아기의 경우 등이 바닥에 닿는 것이 유난히 힘들어한다."

도도 역시 중력의 힘을 강하게 받고 있는 아기였다.


그날도 도도가 울다 그다음에는 내가 울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에 있는 금옥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일로 금옥 씨가 바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 도도가 안아주지 않으면 계속 우네. 그래서 계속 안아줘야 하는데 손목이 너무 아파.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무 힘들어."

"현정아, 안돼. 아기 낳고 그렇게 안아 달라고 할 때 계속 안아 주면 나중에 손목 못쓴다. 그리고 도도 운다고 계속 안아주면 네가 힘들어서 아기 못 본다. 그렇게 많이 울면 포대기 한번 써봐. 포대기로 업어주면 안 울 거야."


'포대기? 그거 옛날에 할머니들이 쓰시던 거 아닌가?'

사실 37살에 도도를 낳았고, 인맥이 좁은 관계로 주변에 아는 엄마라고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2살에서 3살 어린 엄마전부였다. 그런데 알고 있는 소수의 지인 엄마 중에서 포대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했던 친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금옥 씨가 포대기를 추천했을 때 너무 옛날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금옥 씨는 3명을 키운 육아 고수라는 생각을 하며 믿어보기로 했다. 그때는 엄마 금옥 씨를 믿지 않으면 딱히 믿을 곳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쉼 없이 울던 도도가 지쳐서 낮잠 자는 사이 포대기라는 물건을 검색해 보았다. 찾아보니 세상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포대기들이 많이 있었다. 오래된 전통의 모습을 감쪽같이 숨기며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포대기가 아닌 것 같지만 포대기라 불리는 포대기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던 중 도톰한 하얀 천에 노란 꽃들이 화사하게 그려져 있는 전통 포대기가 눈에 띄었다. 이런 샛노란 꽃이 활짝 피어 있는 포대기는 한눈에도 포근해 보였다. 어떤 예민한 아기라도 샛노란 꽃 안에 포근히 감 업면 순하디 순한 아기로 변신할 것 같았다. 그래, 이거다. 재빠르게 주문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손목이 아파 아기를 안아주기 힘든 엄마와 엄마에게 계속 안겨 있고 싶은 아기를 이어주는 포대기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딩동! 롯* 택배입니다. 고객님의 택배가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포대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고이 놓여 있는 상자를 가지고 거실로 들어와 상자를 주섬주섬 풀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기다리던 포대기가 들어 있었다. 주문할 때 화면에서 본 것보다 톡톡 튀며 도톰하고 단단한 천 위에 샛노란 꽃이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이제 도도를 포대기에 감싸서 업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간단한 결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제 100일도 채 되지 않은 도도를 어떻게 등에 둘러업은 다음에 포대기로 감싼 후 어부바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남편이라도 옆에 있으면 도도를 등에 얹어 달라고 부탁하고 대기로 감싸면 되겠지만 평일에는 도도와 나 둘 뿐이었다. 내 등에 도도를 얹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유튜브에 포대기 매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포대기 매는 법은 포대기 종류만큼 정말 다양했다. 혼자 포대기를 매는 영상 중에는 아기를 등뒤로 휙 넘겨 등에 가볍게 안착시킨 후 포대기를 돌돌 매는 영상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영상 속에 등장한 엄마는 정말 능숙하게 아기를 등뒤로 휙 넘겼다. 묘기가 따로 없었다. 쉬우니 따라 해 보라는 멘트를 남기며 영상 속 엄마는 사라졌지만 그걸 따라 해 보려니 혹시 잘못해서 도도 목이 다칠까 봐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렇다. 영상 속에서는 쉽게 아기를 등뒤로 넘겼지만 현실에서는 달랐다. 현실 속 초보 엄마에게 그것은 서커스와 같은 고난도 기술이었다.


'너무 어려운데... 좀 쉽고 안전한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정말 나에게 딱 맞는 방법을 알려 주는 영상을 발견했다. 정말 이 방법은 초보 엄마라도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https://youtu.be/VGkM76 hTSc0? si=_FLgzonSEMYJTKML

<혼자서 포대기 매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우선 침대 위에 포대기를 편다. 그리고 포대기 중앙에 아기를 눕힌 다. 아기를 눕힌 방향 아래 살며시 걸터앉은 후 김밥을 싸듯 포대기로 나와 아기를 싸며 일어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포대기 끈 하나를 아기 엉덩이 밑을 지나가게 해서 한번 감싸고, 나머지 끈도 반대 방향으로 아기 엉덩이 밑을 지나가게 한 후 가슴 및에서 끈 두 개를 단단히 묶어준다.


그렇게 영상에 나온 방법에 따라 포대기로 도도를 업었다. 이 방법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래도 할 수 있었다. 포대기로 도도 업어주기에 성공했다. 처음에 도도를 포대기로 감싸려 하니 생애 첫 어부바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따뜻하고 보드라운 포대기 안에 안정적으로 업혀 들어오자 도도는 곧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포대기 안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엄마 등 뒤를 살폈다.

"도도야, 이제 좀 편안하니?"

도도를 등에 업고 도도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이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했다. 도도 역시 등 뒤에서 이방 저 방을 구경했다. 그리고 피곤했는지 도도는 포대기 안에서 곧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포대기에서 편안히 잠든 도도>


그날 이후 나와 도도에게 포대기는 필수 육아용품이 되었다. 포대기를 알고 난 후, 아니, 포대기를 사용하면서 도도를 보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포대기로 아기를 업으 안아 주는 것과 다르게 팔목을 덜 쓰게 되었다. 시간의 힘이었는지 포대기 사용 때문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병원에서도 알 수 없다던 팔목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졌다.  통증은 도도를 낳은 지 2년째 되던 해에 거의 없어졌다. 또 포대기를 사용하아기띠를 쓸 때보다 허리가 덜 아팠다. 보통 아기띠는 앞쪽으로 아기를 안는 형식이라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오랜 시간 아기띠로 아기를 안을 경우 허리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포대기는 뒤로 아기를 업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뒤로 가게 되어 허리에 가하는 부담이 아기띠에 비해 덜다. 그 외에 도도를 포대기로 업으면 양손이 편해져 점심이나 저녁 준비도 같이 할 수 있어서 꽤 수월다. 예전에는 도도가 안아주지 않으면 계속 울어 그 무엇도 하기 어려웠던 때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할 것이다. 도도를 등에 업고 책도 보고 핸드폰도 할 수 있었다.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겼다.


그렇게 작던 아이는 이제 아기에서 32개월 작은 형아가 되었다. 얼마 전 포대기에서 푸근하게 자고 있는 조금 어릴 적 사진을 보더니 나를 부른다.

"엄마, 사진 속 도도는 손도 작고 발도 작고 예뻐요. 나도 아기 도도처럼 포대기로 업어 주세요."

사진 속 도도가 부러웠는지 자기도 포대기로 업어 달라고 한다. 도도의 말에 안방 장롱 저 안쪽에 곱게 접어 놓았던 포대기를 꺼내 들고 왔다. 


포대기를 본 도도는 눈이 동그래진다.

"엄마, 노란색 꽃이 예뻐요. 그리고 포대기가 부드러워요."

포대기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포대기에 그려진 꽃이 예쁘다며 포대기를 쓰다듬는 도도를 보니 방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포대기를 침대에 깔고 이제는 도도에게 포대기에 누우라고 한 후 도도를 업었다. 그렇게 이제 아기에서 작은 형아가 되어가는 도도를 업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방안을 한 바퀴 휘돌아본다.


노란 꽃무늬 포대기 속에는 아주 작았던 도도와 그새 조금 자라난 도도가 있다. 그리고 도도가 담긴 포대기를 매고 도도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방을 거니는 내가 있다. 도도가 등으로 전해주는 따스한 온기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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