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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3. 2021

금리가 내려갔다. 대출을 갈아탔다.

하루만 늦었어도 못했을 대환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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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살았고, 그사이 주택정책은 또 몇 번의 격변을 맞이했다. 

여전히 한강변에 있는, 지하철 도보 이동 가능한 아파트 중 가장 저렴한 우리 집은 2년 만에 시세가 1억이 넘게 올랐고, 금리는 떨어졌다. 

시세가 10원만 더 올라도 대출 갈아타기가 힘들어진다! 발등의 불이다! 



이사 들어가는 날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관리사무소에 정리해야 할 것들은 부동산 부장님이 해결해주셨고, 우리는 서류에 도장 찍고, 은행에서 나온 법무사와 금액을 정리하고 돌아 나왔다. 포장이사였지만 각종 가전제품 반입과 겹쳐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했고, 이삿짐센터 분들이 나가자마자 대충 씻고 주민센터에서 주소이전을 마치고 나서야 혼을 놓을 수 있었다. 물론 진정한 마음이 평화는 그다음 날 에어컨 설치가 마친 다음이었지만 말이다. 


2014년 12월에 월세로 독립해, 2017년 2월 전세로 갈아타고, 2017년 4월 결혼하고, 2018년 7월 자가 아파트에 입성했다. 4년 만에 맞이한 격변이었다. 남들은 10년이 걸쳐 있을 변화를 난 단 4년 만에 맞이했다. 


“이달 안에 계약하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이 말은 신랑에게만 한 말이 아니었다. 혹시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계약금이건, 중도금이건 현금조달이 바로 가능한 건 부모님 찬스였을 터라, 양가에 똑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으리라 생각했고, 또 내가 계획한 일정대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전세자금과 모든 걸 탈탈 털면 우리 돈으로 가능한 예산이었지만 그래도 혹여라도 구멍이 생기면 잠시 빌릴 곳은 거기뿐이었다. 신랑에게 이야기한지는 2주 만에, 부모님들께 이야기한 지 1주일 만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셈이다. 


실거주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친정 식구들과 시어머니는 잘했다 하셨지만, 보수적인 시아버지는 그 큰 빚을 어찌 해결해나가려 하냐고 그러냐고 하셨다. 그러실까 봐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나서 말씀드린 건 삶의 지혜였었다. 결혼한 지 1년 남짓 된 새 며느리의 배포는 3억 원짜리였던 것이다. 


불안해하실 것은 알았다. 나도, 신랑도 여전히 높지 않은 수입을 버는 문화예술계 종사자였다. 그나마 내가 정기적인 수입이 확보되어있어 내린 결정이긴 했다. 철없다 소리 들을 생각은 없었다. A4 한 장에 나의 자금계획을 적어서 내밀었다. 예상하는 대출 이자, 내가 한 달에 갚아야 하는 돈들, 우리가 현재 들고 있는 자금의 상황들이 일목요연하게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시아버지는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냐 하셨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안 떨어지게 할게요


3억 2천만 원짜리 배포는 이런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하셨다. 네가 무슨 재주로?라고 묻고 싶으셨을 것이다. 너무나도 뻔뻔하게 구는 며느리에게 더 이상 보탤 말은 없으셨다. 이런저런 정기적인 비용들을 다 제하면 회사에서 사 먹는 점심을 포함한 용돈은 30만 원이었다. 우리 부부의 자금 배분은 명확했다. 공동으로 사용한 래귤러한 소비와 제습기, 이불, 커튼 같은 아이템들은 내가, 식비, 외식 등 포션에 해당하는 부분은 신랑이 지출했다. 대출 역시 나의 몫이었다. 


배짱 좋게 말했지만 사실 무서웠다. 아이라도 생기면, 그래서 내가 휴직하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집값이 진짜로 집의 가치가 올라서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 지난 1년간의 내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려했던 사태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아이가 생겼다. 2019년 2월 나는 임신 사실을 알았고, 우리는 2019년 11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출근을 했고(물론 자리 정리는 미리 해두었지만) 후임자도 확정되어있지 않아서 아이를 낳고 한 달 후에 나와 인수인계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은 직장인에게는 2가지의 휴가가 주어진다. 출산휴직과 육아휴직. 둘 다 수당이 나오고, 출산휴직은 3달, 육아휴직은 12개월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두 휴직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바로 휴직기간 동안의 수당이다. 


임신기간 내내 엑셀에 표를 만들고 내가 줄일 수 있는 지출과 줄일 수 없는 지출을 구분해서 기록해두었다. 예상하는 휴직수당들을 적고 나니 한숨밖에 안 나왔다. 출산휴직 3달에는 그래도 임금이 100% 보존이 되는데, 육아휴직은 달랐다. 육아휴직 첫 3달은 최대 150만 원, 이후 기간은 최대 120만 원의 수당이 부여되는데 이 또한 다 주는 것도 아니다. 75%는 휴직기간에 주고 25%는 복직하고 6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 일종의 페널티인 샘이다. 회사가 너를 위해 휴직이라는 엄청난 배려를 해주었으니 반드시 복직해서 저 돈을 받아라. 복직하지 않으면 25%는 날아간다. 그러니 나는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한 달에 120만 원 남짓 3달을 받고, 남은 기간은 90만 원 정도의 수입이 확보된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버는 돈은 월급이 다가 아니었다. 통신비, 식대 같은 자잘하지만 자잘하지 않은 수당과 함께 상여금이 나온다. 설과 명절, 생일에는 상품권도 10만 원 나온다. 실질임금(?)은 반도 안되고, 그런 저런 것들을 다 감안하면 연간 확보 가능한 현금은 예년의 절반 수준이 된다. 


하지만 나의 지출은 변화가 없다. 관리비도 내야 하고 공과금도 내야 하고 각종 보험과 연금도 여전히 내야 한다. 휴직을 이유로 멈출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출이었다. 미련하게 대출원금을 빨리 갚을 생각으로 나는 대출상환 방식을 "원금균등"을 선택했기에 일어난 사단이다. 물론 그래 봐야 금액 차이는 미미하지만 월소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10만 원 5만 원도 너무 크리티컬 한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휴직기간은 그래도 원금상환은 미룰 수 있고, 이자만 내도 된다는 건 들은 바 있다. 그러면 일단 월급이 제대로 다 나오는 기간에는 원금이랑 이자를 내고 나머지 기간에는 휴직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무경험자의 오류였다. 휴직 기간이 지나고 복직하고도 1년이 다돼가는 지금 생각하니 무조건! 원금 상환을 멈춰놨어야 했다.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을 최대치로 만들었어야 했다.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우리는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만들었어야 했다. 바보같이 쓸 생각을 하다니. 현금의 소중함을 내가 너무 몰랐다. 


심지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전 세계를 뒤흔든 이 질병이 우리 집을 피해 갈 리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휴직기간이라 수입이 없었고, 나의 수당은 대출상환에 꽂히고 있었다. 그리고 예술계 종사자인 신랑은 1년간 개점휴업. 수입은 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금리가 내려갔다. 2017년 내가 대출한 상품은 금리 3.3%짜리 1.2억과 2.55%짜리 2억. 이렇게 2가지 구성이었다. 하지만 금리는 떨어졌고. 대충 계산해도 2.3% 언저리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그동안 상환한 원금도 있고 이래저래 계산하니 한 달에 150만 원 넘게 내던걸 130만 원대로 줄일 수 있다. 일단 다 떠나서. 2% 초반대 금리가 가능한데 평균 2.8%대의 금리를 쥐고 잇는 것만으로 도 화가 났다. 30년에 걸친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다 보니 금리가 떨어지는 게 영향이 크다. 집값은 인플레이션의 산물이다. 지금의 10만 원은 10년 후의 10만 원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 더 큰 가치를 지닌 돈을 대출상환에 사용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대출을 갈아타기로 했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집값의 상승이었다. 예전에는 집이 5억이 넘지 않아서 최대 70% 해도 받을 수 있는 돈이 2개 상품을 합쳐야 2억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집값은 1억 이상이 올랐고, 이제는 6억만 넘지 않으면 보금자리론으로 최대 가능금액인 3억을 받을 수 있다. 집을 살 때는 모자라는 돈을 현금으로 막아야 하지만, 지금은 대출만 갈아타면 되니까 약간의 수수료를 내면 그만이다. 현금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의 KB리브온 시세를 찾아봤다. 


젠장. 정확하게 6억 원이다. 


우리는 3억 원이 채 안 되는 빚이 남아있었고, 시세가 6억 원이라는 말은 보금자리론에 최대 대출 가능금액인 3억 원에 낮은 금리로 바꾸어 대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단 1원이라도 시세가 오르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저리인 국가보증 대출상품은 이용할 수 없다. 


정신이 확 들었다. 시세는 계속 변하고 있었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필요한 서류를 후딱 갖춰서 주택금융공사에 등록했고 대출대환 신청을 했다. 주택금융공사에서는 "대출 심의 시점 기준으로 10원이라도 오르면 대출 승인이 안 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승인 심사에 빨리만 올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첫 대출에 거의 2주 가까이 걸렸던 기억이 나서 쫄리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어느 날. 우리는 아기 200일 기념 여행을 가기로 했고, 나는 그 전날 서류를 꾸려서 올려놓은 상태였다. 공사에서 전화를 받았고, 기존에 신청했던 기록이 있어서인지 3일 만에 승인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아기의 200일 기념 여행에 건강한 아가만큼이나 감사한 선물을 받은 샘이다. 그리고 그다음 주 시세는 6억 1500만 원으로 바뀌었다. 


한주만 늦었다면. 그 의사결정이 2일만 더 늦어졌다면 나는 억울하게 비싼 금리를 유지할 뻔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공짜는 아니었다. 대출상환 수수료가 200만 원이나 나왔고, 대출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육아휴직으로 인한 원금상환 보류 신청이 불가능했다. 나의 육아휴직은 몹시 빡빡하게 지나갔다. 남편의 수입은 없었고, 나의 수입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보험과 관리비, 공과금만으로도 수십만 원이 훅 사라졌고 아이의 기저귀와 분유값도 한 달이 15만 원은 족히 되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대출을 상환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인데, 체감식(원금균등) 분할상환,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체증식 분할상환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체감식 분할상환을 선택했다. 


 체증식을 선택하면 초반의 부담은 크지만, 이자가 제일 적고, 체증식은 초반 부담은 적지만 점차 내야 하는 돈이 늘어난다. 우리는 원금을 360개월간 균등 분할하는 ‘원금균등분할’ 방식의 대출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젠가 이 집을 팔고 나간다는 전제에 초반에 이자를 많이 내게 되는 ‘원금균등분할’은 부담이 많이 된다. 더군다나 아이를 낳고 휴직에 들어가니 원금을 크게 상환하는 방식이 매우 부담이 많이 된다. 


고지식하고 미련한 나는 전세자금 대출 때와 마찬가지로 빚을 빨리 갚고 완전히 내 집을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차피 언젠가 집을 팔게 되어 빚을 갚아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결국 사라질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는 재테크와 거리가 먼 인간인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심지어 지금 육아휴직 중이고 당장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갚아나가는 건 힘든 일인데도 난 이런 미련한 선택을 했다. 사실 살짝, 아니 좀 많이 후회 중이긴 하다. 돈을 갚는 대신 종잣돈으로 뭉쳐 또 다른 투자를 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당장의 부담은 줄어들고, 또 어차피 복직하고 일을 시작하면 다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숨 막히는 1년을 보내고 나는 복직을 했다. 1년은 괴로웠지만 그걸 견딘 대가는 제법 달콤했다. 처음 대출금을 상환할 때보다 복직한 지금 훨씬 숨통이 트이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150만 원에서 130만 원대로 금액이 줄어드는 건 정말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한해 지나 나의 월급은 깨알만큼이라도 올랐고, 대출금은 줄어들었다. 아이는 분유를 먹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고, 기저귀도 예전보다는 적게 사용한다. 물론 내가 사용하지 않는 어떤 지출이 신랑에게 전가되어있을 수 있지만 우야 간 나의 통장은 예전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평온해졌다. 


모든 것이 금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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