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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Feb 22. 2024

엄마 약

점심을 먹고 거실서 놀던 도도가 나를 힐끗 보더니 싱크대 쪽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엄마, 밖에 나가요 오오. 너--무 심심해요."

도도는 설거지하고 있는 내 바지 끝을 손으로 붙잡길게 잡아당기며 말한다. 도도의 말에 그릇을 씻다 말고 싱크대 상판에 놓여 있는 작은 나무 시계를 바라보 어느덧 오후 2시.

"그래. 도도야. 잠깐만. 이거 금방 씻어 놓고 가자" 거품이 보글보글 묻어있는 그릇들을 보며 도도에게 말한다.

밖에 급한 볼일이 있다고 말하는 도도를 보며 세제가 묻어 있는 그릇우당탕탕 물로 헹구어 낸다. 바람처럼 빠르게 나갈 채비를 마친 도도와 현관문을 나선다.


집 안으로 들어왔던 따스했던 햇살과 바깥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지는 오후다. 2월에 부는 바람은 때때로 좀 으슬으슬한 기분 들게 한다. 두 팔을 흔들며 내 앞에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도도가 추울까 싶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빨간 벙어리장갑을 꺼도도의 작은 손에 끼워준다. 그새 조금 컸는지 큼직했던 벙어리장갑이 손에 잘 맞는다.

"도도야, 어디 갈 거야?" 도도에게 불려 나온 나는 궁금한 듯 묻는다.

"엄마, 우리 서점가요." 32개월 도도는 서점에서 꼭 살 것이 있다며 서점에 가자고 말한다. 32개월 아이가 무엇을 살 것이 있까? 상당히 결연한 눈빛에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말한다.  

"그래? 서점에 가려면 우리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날이 좀 쌀쌀해서 걷다 보면 추울 수 있어"

"네. 엄마. 하나도 안 추워요." 도도가 씩씩하게 대답하며 답답한지 방금 끼워둔 장갑을 벗어 나에게 건넨다.

그렇게 도도와 나는 손을 잡고 천천히 서점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도도와 내 모습이 꽤나 다정해 보인다. 그렇게 10분 정도 걷던 도도가 횡단보도 건너편 과일카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우리 과일카페에 안 간 지 오래된 것 같아요. 한번 들릴까요?"

집 근처에 과일도 팔고 과일을 컷팅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은 카페가 하나 다. 과일이 맛있기로 유명해 도도 어릴 적부터 자주 놀러 가던 곳이었다. 지나가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는지, 과일 모양 간판이 예뻐 보였는지 서점으로 가던 도도는 어서 과일카페로 가자 목적지를 바꾼다. 조금 먼 서점까지 걸어가기에는 차가운 날씨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나는 도도의 제안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래, 도도야. 우리 저기 들어가서 컷팅과일 사서 먹을까?" 내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 도도 역시 신이 나서 대답하며 씩씩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니 쇼케이스에 모둠 과일이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거기서 신선해 보이는 것 하나를 고르고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 컷팅 과일을 들고 도도와 윗 층에 위치한 카페로 올라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둠 과일이 져올 참사에 대해서  누구 예상하지 못며.

오후 2시쯤이라 그런가 과일 카페에는 도도와 나 둘밖에 없었다. 도도는 지나가는 자동차가 잘 보이는 창가 자리로 가서 앉겠다며 큼직한 통창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나도 도도 앞 쪽에 앉아 사온 모둠 과일 상자 뚜껑을 열었다. 향기로운 과일 향 퍼졌다. 모둠 과일 상자 안에는 반으로 컷팅된 귤 하나와 샤인머스캣 4알, 컷팅된 배가 들어 있었다. 가장 밑바닥에는 파인애플이 노랗게 깔려 있었다.

"도도야, 이거 좀 먹어봐."

나는 귤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까서 도도에게 주었다. 도도는 내가 주는 귤 하나를 받아 오물오물 먹더니 뱉어 버렸다.  

"엄마, 근데 귤은 좀 별로예요. 파인애플 먹을래요." 도도는 더 이상 귤을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가장 아래 깔려 있는 파인애플 몇 조각을 먹었다. 신나게 들어온 모습과는 달리 영 입맛이 없어 보이는 도도를 보 까놓은 귤과 샤인머스캣, 배까지 나 혼자 조금씩 아삭아삭 집어 먹었다. 그렇게 과일도 먹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보았다.  도도와 카페에 들어온 지 20분 정도가 지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자꾸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기 시작했다. 등골이 싸한 느낌까지 들었다.  

"도도야, 근데 엄마,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우리 집에 갈까?" 힘없는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네, 엄마." 평소 같았으면 서점에 가자고 이야기했을 도도가 내 얼굴을 보더니 어서 집에 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도도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 그래도 집에 오니까 좋다." 집에 오니 따뜻한 기운에 조금 괜찮아진 내가 말했다.

도도와 외투를 벗고 손을 씻고 소파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도야, 우리 코코방에 가서 좀 누워있자. 엄마가 책 읽어줄게." 혹시 도도가 거실에서 놀고 싶다고 이야기할까 싶어 책 읽어준다고 말하며 코코방에 가서 좀 눕자고 도도에게 말했다.

"네, 엄마." 도도가 좋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코코방에 따뜻하게 누워 책을 읽어 주다가 몸이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어 버렸다.

"헛" 무슨 꿈을 꾸었는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옆을 보니 잠든 엄마를 보고 같이 잠이  도도가 보였다. 내가 많이 피곤했나 보다 생각을 하던 찰나,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나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그러더니 몸속에서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숨을 천천히 내쉬며, 이제 좀 괜찮아지나 싶어 고개를 들려는 찰나.

"웩웩........ "

토하기 시작했고, 그만 토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위 안에 있는 것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토하고 났더니 그나마 몸 안이 잠잠해지는 듯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양치질을 하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무엇을 잘못 먹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몸에서 탈이난 것은 분명했다.


런데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몸 안은 이미  비상체제에 돌입한 상태였다. 몸속으로 침투한 균을 없애기 위해 두 시간 간격으로 구역질을 유도했고, 몸의 명령에 이끌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토하는 것이 계속되었다. 모두 토해 더 이상 몸 안에서 뱉어낼 것이 없었지만 비 상태 종료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삐 삐 삐 삐 삐, 철컥"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 잠에서 깬 도도가 아빠 보더니 반가워서 빠르게 뛰어 나간다.

남편은 퀭해진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인가 묻는다.

"그게, 아까 과일 가게에서 컷팅 과일을 먹었는데 탈이 났나 봐요. 계속 토하는데 멈추않네요." 퀭해진 얼굴로 대답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걱정스러운 얼굴과 당황한 빛으로 말한다.

"어떡하지..  내일 세미나가 있어서 휴가를 쓸 수가 없는데..... 큰일이네."

"오늘 지나면 괜찮아지겠지요. 너무 걱정 말아요." 내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잠을 자고 나면 다음 날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새벽 2시까지 구역질은 두 시간마다 계속 올라왔다. 그렇게 화장실 다녀오길 몇 번. 위 안에 아무것도 없을 때쯤 아침이 밝았다.


"도도아, 아빠 회사 다녀올게. 엄마 아프시니까 엄마 말씀 잘 듣고." 남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너무 아프면 도도랑 택시 타고 병원에 꼭 다녀와요." 걱정이 됐는지 남편이 뒤돌아  말한다.

"네, 걱정 말아요." 알겠다고 남편에게 말하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새벽에 위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비워내고 밤새 부대끼다 보니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간단하게 도도 아침밥을 차려 주었다.

"도도야, 엄마가 오늘 좀 아파서 그런데 도도가 혼자 밥 먹을래?"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 도도는 혼자 잘 먹을 수 있어요." 도도가 엄마를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가 아픈 걸 아는지 엄마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상에 앉아 여기저기 흘리며 숟가락으로 간장 계란밥을 떠서 냠냠 먹는다. 그렇게 먹던 도도가 소파에 누워있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온다.

"근데, 엄마. 엄마도 밥 먹으세요. 밥 안 먹으면 배고파요."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토하는 모습을 본 도도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말한다.

"도도야, 고마워. 근데 엄마 속이 안 좋아서... 있다 먹을게. 도도 맛있게 먹어." 도도 손을 잡으며 말한다.

"네, 엄마. 엄마, 어서 나으세요." 엄마가 많이 걱정되었는지 도도가 사랑스럽게 말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 밥을 먹는다.

"엄마, 다 먹었어요. 저랑 놀아요." 집에만 있던 도도가 심심했는지  아침을 다 먹고 같이 놀자고 이야기한다.

"도도야, 엄마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도도 옆에 좀 누워 있을게. 엄마 옆에서 놀래?" 일어서서 놀고 싶었지만 자꾸 머리가 핑 돌아 다시 누우며 말했다.

"네, 엄마." 평소 같았으면 엄마, 어서 일어나라고 하며 몇 번을 같이 놀자고 했을 텐데 오늘 알겠다고 말하는 도도다. 그렇게 도도는 문구 상자에서 가위를 가져와 자동차를 오리기 시작한다. 요즘 잡지책에 있는 자동차 오리기에 푹 빠져 있는 도도 오리기 놀이를 시작한다.


"쿠우우우울...."

도도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한참을 잤는가 싶어 눈을 떠 시계를 보니 한 30분 정도 지나 있다. 그래도 잠깐 푹 잤다고 기운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옆을 가만히 바라보니 도도는 여전히 자동차 오리기 놀이에 한창이다. 도도 옆에는 가위로 오린 종이가 수북이 쌓여 있다. 평소 도도라면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을 텐데. 오늘은 엄마가 아파 잠들어 있으니 자는 엄마 한번 보고 다시 가위질하며 놀고 있다. 아픈 엄마에게 마음을 써주는 도도를 보니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도도를 바라보고 있으니 도도가 말한다.

"엄마, 이제 괜찮아졌어요?"

"도도야, 조금만 더 누워 있으면 아픈 배가 괜찮아질 것 같아."내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도도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약상자로 달려간다.

"엄마, 내가 호오 해주고 밴드 붙여 줄게요."

약상자에서 노란 바탕에 뽀로로 친구들이 그려진 밴드를 꺼낸 도도가 다가온다.

"엄마, 이거 붙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도도가 말하며 내 배 위에 밴드를 붙여준다.

"도도야, 고마워. 이제 다 나은 것 같네. 우리 도도가 엄마 약이네."


몸이 마음과 다르게 움직이거나, 마음이 몸과 다르게 움직일 때에는 육아가 유독 힘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 안으로 들어가 아이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아이가 공기처럼 전해오는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가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품으며 자라나고 있다. 어리기만 했던 아이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낯선 지구별을 함께 여행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이미지 출처:pinterest, 엄마 약 동화책 표지


* 어제 잠드는 바람에 발행이 좀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셨던 분들께 양해를 구해 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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