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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Feb 07. 2024

삶의 어디에나 행복은 흐른다

한 엄마가 영유아 도서관 신발장 앞에 한참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엄마는 신발장 옆에 있는 여닫이 문 앞, 코팅이 되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시멘트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을 바라보고 있듯했다. 칫하며 가만히 신발을 내려다보던 엄마는 손에 있던 핸드폰으로 위에서도 찍어보고, 옆 방향으로도 찍어보고 비스듬한 각도로도 찍으며, 그렇게 신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려는 듯. 사진을 찍는 엄마 옆으로 다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를 향해 찡긋 웃어 보였다. 엄마가 아이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인다. 아이는 엄마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저쪽 서가로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엄마가 신발을 신고 나올 때까지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구경하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도와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우리도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에 발견한 한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었다. 도도와 신발을 신으려고 신발장으로 다가갔을 때에도 아이 엄마는 신발장 앞에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무슨 일이지?'라는 내 표정을 읽은 것일까. 사진 찍기를 마친 아이의 엄마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이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와 도도를 바라보는데 눈시울이 빨개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게 뭐라고 눈물이 나네요." 엄마는 눈물이 났다는 것 부끄러웠는지 눈물이 다시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을 슬며시 손으로 닦으며 말다.

"저기 저 아이가 제 딸인데요. 먼저 신발을 신고 나가면서 엄마가 신발을 편하게 신었으면 좋겠다 제 신발을 신발장에서 꺼내 이렇게 가지런히 놓아두었더라고요. 누구에게는 별 것이 아니겠지만 엄마라서 그런가.. 그 마음이 고마워서 괜히 뭉클해졌어요. 이 순간을 기억해 놓고 싶어서 아이가 놓아둔 신발 사진을 찍어 놓고 있었어요. 이 신발이 제 신발이거든요. 게 참 뭐라고....." 눈가가 여전히 촉촉한 아이의 엄마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퍼트리며 말했다.


 멀리서 엄마가 신발을 다 신은 것을 확인한 아이가  빙그레 웃으며 엄마에게 다가왔다. 엄마를 향해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해사해 보였다. 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손을 잡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를 바라보 웃다.  정답게 걷는 엄마와 아이의 뒷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다정한 마음을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엄마가 되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함께한 세월 동안 그 사람이 느꼈을 마음을 한 번쯤 두 번쯤 세 번쯤 수 차례 헤아려 보게 된다.

'우리 엄마는 그때 어땠을까?'하고.


엄마가 되고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은 엄마 금옥 씨였다. 스무 살이 넘었을 무렵 엄마 금옥 씨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삼 남매를 키웠잖아. 근데 키우면서 안 힘들었어?"

이렇게 물으니 엄마 금옥 씨가 웃으이렇게 말씀하셨다.

"응, 하나도 안 힘들었어. 그때 희 삼 남매가 있어서 행복했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정말?"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럼 정말이지." 엄마 금옥 씨가 다시 대답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유난히 무지했던 (유난히 아이들과는 인연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의 나는 엄마 금옥 씨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우리 엄마는 우리 키울 때 행복했구나. 행복했다니 참 다행이다.'라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도를 돌보며 스무 살 때 엄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도도와 함께  따뜻하고 포근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마음안 속에서 요란 요동칠 때면 엄마 금옥 씨가 스무 살의 나에게 해주었던 그때 그 대답이 진정 진심이었는지, 엄마 금옥 씨는 진짜 행복했는지 알고 싶다.


"엄마, 저예요. 통화 가능하세요?" 도도가 낮잠을 자는 틈에 엄마 금옥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정아! 잘 있지!!?" 엄마 금옥 씨는 언제나와 같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다. 엄마 금옥 씨의 밝은 에너지가 저 멀리 서울에서 먼 남쪽 나라까지 와서 툭 닿는 듯하다.

"엄마, 그냥 생각나서 걸었어요." 일 하느라 바쁜 엄마 금옥 씨에게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엄마는 우리 키울 때 안 힘들었냐고  묻기 민망해 그냥 걸었다고 얼버무린다.

"응! 그렇구나. 도도 잘 있고?" 타지에서 도도와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엄마 금옥 씨는 도도와 내 안부를 묻는다.

"네, 자고 있어요. 요즘 도도가 잘 놀다가 떼를 쓰기도 해서 힘든 때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어떻게 다 키웠어요? 안 힘들었어요?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괜히 엄마 금옥 씨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해보며 묻고 싶었던 마음속 질문을 던져본다.

"음, 너희 삼 남매 서로 잘 놀았. 그래서 하나도 안 힘들었어. 물론 너희들이 커가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들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야. 그래도 너희 삼 남매가 태어나서 5살 정도까지 나한테 부어주었던 사랑에 비하면 그런 거쯤이야. 다 괜찮았어. 너희 나한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줬는데. 너희가 없었다면 그렇게 웃으면서 살 수 있었을까 싶어. 난 그거면 충분했단다." 엄마 금옥 씨가 말했다.

"엄마, 우리가? 엄마한테 사랑을 줬다고? 난 기억 안 나는데..." 사실 어릴 적 기억이라고 해봐야 아주 단편적인 기억 몇 조각이 전부였다. 시골에 눈이 아주 많이 와서 고드름 따서 먹었던 기억 정도.

"현정이 넌 어렸으니까... 하지만 도도를 키우면서 현정이 너도 차츰 알게 될 거야. 음.. 지금은 현정이 네가 도도에게 주는 사랑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지금 도도로부터 받는 찐하고 순수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물론 아이를 기르는데 어려움도 있을 거야. 엄마는 원래 그래. 그래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삶 안에 생각보다 많은 보석들이 숨겨져 있지. 엄마도 너희를 낳았을 때를 생각하면 엄마가 처음이라 무섭고 불안한 것 투성이었어. 하지만 너희가 태어나서 똘망 똘망 나를 바라보는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무서움들이 괜찮아졌어. 그때 알았지. 너희가 나에게 부어주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격스러운 것인지. "  엄마 금옥 씨는 벌써 엄마 금옥 씨에게 40년도 넘은 기억 속 앨범을 꺼내며 그 순간들을 어제처럼 추억하며 말했다. 

"그구나..." 나는 엄마 금옥 씨가 말한 이야기를 되뇌며 대답했다.

"앗! 현정아, 어르신 오셔서 가봐야겠다. 끊을게." 엄마 금옥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겼는지 급히 전화를 끊었다.


"으아아아아앙" 마침 도도가 깼는지 안방에서 도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금옥 씨의 말을 곱씹을 겨를도 없이 안방으로 달려갔다. "도도야! 엄마 여기 있어." 도도에게로 달려가 도도를 안아 주었다. 아직 어린 도도는 엄마를 보자 울음을 그치며 자그마한 손으로 엄마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냄새를 맡은 도도가 엄마 품 안으로 폭 안기자 도도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코를 간질였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휘몰아치던 마음이 어느새 차분해졌다.



아기였던 도도는 금방 자라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옹알옹알거리더니 어느 순간 말문이 트였다. 사람 말을 하게 도도는 우리에게 매일 같이 여러 가지 말을 쏟아 놓았다. 마음속에 달콤한 말들을 언제 숨겨 놓았는지 매일 다정한 말을 건네며 웃게 해 주었다.


자려고 팔베개를 하고 있던 도도가 나를 빤히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귀도 쫑긋하고 예뻐요."  귀여운 목소리로 쫑알쫑알 도도가 다.

"고마워! 우리 도도 귀도 쫑긋하고 예쁘단다." 내 말을 듣고 배시시 웃어 보이는 도도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한참을 누워있던 도도는 잠이 드나 싶더니 한마디를 더 던진다.

"엄마, 나는 엄마가 정말 쪼아요."라고 말하며 달콤한 꿈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코오, 코오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도도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도가 우리에게로 왔다는 사실 새삼 마음을 찡하게 했다.  "도도야, 나도 도도가 참 좋단다. 고마워." 자고 있는 도도에게 조용히 중얼거리며. 보드라운 도도의 손을 만지작만지작해 본다.


도도가 나에게 주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 도도에게 받고 있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 언제나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싶어 하는 도도(화장실까지도, 지구 끝까지!), 잠깐 요 앞 마트에 나간 사이에도 엄마 보고 싶다고 외치며 아빠에게 엄마 마중 나가자 조르는 도도, 무엇을 하든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도도(심지어 엘리베이터도 동시에 탑승해야 함), 멀리서 나를 보면 어찌 알아보고 엄마 아아아! 를 크게 외치며 두 팔 벌려 전속력으로 달려와 안기는 도도, 매일 몇 번씩 엄마에게 귀가 쫑긋한 인형같이 예쁘다고 달콤한 말을 해주는 도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호오 하고 밴드 붙이면 나을 거야'라고 하며 호오 호오 불고 밴드를 가져와 몇 개씩 붙여주는 도도, 집에 있는 도도 얼굴보다 큰 종이 꽃다발을 들고 와 '엄마, 선물이에요." 하면서 주는 도도,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말해주는 도도. 부스스한 엄마에게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도도. 새 옷을 사서 입고 난 후 "엄마 어때?"라고 물으면 "엄마 멋져!"라고 대답해 주는 도도.


 삶의 어디에나 행복이 흐른다는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처럼 도도와 함께하는 시간 곳곳에 작은 보석들이 숨겨져 있었다.


*메인 이미지:pinterest(녹색배경 앞의 엄마와 아기,메리커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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